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hip)한 한국 문화가 글로벌 협업을 만났을 때

정덕현 문화 평론가 2025. 6. 2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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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보는 달라진 글로벌 콘텐츠 시장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넷플릭스에서 최근 공개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대한 글로벌 반응이 뜨겁다. 등장과 동시에 글로벌 OTT 순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서 글로벌 1위를 기록했다. 도대체 이런 반응이 쏟아진 이유는 뭘까. 또한 이것이 시사하는 콘텐츠 제작 환경의 변화는 무엇일까.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포스터 ⓒNETFLIX

노래를 '방패' 삼아 힙해진 한국 문화

등장부터 심상찮다. 《전설의 고향》의 한 장면 같은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갓을 쓴 악령이 마을을 공격한다. 그러자 마치 무녀처럼 차려입은 세 명의 데몬 헌터 영웅이 나타나 춤을 추고, 노래하며 악령들의 공격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한다. 그런데 그 힘은 바로 음악의 힘이다. 헌터들이 노래할 때 사람들은 하나로 뭉치고, 그 유대감이 세상을 지키는 '방패(Shield)'를 만들어낸다. 이른바 '혼문(Honmoon)'이라 불리는 힘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악령과 싸우는 오컬트 서사를 액션으로 가져와, 기발하게도 K팝 문화로 재해석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K팝이 세상을 구원하는' 이야기랄까. 루비, 미라, 조이는 바로 그 오래된 데몬 헌터의 계보를 이어받은 인물들이다. 글로벌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과 지지를 받으며 노래하는 K팝 걸그룹 헌트릭스의 멤버들이지만 사실 그들은 악령들과 싸우는 악마 사냥꾼들이다. 신칼이나 사인검 등 무녀들의 무구를 들고 창궐하는 악령들과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진짜 무기는 다름 아닌 K팝이다. 이 작품은 노래로 세상을 구한다는 K팝의 은유적 표현을 실제 서사로 끌어왔고, 그 노래로 뭉쳐진 강력한 유대감은 악령들이 침범할 수 없는 '방패'가 된다. 방탄소년단과 그들의 세계관으로 뭉쳐 세상을 바꾸고 있는 팬덤 '아미'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K팝을 가져왔으니 한국과 한국 문화도 빠질 수 없다. 무녀 콘셉트 같은 한국 문화들이 복식에서부터 눈에 띈다. 남산타워가 보이는 서울의 전경이나 한글 간판으로 채워진 거리 풍경은 한국인들에게는 반가운 풍전경이 아닐 수 없다. 김밥과 컵라면을 즐기고, 응원봉을 들고 콘서트장을 찾는 관객들이 등장한다. 헌트릭스의 라이벌이자 악마에게 영혼을 판 보이그룹 '사자보이즈'의 리더 진우는 갓을 쓰고 등장하는데, 시크한 저승사자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자보이즈'의 '사자'는 정글의 맹수와 더불어 저승사자의 이미지가 겹친 중의적 의미로 다가온다. 민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까치와 호랑이 캐릭터나, 배경음악으로 듀스 《나를 돌아봐》, 엑소 《러브 미 라이트》 같은 곡이 깔리는 대목들의 반가움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 뮤지컬 애니메이션은 K팝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래서 춤과 노래, 캐릭터, 팬덤의 양상까지 모두 K팝 그대로다. 다양하고 디테일한 한국 문화들이 K팝이라는 연결고리로 묶여 있는 셈이다. 과연 글로벌에서도 통할까 싶지만, 놀랍게도 이 작품은 공개하자마자 플릭스 패트롤에서 글로벌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넷플릭스 순위 사이트 투둠(Tudum)에서도 등장과 함께 글로벌 2위를 기록했다. K팝을 비롯한 K콘텐츠가 꺼내놓은 K컬처가 글로벌 핫 트렌드로 떠올랐다는 걸 이 작품만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

K컬처, 글로벌 콘텐츠 트렌드로 자리 잡아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쏟아진 글로벌 반응이 놀랍고 반가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글로벌 콘텐츠 제작 방식의 새로운 조류를 실감하게 된다. 이 작품에는 매기 강(Maggie Kang), 아트디렉터 다혜 셀린 김(DaHyeu Celine Kim) 같은 한국계 감독들이 제작에 참여하고 트와이스, 오드리 누나, 이재(EJAE) 등 한국 혹은 한국계 아티스트들이 노래를 불렀다. 테디를 비롯한 더블랙레이블 소속 프로듀서들이 프로듀싱을 하고, 리정과 잼 리퍼블릭이 안무로 참여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미국 작품이다. 즉, 미국 제작사의 시선으로 보면 K팝과 K컬처라는 트렌디한 소재를 활용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먹힐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계 감독과 아티스트들이 참여한다는 건 한국 문화와 K팝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고증 없이는 성공할 수 없는 현 글로벌 OTT 시장의 변화가 반영된 당연한 결과다. 그래야 전 세계의 K팝 팬덤이 움직일 것이고, 나아가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의 공감과 지지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문화를 미국 같은 타국에서 소재로 활용해 글로벌 콘텐츠를 생산하는 제작 경향은 우리에게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다는 자부심을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제 어느 나라의 문화든 그 나라가 아니라고 해도 발굴해 활용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문화원형(특정 문화의 본질적인 요소나 특징을 나타내는 원형적 모델) 개념의 제작 방식은 이미 《해리포터》 시리즈가 북구 유럽의 여러 신화를 가져와 글로벌한 성공을 거두면서 주목받았다. 영국 작품이지만 타국의 문화원형이 흡수된 사례다. 《쿵푸팬더》도 마찬가지다. 드림웍스에서 제작한 이 작품은 쿵푸나 팬더 같은 중국의 문화원형을 소재로 가져왔다. 한국도 이미 《파친코》를 통해 이를 경험한 바 있다. 애플이 1000억원을 들여 제작한 이 작품은 미국 작품이지만 구한말 재일 한인들의 삶을 소재로 해 글로벌한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 《쿵푸팬더4》 포스터 ⓒCJ 엔터테인먼트

문화원형 발굴 경쟁에 불붙일까

타국의 문화원형을 소재로 끌어오는 데 글로벌 협업은 이제 필수적이다.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콘텐츠의 성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글로벌 협업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개념으로 자리하고 있다. 일본 TBS에서 제작한 드라마 《아이 러브 유》는 주인공인 배우 채종협이 한국인 일본 유학생 역할을 하며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와 언어를 소재로 끌어들였다. 특히 한국 멜로 드라마가 가진 클리셰적인 요소들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일본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다.

CJ ENM은 TBS와 함께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일본판을 공동 제작, 6월27일부터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공개한다. 일본 배우, 제작진과 함께 《더 글로리》를 연출한 안길호 감독, 《내 남편과 결혼해줘》를 담당했던 스튜디오드래곤의 손자영 PD와 이상화 CJ ENM PD가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물론 이러한 협업 사례들은 콘텐츠 비즈니스 안에서 종종 있었던 일들이다. 하지만 이제 그 협업의 양상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처럼 타국의 문화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문화원형의 발굴 차원으로까지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6월18일 '2025 콘텐츠 산업포럼'에서 반복 등장한 키워드는 '메이드 위드(Made with)'라는 단어였다. 과거 국가 개념으로 경계가 나뉘어 제작되던 '메이드 인' 시대를 넘어, 새로운 글로벌 제작 방식으로의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는 걸 강조한 표현이다.

갈수록 치솟는 제작비로 인해 제작 기회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국내 제작사들 역시 해외 제작사와의 협업을 새로운 돌파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본이나 중국은 물론 태국,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K콘텐츠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아시아권 국가의 '문화원형'들을 관심 있게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다. 이제는 K콘텐츠의 제작 역량을 바탕으로 우리 고유의 문화와 더불어 타국의 문화원형을 발굴해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새로운 협업 모델을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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