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또 “김정은과 잘 지내” 유화책…북 “미국은 날강도” 거리두기
수위조절 거쳐 장기 협상 나설 가능성

이란-이스라엘 전쟁 휴전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다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강조했다. 최근 미국이 북한에 ‘트럼프 친서’를 전달하려 했지만 북한이 거부했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거듭되는 대화 재개 신호에 북한이 어떻게 응답할지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그(김정은)와 매우 잘 지내고 있다”며 “갈등이 있다면, 북한과 갈등을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느냐는 질문에 사실 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이렇게 답하면서, 북한과 대화 재개 의지를 재확인했다. 앞서 미국 북한전문매체인 ‘엔케이(NK)뉴스’는 지난 11일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 재개를 목표로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낼 친서의 초안을 작성해 전달하려 했지만, 북한 외교관들이 수령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언급은 자신이 이스라엘-이란의 휴전을 이끌어냈다며 한껏 치적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북한 문제에서도 성과를 내겠다는 뜻을 강조하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중재로 유혈 분쟁을 끝낸 민주콩고와 르완다의 외교장관을 백악관 집무실로 초청한 행사 와중에 북한에 대해 언급했다.
자신이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피스 메이커’라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북한에 관심을 돌려 성과를 내려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지지층을 향해 인도-파키스탄, 이스라엘-이란, 민주콩고-르완다 사이의 갈등이 자신의 중재로 해결되었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북한과도 그런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연합뉴스에 “서한 발송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 잘 지낸다는 표현은 향후 더 접촉을 시도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며 “북한이 미국의 접촉 시도를 받아들인다면 트럼프의 외교 현안에서 우선 순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제 관건은 북한의 대응이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유화적 신호’를 보내는 데 ‘무대응’으로 일관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더구나 최근 미국이 이란과 ‘핵 협상’을 하던 와중에 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 공격했고, 미국이 이스라엘에 가세해 이란의 핵시설을 타격하는 상황을 지켜봤을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과의 협상보다는 핵무기 개발에 더욱 집착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일관된 전략보다는 상황에 따라 자신의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을 신뢰할 만한 협상 상대로 믿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당분간 북한은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에 집중하며 핵무기 능력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재래식 군사력 강화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대미·대남 전략에 변화가 있으려면 내년 초로 예상되는 9차 노동당 대회에서 북한 내부의 노선 정리가 필요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북한이 미국을 연일 비판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지 않는 등 수위 조절을 하는 것은 장기적인 대화의 창을 열어놓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하는 조건이 적절하고, 대화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고 판단하면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에 나서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9일 ‘공정한 국제질서 수립은 평화 보장을 위한 절박한 요구'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미국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신문은 “현 시기 유럽과 중동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무장충돌이 벌어지고 세계가 불안정과 혼란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들에 대한 미국과 서방 나라들의 날강도적인 주권 침해 행위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제국주의자들이 힘에 의거하여 세계를 지배하려고 날뛰고 있는 오늘 그 어떤 호소나 구걸로 자기의 주권과 존엄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라며 “제국주의의 강권과 전횡으로부터 국가의 주권과 안전을 수호할 수 있는 강한 힘을 비축할 때 공정하고 정의로운 국제질서가 수립될 수 있다”고 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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