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미래는 에세이가 된다 [독서일기]
기시 마사히코, 이시오카 토모노리, 마루야마 사토미 지음
김주현 옮김
호밀밭 펴냄

사회학자는 인간과 사회로부터 얻어낸 데이터를 분석하여 그것으로부터 어떤 결론을 끄집어내는데,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는 수량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양적 데이터라고 하며, 통계적 조사(설문조사) 결과나 관공서 등이 정기적으로 생산하는 통계 데이터를 근거로 삼는다. 후자는 질적 데이터라고 하며, 필드 워크(현장 연구)·참여관찰·생활사 조사 등을 통해 얻은 데이터가 기반이다. 이 방법들은 각기 ‘양적 조사’와 ‘질적 조사’로 불리는데, 〈타자 이해의 사회학〉(호밀밭, 2025)을 쓴 질적 연구자 세 명은 사회학 조사가 두 방법론으로 명확히 나뉘어 있거나, 대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제1장을 쓴 마루야마 사토미는 필드 워크 방법을 사용하여 여성 노숙자의 실태를 연구했고, 제2장의 필자인 이시오카 토모노리는 참여관찰 방법으로 필리핀 하층계급의 복싱 열기와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필리핀 복서의 삶을 조명했다. 필드 워크가 어떤 지역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한 종합적인 실태조사라면, 참여관찰은 연구 대상이 되는 집단이나 조직의 일원이 되어 연구한다. 제3장을 쓴 기시 마사히코는 자신의 도구인 생활사를 개괄하고 있는데, 생활사는 개인이 들려준 인생 이야기를 거시적인 역사와 사회구조에 연결한다. 세 사람이 쓰는 질적 연구의 도구는 다르지만, 이들이 내건 ‘타자 이해의 사회학’은 “우리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의 언뜻 보면 불합리한 행위 선택의 배후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이 책은 사회학과 대학생을 위한 교과서로 기획되었으나 대표 필자인 기시 마사히코가 장담한 것처럼 일반 독자가 읽기에도 재미있는 책이 되었다. 마루야마 사토미와 이시오카 토모노리는 자신의 연구 도구를 설명하기 위해 각자의 대표작인 〈여성 노숙자로 살다〉와 〈로컬 복서와 빈곤 세계–마닐라의 복싱 체육관에서 보는 신체 문화〉를 텍스트로 삼고 있다. 두 사람의 연구 노트는 두 책을 읽는 것 같은 효력과 함께 영화 제작 과정을 담은 메이킹 필름을 보는 것 같은 생생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앤 츠베트코비치의 〈우울: 공적 감정〉(마티, 2025)은 이미 베스트셀러가 많이 나와 있는 우울증이 주제다. 심리 전문가와 여러 분야의 명사들이 쓴 우울증 관련서는 하나같이 우울증을 신비화하거나 개인적 병증으로 다루면서, 자신들이 시험한 약의 효능을 예찬한다. 지은이는 우울증을 예술가나 창의성의 특성으로 신비화하거나 관리 가능한 의료적 문제로 보기를 거부한다. 빈곤·실업·거주 불안·인종차별·성적 차별,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와 신자유주의 사회의 황금률인 경쟁과 같이 행위 주체성을 빼앗는 모든 억압이 우울을 번성케 한다.
‘내란성 우울증’은 가벼운 증세
이 책은 윤석열의 12·3 불법 계엄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기다리고 있던 올해 3월 출간됐다. “우울은 정치적”인 것이라는 지은이의 핵심 주장과 그가 펼치는 “정치적 우울”의 풍경은 ‘내란성 우울증’과 ‘내란성 불면증’이라는 신조어가 실감나게 들렸던 탄핵 정국과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그러나 불법 계엄 사태로 시민들이 겪은 정치적 우울은 지은이가 사례로 삼은 ‘좌파 멜랑콜리’에 비하면 가벼운 증세였을 뿐 아니라 반동적이지도 않았다.

우울증은 주체를 “막다른 길”이나 “출구 없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답보 상태에 붙들어 맨다. ‘좌파 멜랑콜리’는 더 나은 미래에 도달하는 방법을 상상하기 불가능한 순간, 운동이 정치적 열패감과 실망에 휩싸일 때 일어난다. 2019년 ‘조국 사태’ 때, 윤석열을 지지한 ‘좌좀(좌파도 아니면서 좌파 행세를 하는 좀비)’들이 좌파 멜랑콜리를 흉내냈다. 이들 가운데 중증인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내란당’ 후보에게 표를 주었다. 엄밀히 말해 좌파 멜랑콜리는 좌파가 앓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좌좀들이 겉멋으로 앓는다. 정통 좌파(구 좌파) 가운데 계급투쟁의 옛 시대로 돌아가길 바라면서 문화 및 정체성의 정치를 비난하는 이들에게서 좌파 멜랑콜리를 볼 수 있다.
윤여일의 〈피뢰침과 스며듦〉(돌베개, 2025)은 앞의 두 책과 공유하는 게 많다. 앤 츠베트코비치가 “학술 연구 관습을 벗어난 글쓰기 형식”을 실현했듯 이 책 또한 특정 장르가 되지 않는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사회학을 전공한 어느 연구자의 10년을 기록하려 한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의 10년이며, 그 연구자는 나다. 이 책은 자서전일까? 자신의 행적을 스스로 적을 테니 자서전이 맞을 거다. 그런데 온통 타인들에 관한 내용이 될 것 같다. 쓰는 사람은 나이겠지만, 나를 쓰게끔 이끈 타인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사회학자인 지은이는 〈타자 이해의 사회학〉과 같은 질적 연구의 도구들을 활용한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사회학은 인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연구한다. 그들 자신이 영장류와 특정 사회에 속해 있는 연구 대상이면서도, 어떻게 동시에 타자를 과학의 대상으로 연구할 수 있을까. 사회학은 객관성이라는 압력을 강하게 의식해야 하는 학문이다. 진짜 문제는 오히려 그들이 객관성을 획득했을 때일 것이다. 사회학자가 인간 세계를 실험관처럼 들여다본 끝에 산출된 객관성에는 “조사자의 감정이 버려진다(이시오카 토모노리)”. 감정이 없이는 “그들의 문제에 나를 연루(윤여일)” 시킬 수 없다.
지은이가 제주대학교 학술연구교수로 임용되어 제주도에 처음 발을 디뎠던 2016년 2월, 강정 해군기지가 준공되면서 10년에 걸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은 패배로 막을 내렸다. 곧이어 제주 제2공항 건설이 시작되고 비자림이 벌목되었다. 내부 식민지와 같은 제주는 “1970년대부터 한국의 내부 관광지로서 지속적인 변형을 겪었다. 오늘날에는 영리병원, 에너지, 모바일, 자율주행, 리모트워크, 디지털화폐 그리고 우주산업의 테스트베드로서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 낙후된 제주를 혁신하고, 정체된 제주에 신산업을 개척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실험들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있다”.
지은이는 제주도에 취업한 8년 동안 ‘피뢰침’이 되어 제주 시민 활동가들의 말을 기록하고 전달했다. ‘연루된 당사자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의 글에는 사회학적 접근이 살아 있지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신적이고 원근법적 시각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태도는 이번에 읽은 책 세 권에서 공통된 것으로, 이들의 글쓰기 특징은 학술 논문으로부터의 탈피다. 미래는 에세이가 될 것이다. 에세이란 스타일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저항과 해방의 형식이 될 것이다.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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