[시의향기] 피아노 소리
하기정 2025. 6. 29. 18:50
이상하지, 피아노가 없는데
소리가
들리는 거
유리창엔 얼룩이 새처럼 날아가네
아름다운 사람이 빠르게 지나가네
창밖으로 보이는 플라타너스 두 그루
서로 가까운 쪽부터 물드는 사람
이상하지, 네가 없는데
내가 있는 것
손등을 덮어 줄 손바닥이 없는 거
우표를 붙이면 어디든 날아갔던 날들
우체국 간판을 가린 여름의 무성한 나무가
더 많이 울고 있다는 것
아름다운 사람은 빠르게 지나가네
조건도 없이 충분한 사람이었구나
사람 없는 곳에서 거미가 집을 짓는다
사람 사는 곳에서
세계의 어머니들이
빵을 뜯어 접시에 나눈다
이상하지, 오늘 아침 들리는
먼 나라 울음의 벽 너머
아기들이 죽어 가는데
꿀 대신 이마에 석류즙이 흐르는데
아프도록 젖이 부는 것이
이상하지,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게
산 사람에게 들려오는 죽음이
이토록 관념적이라는 게
이상하지, 부음이 부름처럼
너에게 뛰어드는 일이
너에게 뛰어드는 일이

하기정 시인
2010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밤의 귀 낮의 입술', '고양이와 걷자', '나의 아름다운 캐릭터'
산문집 '건너가는 마음'
5.18문학상, 작가의눈 작품상, 불꽃문학상, 시인뉴스포엠 시인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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