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정원사를 꿈꾸는 이유 [임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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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식물 어디서 사셨어요? 잘못 사신 것 같아요. 식물들이 상태가 영···."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시민동행정원을 가꾸고 있던 내게 지나가던 시민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재개발 단지에 살던 주민들이 새로운 터전으로 이사를 가면서 두고 간 식물이라 화원에서 보는 식물만큼 예쁘지 않을 수 있어요. 곧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자리 잡으면 생생해질 거예요." 간략하게 '재개발 단지에서 온 식물들의 두 번째 삶'에 관해 설명하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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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식물 어디서 사셨어요? 잘못 사신 것 같아요. 식물들이 상태가 영···.”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시민동행정원을 가꾸고 있던 내게 지나가던 시민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재개발 단지에서 온 튼실하지 못한 식물을 보고 나쁜 화원 주인에게 속아 병든 식물을 샀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재개발 단지에 살던 주민들이 새로운 터전으로 이사를 가면서 두고 간 식물이라 화원에서 보는 식물만큼 예쁘지 않을 수 있어요. 곧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자리 잡으면 생생해질 거예요.” 간략하게 ‘재개발 단지에서 온 식물들의 두 번째 삶’에 관해 설명하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긴다.
재개발 단지에서 구조해 공덕동 식물유치원을 거친 식물은 확실히 건강을 되찾은 듯 보였지만, 구조한 식물이 살아나는 과정까지 다른 이들과 나눌 수는 없었다. 외진 골목길에 버려진 식물이라고 말하면 다들 비실대고 상태가 좋지 않을 거라 상상한다. 그러나 실은 정반대다. 내가 뿌리를 들어내기 전까지 기세등등 사람 없이도 잘 자라고 있던 식물 아닌가. 사람도 터전을 옮기면 적응하기 힘들어하듯, 식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화원에서 사온 식물은 흙까지 함께 옮겨 심으면 되니 문제가 없지만, 재개발 단지에서 구조한 식물은 뿌리까지 일부 상하는 일이 많다. 그 상태로 새로운 곳에 심어주면 뿌리가 새로운 흙을 잡지 못해서 힘들어한다. 대부분 이 과정에서 소위 말하는 ‘몸살’을 겪게 되는데, 다시 건강해질 때까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기다림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살아남을 식물은 살아남고, 회복하지 못하면 그대로 옆 식물의 퇴비가 되어준다.

정원 가꾸기라 하면 어떤 식물을 어느 곳에 배치해서 심을지 정하는 것이 중요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흙을 만지며 일하다 보면, 만들어둔 정원을 유지하고 가꾸어주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다. 물을 꼬박꼬박 주고 더 크게 자라라며 비료도 주고, 벌레가 생긴 것 같으면 농약도 좀 뿌려주고 더 예쁘게 자라라고 가지치기를 해주고. 내가 심지 않았다는 이유로 ‘잡초’라 불리는 식물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다 이름이 있는 식물일 텐데. 기왕 여기 사는 거 다 같이 살자고 품어버리는 나는 참으로 게으른 정원사다.
이런 마음도 잠시, 휴일에 놀러간 산에서 깨달았다. 자연이 가꾼, 그저 내버려둔 자연스러운 풍경이 나는 제일 좋았구나. 인간의 손을 최대한 덜 탄 채 식물이 알아서 만들어낸, 그런 정원이 좋았던 거다. 스스로의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내는 풀들도 좋고, 혹은 경쟁에서 밀려 영 부실한 식물의 모습도 좋다. 아무 문제 없는 멀쩡한 농산물을 못생겼다며 ‘파치’라 부르고 버리는 것처럼, 식물도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빛을 잘못 받아서 웃자라거나 잎사귀가 작거나, 조금이라도 모범적인 규격에서 벗어나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우리는 자연에도 외모 지상주의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늘 가장 예쁜 것만, 좋은 것만 보이고 싶어 하지만 못난이면 어떻고 제멋대로 생겼으면 또 어떤가.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것을.
백수혜 (‘공덕동 식물유치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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