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틀에 넣고, 색으로 표현한 향기…이런 사진 처음이야

서정민 2025. 6. 28.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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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소재로 한 독특한 사진전
백정기 작품 ‘is of 두물머리 2024-2’. 단풍잎·코스모스에서 추출한 색소로 인화 후 에폭시 코팅하고 아크릴 밀폐 챔버와 질소치환장치를 달았다.
카메라가 발명된 이래, 자연은 무수히 많은 사진가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피사체였다. 이렇게 기록된 자연 풍경은 특정 장소만이 품고 있는 특별한 풍경일 수도 있고, 동네 뒷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일 수도 있지만, 어찌 됐든 그 사진들은 자연 그대로를 품고 있다. 그런데 지금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갤러리 나우에선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이상한 자연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오는 8월 10일까지 아라리오뮤지엄에서 진행되는 백정기 개인전 ‘is of’와 7월 2일부터 26일까지 갤러리 나우에서 진행되는 이정록 개인전 ‘Private Light’다.

국민대 입체미술과를 졸업하고, 영국 첼시 미술학교 순수미술 과정을 수료한 후 글라스고 미술학교 순수미술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백정기는 2007년부터 치유, 보존, 재생, 자연, 욕망 등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이어왔다. 그의 작업의 특징은 사진, 조각 등과 같은 전통적인 예술 매체와 과학 기술의 접목이다.

2011년부터 시작된 연작 ‘is of’는 특정 장소의 자연 풍경을 촬영하고, 그 풍경 속 자연물에서 추출한 색소를 활용해 사진을 인화한 작업이다. 하지만 코스모스꽃잎, 버드나무잎, 단풍잎 등에서 추출한 색소는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바래지기 마련. 백 작가는 이 시간을 늦추기 위해 사진을 에폭시로 코팅하고 산소 유입을 차단하는 챔버에 넣어 전시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품들이 단단한 금속과 플라스틱으로 둘러싸여 있고, 심지어 산소호흡기를 낀 환자처럼 기괴하게 보이는 이유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소유와 보존 욕망을 드러내는 동시에 존재의 유한함과 무한함의 모순을 탐구 중”이라는 게 백 작가의 설명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간이 오래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매체가 사진이라는 정의는 무색해진다. 보통의 사진 작품이 갖고 있는 ‘에디션’도 무색해진다. “내장산과 팔공산 단풍잎 색이 다르고, 똑같은 곳에서 수집한 단풍잎도 옅기가 다르고, 시간이 갈수록 변하는 속도도 달라서 내 눈 앞의 사진은 ‘지금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인 거죠.”

이정록 작품 ‘Private Light 27’. 섬진강 주변에서 1년 중 잠깐 드러나는 특별한 풍경을 촬영했다.
자연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순리에 따라 소멸한다. 백 작가는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그래서 귀하게 여겨야 하는 자연을 말하고 있다.

광주대 산업디자인학과와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뒤, 로체스터공대 영상대학원에서 순수사진을 전공한 이정록 작가의 사진은 빛과 에너지로 가득하다. 보는 이들은 그의 사진들을 통해 행복한 기운을 선물 받는다. 하지만 정작 사진가에게는 이토록 노동집약적인 작업도 없다.

이 작가의 촬영은 보통 수개월 이상 걸리는 로케이션 조사부터 시작된다. 무수한 테스트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기본. 이후 어두컴컴한 밤 혹은 동틀 무렵에 아날로그 대형 카메라를 이용해 장노출 기법, 지속광과 플래시의 혼용 등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촬영을 진행한다. 믿기 힘들겠지만 몇 시간이고, 어쩌면 하루를 꼬박 걸려 촬영하고도 얻을 수 있는 사진은 딱 한 장 뿐이다. 그렇게 ‘생명의 나무’ ‘신화적 풍경’ ‘흰 사슴, 루카’ 등의 시리즈를 작업했다. 제주에서 아이슬란드까지, 바닷속부터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이 작가는 직접 만든 대형 오브제를 들고 세계 곳곳을 찾아다녔다.

이번에 소개하는 ‘Private Light’는 우리 강산이 무대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몇 년 간 국내에서만 작업을 하게 됐어요. 작업실을 시골로 옮기고 도시 끝자락에 있는 집에서 작업실을 4년간 오갔는데 어느 날, 집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여는데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더군요. 이게 바로 ‘도시의 냄새’구나! 동시에 형언할 수 없이 좋은 자연의 향기라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됐고, 식물에게 향기란 곧 언어라는 것도 깨달았죠.”

이 작가는 식물마다 다른 향기 언어를 사진 속 색감으로 표현했다. 주로 ‘순간광’을 사용했던 전작과는 달리, 색이 있는 ‘지속광’을 사용해 실제 존재하는 풍경 위에 물감을 칠하듯 라이트 페인팅을 했다.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장노출을 준 다음, 작가가 직접 강렬한 색 광원을 들고 피사체 주변을 세밀하게 반복적으로 오가야 하는 작업이다. 광원의 색이 피사체(나무)의 전체를 덮으려면 빛과 피사체의 거리를 치밀하게 계산해서 지속적으로 빛을 조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하트 모양 연못을 공중에서 찍은 듯한 사진은 섬진강 주변인데 1년 중 물이 빠지는 특정 기간에만 이 모습을 드러낸다. 드론을 사용하지 않고, 위에서 조망한 듯한 모습을 잡아내려면 적당히 거리가 떨어진 곳에 다리가 있어야 한다. 작가는 이 앵글을 위해 어떻게 다리를 찾아내고 또 광원이 닿는 거리를 계산했을까. 사진 속 저 나무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길래 노랗게 물들었을까. 그의 사진은 보는 내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상상케 한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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