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게이 문학의 거장’ 에드먼드 화이트의 국내 유일 부고 [.txt]
동성애 불법 시대 ‘오토픽션’ 선도한 게이문학 구축
억압·악마화 맞선 유머·스타일·적나라한 욕망 올돌

지난 6일, 미국 프린스턴 대학 문예창작과 이윤 리 교수가 절친했던 동료 에드먼드 화이트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에드먼드와 알고 지낸 지 1년 뒤, 큰아들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에드먼드가 제게 문자를 보내왔더군요. ‘여기 도시로 와. 하루 종일 안아줄게. 함께 슬퍼하자’….”
리 교수는 이후 둘째도 자살로 잃었다. 사건 여덟달 뒤 리는 화이트를 만나 한 지인에 대해 대화 나눈다.
“그녀는 아름다워요.”
리의 말에 화이트가 대꾸했다. “가끔은 그렇죠.”
“우리와는 달라요.”
리가 말했고, 둘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아름답지요.”
미국서 가장 오래된 문학 저널 ‘예일 리뷰’에 게재된 글이다. 여기 대화의 주인공은 중국계 이민자로 모국어 없는 타지에서 두 아이를 잃은 리 작가가 아니다. 리를 붙들어 견디게 하는 에드먼드 화이트다. 섬세한 도량과 재치가 한결같은 80대 노작가. 화이트야말로 사랑하는 많은 이를 잃었다. 조카가 자살했다. 그는 자기의 “세계가 1980년~90년대 끔찍하게 파괴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사람”(영국 소설가 앨런 홀링허스트)이어야 했다. 에이즈 발병 확산으로 인한 게이의 세계를 말한다.
20세기와 21세기, 두 세기에 걸친 ‘세계 게이 문학의 거장’ 에드먼드 화이트가 지난 3일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5.
지금 한국엔 그의 책 한권이 없지만, ‘그의 이야기’는 70년 전치부터 이미 준비되어 있다.
“두려움과 지독한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었다, 그러니까 어른의 세계든 뉴욕이든 파리든 사랑이든 더 나은 세상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게 어떤 깊이가 있음을 발견하는 건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얕은 개울보다 덜 오염됐음을 알게 되는 건 또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마치 고서를 연구하고 낙관하는 성직자에게 현재는 주목할 가치가 없듯, 나의 관심은 고통스러운 현재에서 벗어나, 아픈 과거를 분석함으로써 가능해질 행복하고 건강한 미래로 이끌려가고 있었다.”
달뜬 열망과 불안을 움켜쥔 저 문장을 페이퍼백에 눌러 담은 미국 소설 제목은 ‘소년의 이야기’(A Boy’s Own Story)이다. 화이트의 첫 자전적 소설로, 작품과의 첫 대면을 고백하는 후대가 많다. 듣자면, 대개 자기가 자신과 대면한 얘기다.
“10대 때, 런던 한 서점에서 ‘소년의 이야기’를 집어 몰래 계산대로 가져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책 표지의 아름다운 사내 때문에 저 자신이 들킬까 두려웠거든요. 하지만 진짜 전율한 건, 글의 명료한 아름다움이었어요. 소설은 나의 욕망이 예술적 충동과 분리될 필요가 없음을, 욕망이 바로 그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줬습니다.” (미국 소설가 아담 해슬렛)
“‘소년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가 겨우 10대였어요. 모든 것에 매료됐죠. 사랑스럽고, 유연하며, 반짝이는 듯한 언어, 성과 계급에 적용된 노골적인 정밀함. (…) 화이트를 통해 작가는 원치 않고 초라하고 어쩌면 혐오스러운 삶의 소재를, 감성과 스타일로, 즉 연금술적인 번역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걸 깨달았죠.” (영국 작가 올리비아 랭)
1982년. 15살에 처음 동성애를 경험한 뒤로 자신의 정체성, 욕망과 절망의 대내외적 구도 속에서 부딪히고 성장해 가는 ‘소년의 이야기’가 출간된 해다. 향후 42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갈 에이즈의 서막을 “동성애자 41명에게 드물게 발생하는 암”으로 뉴욕타임스가 알린 게 1981년이었다. 1983년 “보수적인 도시 영국 말버러의 한 서점에서 책의 표지를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을 또한 기억하는 에런 히클린(LGBT 잡지 ‘아웃’의 전 편집장)의 말대로, 바야흐로 “게이들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매개체로 내쳐지”게 된다. 화이트의 작품 안에서 그럼에도 게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다채롭다. 사랑하고 몸을 섞고 때로 절망하고 계속 열망한다. ‘아름다운 방은 텅 비어 있다(The Beautiful Room Is Empty, 1988)와 ‘이별 교향곡(The Farewell Symphony, 1997)으로 이어지는 자전 3부작(문단에선 “퀴어 정전”으로도 부른다)에서, 회고록 ‘나의 삶(My Lives, 2005), ‘시티 보이(City Boy, 2009), 그리고 올해 초 출간된 ‘내 인생의 사랑: 섹스 회고록(The Loves of My Life: A Sex Memoir)’에서까지. 올 1월 회고록을 계기로 이뤄진 가디언 인터뷰의 기사 제목은 ‘에드먼드 화이트의 정욕, 사랑, 그리고 문학: 나는 남자 3천명과 잤다. 지인이 물었다, 왜 그리 적냐고’다. 유작이 된 작품에서 예고된 비명(碑銘) 같달까.
화이트는 1940년 1월 미국 중서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토목 기술자이자 사업가인 아버지는 야구도 안 하는 아들을 수치스러워했고, 학교 심리학자인 어머니는 아들에게 직접 “경계성 정신장애” 진단을 내렸다. 7살 때 부모는 이혼한다. 글쓰기는 스스로를 납득하려던 발버둥이자 지독한 고통을 견디게 한 처방이었으니, 처음 동성애 소설을 습작한 때가 14~15살이었다. 뉴욕이, 파리가, 어른이, 사랑이, 빗대자니 샹그릴라였던 셈이다. 그 시절 중서부에선 “동성애 억압, 좌파의 악마화 (…) 불의에 대한 무감각” 따위 “무슨 일이든 일어났다”고, 이후 1960~70년대 뉴욕에서의 생동하는 삶을 회고한 ‘시티 보이’에 쓴 대로다. ‘시티 보이’에서 수전 손택, 재스퍼 존스 등 게이가 아닌 척 행동하며 커리어를 쌓고 명성 얻은 게이 예술가를 “블루칩 게이”라 부르며 비판한 일화는 적이 자자했다.
미시간 대학을 졸업한 화이트는 타임-라이프 북스(1962~70), 새터데이 리뷰와 호라이즌(1972~75)에서 기자, 편집자 등으로 일했다. 지척에서, 동성애를 “악성 질환”이라고 표지 기사 쓰던 타임지(1966년)를 봐야 했다. 습작이 거듭됐고, 출판사의 거절은 지속됐다.
1973년 첫 소설 ‘엘레나를 잊으며’(Forgetting Elena, 가상의 섬에서의 게이들 일상을 다룬다), 1977년 첫 논픽션 ‘게이 섹스의 즐거움’(The Joy of Gay Sex)을 위시하여 소설, 논픽션이란 두 축에서 화이트는 이력을 쌓아간다. 이전, 고어 비달(1925~2012)이나 제임스 볼드윈(1924~1987) 등 게이 작가의 게이 문학이 없진 않았다. 화이트의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참여했던 에런 히클린은 그러나 ‘게이 캐릭터’를 앞세운 작품과 ‘게이 독자’를 앞세운 작품으로 화이트 이전 이후를 구분한다. 무엇보다 화이트는 오토픽션을 선도한다.
이러한 조류 변화에 있어, 1969년 6월 ‘스톤월 항쟁’은 결정적이다. 뉴욕 맨해튼에 있던 게이 바를 단속한 경찰에 한 레즈비언이 저항하면서 촉발됐다. 거의 전역에서 동성애는 불법이고, 뉴욕 경우 성별 의상 규정까지 뒀던 때다. 이런 억압 속에서 주류 게이 커뮤니티는 갈등 회피적 태도를 취해왔으나, 스톤월이 낱낱의 게이들을 일깨운다. 1960~70년대 뉴욕 시절 “새벽 2시에 글 쓰다 부두로 가 트럭 안에서 20명의 남자들과 성관계를 갖는 일이 내겐 매우 정상적으로 느껴졌다”(‘내 인생의 사랑’)던 화이트가 단골 삼던 데가 바로 스톤월이었다. 항쟁에 적극 동참한 화이트는 당시 친구 시인 알프레드 콘(82) 부부에게 이렇게 편지한다.
“군중 사이 분노가 휘몰아쳤네. 움츠리고 무질서한 게이들을 보고 경찰은 코웃음을 쳤지. 하지만 군중은 흩어지지 않았어. 모두가 들썩였고 분노했고 등등했어. 슬로건도 없지, 행동에 나선 사람도 없지, 그런데 무언가 싹트고 있었네.”
소년 시절 한편으로 치료와 상담을 자청했던 화이트에게도 동성애가 의학용어에서 온전한 권리·문화의 언어로 거듭났으니, 섬세한 문학주의자인 그의 행보에 더해진 행동주의도 낯설 건 없다. 현대 엘지비티(LGBT) 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게이 작가 모임인 ‘바이올렛 퀼’(1979)의 멤버로, 세계 최대 에이즈 지원단체로 성장하게 되는 ‘게이 남성 건강위기’(1982)의 초대 회장으로 화이트는 활동했다. 다만, 바이올렛 퀼의 멤버 7명 가운데 4명을 에이즈로 잃었고, 자신 역시 1985년 후천성면역결핍증(HIV) 양성판정을 받기에 이른다.
화이트를 가장 ‘일반적’ 작가로 내몬 시절을 꼽자면, 1983년부터 15년여 머물렀던 파리의 시간이겠다. 자타의로 이른바 ‘게이 게토’의 문화가 강력한 뉴욕에 견줘, 파리에선 굳이 ‘게이 작가’를 표명할 까닭이 없었다. 1988년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화이트는 “뉴욕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자기계발의 형태로 삼지만, 파리 사람들은 예술의 한 형태로 삼는다”고 말할 정도로 파리를 아꼈다.
이 시기 집결되어 나온 결과물이 장 주네의 전기(‘주네: 전기’, 1993)이다. 퓰리처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이어 ‘마르셀 프루스트’(1998), ‘랭보: 반항아의 이중생활’(2008)까지 세권의 전기를 펴냈다. 당시 파리를 거닐며 역사, 문학, 예술, 동성애의 자취를 쓸어담은 에세이 ‘게으른 산책자’(효형출판, 2004년, 절판)가 국내 소개된 유일한 저작이다.

1999년부터 2018년 명예교수가 되기까지 화이트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토니 모리슨(94), 조이스 캐럴 오츠(87) 등과 함께 문예창작을 가르친다. 가르침을 배움으로 간주했다. 미국 10여 도시를 다니며 게이들의 삶을 기록한 말하자면 ‘게이 여행기’인 ‘욕망의 상태’(States of Desire, 1980)는 2014년 ‘욕망의 상태 재방문’(States of Desire Revisited)으로 개정증보한다. 후기가 그의 태도다. ‘늙은 게이, 아시안 게이, 노동자 게이 등을 거의 또는 전혀 포착하지 않’은 채, “미국 게이의 삶에 대한 이상하게 편향된 시각”을 제공했다는 자기 고백이다.
이제 그의 문학 강의 한 토막만 청해 듣자.
―포르노와 당신의 글은 무엇이 다릅니까?
“뭐, 다 흥미롭긴 하지만요, 포르노 글은 한 손으로 쓰는 글이고, 특이한 어휘를 사용해서는 안 되며, 자위의 리듬을 따라야 하는 반면, 제가 쓰는 글은 마음속 떠오르는 모든 생각, 그러니까 다리에 쥐가 나는 느낌과 사정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것, 그리고 그냥 생각나는 모든 것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예요.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육체가 영혼을 배반할 때 희극이 시작된다고 말했어요. 젊은 연인들이 도망치려고 뛰쳐나가지만 회전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거죠. 그게 희극의 시작이에요. 물질적 세계가 당신의 정신적 야망을 가로막을 때 말이죠.”
―섹스에 대한 기억 행위도 섹스의 정신적 측면에 속할까요?
“그럼요. 자위행위에는 네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아요. 누구는 시각적으로, 누구는 언어적으로 하지요. 사진을 보는 것보다 글로 읽고 싶어 하는 거예요. 누구는 과거 ‘뜨겁던 시절’을 상기하려고, 누군간 또 새로운 경험을 상상하려고 하죠. 누구에게든 이 네가지 유형이 섞여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기억은 어떻게 작품과 관련하는지요?
“난 두 손으로 쓴 것 같아요(주: “한 손으로 쓰는 글”이 아니라는 언어유희). 나이가 너무 많고, 발기부전이고, 자위도 안 하거든요. 하지만 제 기억력은 아주 생생해요. 아마 정확하지는 않을 거예요. 사진처럼 생생한 기억력을 가진 제 여동생이 제가 책에 있는 건 다 틀렸다고 하더라고요.”(올 3월 ‘리터러리 허브’ 인터뷰 재구성)
화이트는 ‘남편’과 여동생을 유가족으로 남겼다. 영국 소설가 폴 멘데즈(43)는 “에이즈 이전 시대를 기억하고 살아남은 극소수의 게이 작가”로 그를 이른다. 분명한 ‘족적’이다. 화이트는, 연인과 벗들의 많은 죽음을 배웅하며 “죄책감을 느낀다”(가디언 인터뷰, 2000년)고도 말한 바 있다. “무감해지지 않기도 어렵다. 잊고 싶은 게 당연지사고. 하지만 진짜 의무감과 책임감은 역사, 그리고 알고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그리하여 화이트가 남긴 30여종 작품 속에 사랑하는 존재들이 우아하고 때로 질척하게 살아 있다. 국내에선 그를 ‘추앙’하거나 ‘추방’할 기회가 없었다. ‘추모’할 기회까지 잃을 수는 없다. 이 기사가 국내 유일의 부고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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