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편의점에서 티격태격한 이유

카드 없이 ‘현금 없는 버스’에 올랐다가 버스 기사의 계좌이체 요구에 눈앞이 캄캄해진 노인. 장벽같은 키오스크 앞에서 한겨울 식은땀을 흘린 어르신. 잊을만하면 나오는 디지털 격차의 레퍼토리입니다. 수년째 만연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고요.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0세 이상 30.2%가 현금 지급을 선호합니다. 2030세대의 10배에 가깝습니다. 무인 주차장에 들어섰다가 신용카드가 없어 차를 놔두고 왔다는 어르신도 있다죠. 신용카드는 지난해 대금 지급의 절반에 가까운 46.2%를 책임졌습니다. 현금은 15.9%였습니다. 모바일 결제는 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앱에 결제할 신용카드나 계좌정보를 등록해 결제하는 방법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편의점 앱과 각종 ‘페이(pay)’가 이에 해당합니다. 2023년 모바일 기기를 통한 결제(50.5%)가 실물 카드 결제(49.5%)를 앞지른 뒤, 지난해는 52.4%로 그 차이를 더 벌렸습니다. 간편결제 서비스인 ‘페이’는 코로나19 비대면 결제 폭증을 타고 자리를 확고하게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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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오스크·페이 등 디지털 장벽
AI시대에 불평등 심화할 수도
」
디지털 격차는 초기에 컴퓨터의 유무와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습득 여부에서 결정됐습니다. 디지털 격차 1.0이라 부를만합니다. 디지털 격차 2.0은 스마트 기기를 통한 사회활동 기회와 경제적 이득으로 판가름 되는 양상입니다. ‘현금 없는 사회’나 ‘스마트 기기를 통한 코로나19 원격 수업’은 취지와는 달리 불편과 불평등을 낳은 거죠. 여기에 인공지능(AI)이 가세했습니다.
AI 시대입니다. 지난 21대 대통령 선거에서 각 후보가 AI 전면전에 뛰어들면서 벼락처럼 온 듯도 합니다. 지난 19일 캐나다의 시장분석 기관인 프리시던스 리서치가 내놓은 2034년 글로벌 AI 시장 규모는 3조6805억 달러(약 5020조원). 현재의 5배 규모입니다. 새 정부는 ‘소버린 AI’를 내걸고 대전환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24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취약계층(저소득층·장애인·농어민·고령층 등)의 AI 서비스 이용 경험(30.7%)은 여전히 일반 국민(51%)보다 낮습니다. 특히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통한 직장·의료·교육·정보 분야에서의 소외가 클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생성형 AI를 통해 작업 자동화가 이뤄지는데, AI 접근성이 낮은 곳에서는 업무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AI는 국가 간 디지털 격차도 촉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중국 등 기술 강대국은 AI 시스템을 이용해 데이터 분석에서부터 자동화, 신약·무기 등을 개발하고 있지만, 컴퓨팅 파워가 없는 국가는 과학 연구는 물론, 스타트업 성장과 인재 유지에도 제한받고 있다”며 “AI가 국가 간 새로운 디지털 격차를 만들고 있고, 그 격차를 줄이는 데 미국이나 중국의 도움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습니다.
AI 시대. 그런데 한편에서는 버스요금을 내려다가 카드가 없어 계좌이체의 벽에 부딪히고 있고, 키오스크 앞에서 쩔쩔매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유엔개발계획(UNDP) 관계자가 국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AI 활용과 관련해 국가들 사이에서 불평등이 생길 수 있고, 국내에서도 불평등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은 이런 상황을 시사합니다.
버스요금 현금 결제 비중은 1%도 안 됩니다. 그런데 1%가 따라가기에 디지털은 너무 빨리 달리고 있는 듯합니다. 첨단은 불평등과 같이 달릴 수밖에 없을까요.
참고로, 서두에 언급한 편의점 어르신과 지인은 ‘현금’으로 원만히 ‘합의’했다고 합니다.
김홍준 기획담당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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