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좋아하는 김밥천국 메뉴는? 전혜진 소설 ‘김밥천국 가는 날’ [인천에서 산 책]

박경호 2025. 6. 2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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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 원조는 인천?

인천 구월동 사는 사람들, 시청 근처 김밥천국에서 각자의 삶 교차되다
삶의 허기를 채우는 맛깔난 음식… 평범한 인물들 매력적으로 다가와
인천 남동구 구월동 가천대 길병원 인근에 있는 한 김밥천국 가게. 2025.6.27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구월동 소설의 탄생이라 하겠습니다. 거창한 것 같나요? 인천 남동구 구월동, 특히 소설의 주요 배경인 인천시청 인근 아파트 단지와 대형 종합병원이 있는 동네를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도시에나 시청 근처에 있을 법한 동네, 그다지 부촌도 아니면서 구도심도 아닌 평범한 도심의 보편적 이야기입니다.

SF와 스릴러, 사회파 호러 소설을 주로 쓰는 전혜진 작가가 써낸 연작 소설집 ‘김밥천국 가는 날’(래빗홀·2025)은 평범한 이들의 소울 푸드 ‘분식’의 총집합이라 할 수 있는 김밥천국의 음식과 삶 이야기를 펼칩니다.

시청 근처 김밥천국이란 공간과 음식으로 이어지는 각 소설 등장인물들의 삶의 고민이 평범하다고만 볼 수 없지만, 우리가 충분히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때론 안타까워하지만 희망을 줄 만한, 따뜻한 이야기들입니다.

■ 서로의 삶이 교차하는 ‘김밥천국’

‘김밥천국 가는 날’ 표지


이 책의 첫 번째 소설 ‘치즈떡볶이’의 주인공 은심이 그렇습니다. 은심은 20년 넘는 경력의 40대 후반 학습지 방문 교사입니다. 구월동 대단지 아파트가 그의 일터라 할 수 있습니다.

은심이 학생의 자택에 방문하면 반갑게 맞아주던 학부모는 아파트 단지 길가에서 학습지 전단지를 돌리는 은심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은심이 먼저 인사하면 당황해 하네요. 은심은 떡볶이 국물이 잔뜩 묻은 흰 떡인줄 알고 씹었다가 대파의 하얀 부분이라 당황하는 상황을 자신의 처지에 비유합니다.

그런 은심이 만나게 되는 성인 학생, 세무사 진수의 부고는 은심을 아파트 단지 옆 종합병원 장례식장으로 이끕니다. 장례식장에서 뜻밖의 풍경을 보게 된 은심은 김밥천국으로 가서 떡볶이를 주문합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치즈 한 장을 추가로 주문해 따스한 떡볶이 위에 올립니다. 치즈가 사르르 녹도록…. 그리고 은심은 생각합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도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걸 봤는데, 아직 40대 후반이면 무엇을 시작하기에도 그렇게 늦지만은 않을 것이다. 평범한 떡볶이에 치즈 한 장을 더하듯이. 무언가가 바뀌기를 기대하면서, 당장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더라도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계속 무언가를 쌓아가다 보면 쌓아 올린 작은 것들이 파가 되고 치즈가 되어 자신의 인생에 조금 더 깊은 맛을 더해줄지도 모른다.

(‘치즈떡볶이’ 중에서, 44쪽)

세무사 진수는 소설 ‘김치만두’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말기 암 투병 중인 진수는 실향민 출신 할머니가 개성식 만두를 빚던 추억을 떠올리며 친구 상철이 김밥천국에서 사다 준 김치만두를 힘겹게 씹어 삼킵니다. 상철은 소설 ‘오므라이스’의 주요 등장인물이고요.

이렇게 소설 각 편의 주인공은 다른 편의 주인공과 인연이 있거나 소설 속에서 스치기도 합니다. ‘김밥’ ‘비빔국수’ ‘돈가스’ ‘오징어덮밥’ ‘육개장’ ‘콩국수’ ‘쫄면’ 같은 김밥천국의 메뉴는 각 소설의 제목이자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 인천에서 시작된 ‘김밥천국’처럼

인천 남동구 구월동 인천시청과 인천시교육청 일대 주거 지역. /경인일보DB


인천 중구청이 ‘인천시청’이었고 중구가 행정 중심지 기능을 하던 시절, 남동구 구월동은 인천의 변두리였습니다. 1985년 인천시청이 구월동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그 인근에는 대단지 ‘주공 아파트’와 함께 다양한 도시 기반 시설이 조성됐습니다. 대형 종합 병원도 들어섰습니다. 대단지 주공 아파트는 2000년대 더더욱 큰,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로 재건축되면서 현재의 도시 모습을 갖췄습니다.

구월동 시청 인근은 송도국제도시처럼 화려한 고층 빌딩과 첨단 인프라를 갖춘 신도시도, 중구 구도심처럼 고풍이 배인 역사 도시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의, 한 세대 정도는 거쳐간, 제법 오래된 도시의 모습입니다. 구월동 시청 인근의 모습을 아는 독자는 소설 속 그 풍경이 반가울 것 같네요.

개성에서 인천으로 피란 내려와 소래포구 어시장에서 일하며 고생 끝에 주공 아파트를 분양받아 그 아파트에서 개성식 만두를 빚는 진수 할머니의 모습이 꼭 인천 사람입니다. 주안역 재수학원에서 늦은 밤 나와 비싼 참치김밥 대신 ‘1000원 김밥’으로 허기를 달래던 은희도 그렇습니다. 김밥집의 대명사처럼 된 ‘김밥천국’은 주안역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퍼졌다는 사실을 아는 이 또한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혜진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인천과 김밥천국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그곳을 배경으로 어느 도시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인천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인천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퍼져나간 김밥천국이라는 이름과, 저 신포동 쫄면에서 시작해서 다른 지역,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략)

인천시청 근처 어딘가에 있을 내 관념 속의 김밥천국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맞물려 교차되는 복잡한 골목길 같은 곳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350쪽)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김밥천국 ‘비빔국수’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기자가 이 책 속 여러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아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번 주말 ‘김밥천국 가는 날’을 읽고 각자의 메뉴를 골라보시죠.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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