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밸런스 좋은 와인 같더라…부산콘서트홀 울린 클래식

유주현 2025. 6. 28.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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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도시 부산 출항
“부산을 아시아의 별로 만들고 싶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꿈이다. 자신의 고향 부산을 아시아의 ‘클래식 스타’로 만들겠다는 꿈. 지난 20일, 한때 미군 캠프가 있던 부산진구 부산시민공원에서 그 꿈에 시동을 걸었다. 공원 한복판에 파도를 넘는 거대한 배 모양의 ‘부산콘서트홀’이 문을 열었다. 2011석 규모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홀’에서는 28일까지 개관 페스티벌이 이어진다. 정명훈 클래식부산(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를 운영하는 부산시 산하기관) 예술감독은 1997년 자신이 창단했던 아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APO)를 재결성하고 일본의 바이올리니스트 사야카 쇼지, 중국 첼리스트 지안 왕, 한국의 월드클래스 성악가 황수미·김기훈·김승직·방신제 등 ‘아시아의 별들’로 솔리스트를 꾸려 개관을 자축했다. 클래식 전용홀이 없어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기피했던 ‘불모지’의 굴욕은 간데 없었다. ‘클래식 도시 부산’의 첫날 밤은 그렇게 시작됐다.

20일 부산콘서트홀 개관 공연을 베토벤 합창교향곡으로 장식한 정명훈 예술감독과 APO오케스트라. [사진 클래식부산]
부산 최초, 전국 8번째 클래식 전용홀의 뚜껑이 열리자 마니아들의 관심은 음향에 쏠렸다. 22일 ‘황제 그리고 오르간’ 공연은 이에 화답하듯 피아노에 조성진, 오르간에 조재혁이 출격해 음향의 다이나믹을 과시했다. 조성진의 베토벤 협주곡 5번 ‘황제’ 연주 못잖게 주목받은 게 ‘악기의 제왕’ 파이프오르간의 공식 데뷔였다. ‘부산 갈매기’의 활짝 핀 날개를 닮은 파사드 바로 아래서 조재혁이 연주한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는 장마철 장대비처럼 객석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황제’ 2악장 아다지오, 감정과잉 없이 명징한 조성진의 타건은 피아니시모로도 ‘불멸의 연인’을 또렷이 소환했다.
잔향시간 약 2.3초, 저음비 1.07. 부산콘서트홀의 음향지표다. ‘풍부한 울림과 따뜻하고 포근한 음색’을 갖췄다는 뜻. 음향 전문가 최진 톤마이스터는 ‘밸런스가 좋은 와인’에 비유했다. “오랜 숙성을 거쳐 지금의 음향을 갖춘 서울의 전용홀들과 비교하긴 어렵지만, 새 홀임에도 이미 안정권에 들어 있는 소리”라는 것이다. 한정호 공연평론가는 “소리가 퍼지지 않고 잘 뻗어나가는 ‘프로젝션’이 좋은 홀이다. 선명도가 높은 대신 중저음이 아쉽지만, 천장과 벽면의 곡면 구조를 감안한 연주로 보완할 수 있다”고 했다.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는 조재혁. [사진 클래식부산]

객석은 연일 전석 기립박수로 뒤덮였다. 관객들은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었다. 개관 페스티벌 공연은 대부분 오픈 즉시 매진됐고, 이달 초 열린 파크콘서트에는 5만 명이 모였다. 하반기엔 라스칼라 오케스트라,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등 세계적 악단이 찾아오는데, 홈페이지 회원 2만 명, 유료 멤버십 3000명은 시민들의 기대감을 말해준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클래식 팬 강해린씨는 “세계적 수준의 클래식 공연이 이렇게 최고 시설 공연장에서 열리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다려 오고 이렇게 기뻐한다는 게 문화적 수준을 말해주는 것 같다. 도심 한가운데의 미군기지가 공원이 되고, 자연 속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라스칼라 등 세계적 악단 공연 줄예약
22일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한 조성진. [사진 클래식부산]
인구 330만 명, 제2의 도시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부산은 클래식 인프라가 부족했다. 2021년 빈필이 최초로 방문했을 때도 대형 행사장인 벡스코에서 공연을 해야 했다. 클래식 전용홀은 고사하고 공연장 수 자체가 전국 평균의 절반 수준이니 시장도 작았다. 2024년 공연시장 총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에서 클래식 공연 티켓 약 24만 매가 팔렸지만 부산은 15만 매에 그쳤고, 티켓판매액(34억원)도 대구(40억원)는 물론 임윤찬·조성진 리사이틀이 열린 광주(34억5000만원)에도 밀렸다.

공연시장 발전에 인프라의 중요성은 이미 뮤지컬이 입증했다. 매년 국제뮤지컬페스티벌을 여는 ‘뮤지컬 도시’ 대구에 비해 부산은 5년 전만 해도 뮤지컬 공연장과 공연 횟수가 절반 수준이었지만, 2019년 뮤지컬 전용극장인 드림씨어터가 들어서 ‘오페라의 유령’ ‘라이언 킹’ 등 세계적인 걸작의 장기공연을 진행하자 2020년 이후 지역 관객 1위 시장으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티켓판매액은 188억원 규모로 대구(186억원)를 앞섰다.

파리 슬럼가를 음악으로 넘치게 만든 필하모니 드 파리. [중앙포토]
2027년 북항에 부산오페라하우스까지 개관하면 도시 브랜드 차원의 변화가 예상된다. 부산시는 콘서트홀과 오페라극장이 글로벌 문화도시 부산의 상징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메켈레와 임윤찬 협연 투어로 화제였던 파리 오케스트라가 상주하는 프랑스 파리의 필하모니 드 파리가 좋은 예다. 2015년 슬럼가였던 파리 19구에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개관,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자 파리 오케스트라의 위상도 높아졌다. 세련된 공연장 디자인과 360도로 오픈된 무대의 탁월한 음향이 악단의 연주를 빛내니 베를린 필, 런던심포니 등 세계 최고 악단도 앞다퉈 찾고 있다.
함부르크 항구도시를 문화예술도시로 격상시킨 엘프필하모니. [중앙포토]
독일 함부르크 엘베강변에서 파도를 이고 있는 형상의 엘프 필하모니도 버려진 커피창고를 리노베이션해 새로운 랜드마크로 뜬 도시재생 사례로, 2017년 개관 이래 항구도시 함부르크를 문화예술도시로 변화시키고 있다. 엘프 필하모니 의 개관 후 5년 결산자료에 따르면 덴마크·스위스 등 인접국 관광객의 17~21%가 엘프 필하모니 방문을 위해 함부르크를 처음 방문했고, 콘서트홀 뿐 아니라 함부르크의 여타 문화시설 방문객도 크게 늘어 도시 전체의 문화 생태계가 활성화됐다. 콘서트홀 방문자의 75%가 오페라를, 73%가 연극을, 82%가 무용을, 80%가 갤러리를, 58%가 박물관을 관람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시민공원도 서사를 품고 있다. 일제 강점기 군사 기지, 해방 후 미군기지 ‘캠프 하야리아’로 사용되다 100년 만에 시민 주도로 반환된 땅에 2011년 공원이 조성됐고, 글로벌 문화도시라는 빅픽처 아래 콘서트홀이 들어섰다. 조유장 부산시 문화국장은 “애환과 상처의 땅을 문화로 치유하자는 뜻에서 세워진 콘서트홀은 부산이 문화예술도시로 가기 위한 첫 단추”라며 “‘공원을 품은 콘서트홀’에 이어 ‘바다를 품은 오페라하우스’, 프랑스 퐁피두센터와 계약단계인 ‘자연을 품은 이기대예술공원’까지 3단계 인프라 시리즈가 완성되면, 이를 통해 세계적 콘텐트와 교류하며 부산의 문화예술도 세계에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고가 242만원 VIP 투어도 조기 완판
2027년 개관 예정인 부산오페라하우스 조감도. [중앙포토]
경제적 파급 효과는 이미 시작됐다. 부산관광공사가 기획한 ‘부산콘서트홀 개관 기념 VIP 투어’는 국내 여행상품 최고가(242만원)임에도 조기 완판됐다. 오페라하우스를 건설 중인 북항엔 이미 호텔·음식점·쇼핑몰·캠핑장까지 들어서고 있다. 조유장 국장은 “북항에 크루즈 여객선이 매달 2번, 한번에 2000명씩 들어와 반나절을 보내고 가는데, 오페라를 볼 수 있다면 하루 이상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5월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정명훈 효과도 예상된다. 2027년부터 라스칼라와 클래식부산을 모두 이끌게 되는 정명훈 예술감독은 “부산오페라하우스 오프닝을 라스칼라와 함께 하겠다”고 했다. 두 극장의 시즌 공연을 동시에 기획하는 등 시너지를 낸다면, 부산이 아시아 음악의 중심이 되는 것도 꿈이 아니다.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홀인 부산콘서트홀이 20일 정명훈 예술감독이 이끄는 아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APO) 연주와 함께 문을 열었다. 웅장한 빈야드 스타일의 무대와 객석, 최첨단 음향시설 및 대형 파이프 오르간을 구비했다. 사진 부산콘서트홀
과제도 있다. 개관 페스티벌에 지역 예술단체가 소외됐다는 지적이 나왔듯, 신생 조직인 클래식부산과 부산문화회관 등 기존 예술조직들의 협력과 상생이 당면과제다. 클래식부산의 출범을 축하하러 온 포르투나토 오르톰비나 라스칼라 극장장은 ‘소속감’을 언급하며 “모두가 주인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명훈을 라스칼라에 영입한 오르톰비나는 베니스 라 페니체 등 이탈리아 주요 오페라극장을 섭렵한 저명한 예술 경영자다.
20일 부산 연지동 부산시민공원 내 부산콘서트홀 개관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 부산콘서트홀

“콘서트홀과 오페라극장이 성공하려면 시민 모두가 우리 것이라고 느끼게 해야 합니다. 라스칼라가 여기서 라보엠을 공연할 때 어린이합창단을 여기서 꾸린다면 부모들이 얼마나 흐뭇할까요. 바닷가에 탄생하는 보석 같은 극장에 수준높은 음악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고, 진정한 목표는 온 도시의 참여가 돼야 합니다. 예술적 프로젝트이자 사회적 프로젝트죠.”

■ 2000석 극장에 파이프오르간…남은 건 관객 개발



박민정 클래식부산 대표
클래식 애호가 1000명 vs 콘서트홀 유료 멤버십 3000명. ‘불모지’는 이미 ‘클래식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예술의전당에서 30여년간 공연부장, 문화사업본부장 등을 지낸 박민정(사진) 대표가 이끄는 클래식부산이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 운영을 맡았다.

Q : 서울과 부산의 클래식 시장에 차이가 큰가.
A : “부산이 문화 불모지라지만 세종문화회관보다 부산시민회관이 먼저 지어졌을 정도로 관객 성장 기반이 탄탄하다. 유독 클래식 전용홀이 늦어져서 많은 분들이 서울·대구·통영으로 다녀야 했지만, 이제 콘서트홀이 부스터 역할을 할 거라 본다. 서울도 지금처럼 시장이 성숙하기까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개관으로부터 10여년 걸렸는데, 부산은 요즘 매진 상황을 보니 5년도 안 걸릴 것 같다.”

Q : 페스티벌 등 차별화된 기획으로 브랜딩을 해야 할 텐데.
A : “이미 정명훈 음악감독이 가장 큰 브랜드다. 매년 6월 정명훈이 이끄는 페스티벌 형태도 구상하고 있고, 가을에도 집중적인 프로그램을 만든다. 부산·울산·경남 인접지역까지 1000만 인구배경을 가진 부산은, 관객의 70~80%가 외지인인 통영이나 대관령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비수도권 최초로 설치한 파이프오르간을 비롯해 2000석 극장에 맞는 대규모 편성과 음악 전용홀의 특징을 잘 경험하는 기회를 만들려 한다.”

Q : 클래식도시 부산의 탄생이 국내 클래식시장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A : “예술가들에게 연주 기회도 늘어나지만, 정명훈 감독 말처럼 관객개발이 가장 중요하다. 부산콘서트홀이 관객개발 실험에 성공사례를 만들어가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필하모니 드 파리와 시떼 드 라 뮤지끄에 가보니 문화소외 지역이 음악으로 행복할 수 있는 곳이 됐더라. 인구감소 시대에 클래식 관객의 양적 팽창은 몰라도, 관객이 성숙해 가는 좋은 모델을 만들어가고 싶다.”

Q : 클래식 본고장에서도 관객 노령화가 골치다.
A : “클래식은 전세계 보편적 언어고, 우리의 클래식 문화가 깊어져서 똑같은 기준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부산 시민도 오페라를 즐겨야겠지만, 부산이 글로벌 허브도시로 가기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서 세계인들이 같이 즐기는 보편적 문화가 중요하다. 부산이 아시아의 중심지를 지향하고 아시아에는 이제 오페라를 알아가는 나라가 많으니, 그들이 부산에서 오페라를 즐길 수 있겠다.” 」

부산=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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