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억에 매몰된 인간성…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궁극적 질문
반란실패 홀로 살아남은 기훈
분노 사로잡혀 자중지란 자초
게임 종료후엔 OX투표도 계속
‘자유·민주’ 포장된 다수결원칙
희생 강요하는 ‘불합리함’경고
익숙한 설정과 높은 기대감 탓
시즌1만큼 전율과 충격은 없어

역대 넷플릭스 시리즈 최고 흥행작이자 K-콘텐츠의 위상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오징어 게임’(감독 황동혁)이 묵직한 마침표를 찍었다. 27일 공개된 시즌3(오겜3)는 6부작, 총 344분으로 구성됐다. 솔직히 말하자면, 더 이상 시즌1의 전율과 충격을 느끼긴 어렵다. 이미 익숙해진 설정과 높은 기대감으로 인해 속편이 봉착하게 되는 한계다. 하지만 “왜 이 게임을 진행하나?”와 “기훈은 왜 이 게임을 없애려 하나?”라는 궁극적 질문에 대해 황 감독은 선명한 대답을 내놓는다. 이 시리즈가 제시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석하기 위해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됨을 미리 밝힌다.
◇“너 때문이야” vs. “네 탓이 아니야”
시즌2는 ‘오겜’ 운영 체제 전복을 노리던 기훈(이정재) 일행이 진압되면서 마무리됐다. 관에 실려 다시 게임장으로 온 기훈은 “왜 나만 살려둔 거야”라고 울부짖는다. 다른 참가자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된 기훈은 제때 탄창을 가져다주지 않은 대호(강하늘)에게 적개심을 품는다. 이 게임을 멈추고 모두를 살리려던 기훈은 대호를 향해 “너 때문이야”라고 분노하고, 대호 역시 결국 폭력으로 맞선다. 운영진이 노리는 바였다. 서로에 대한 미움이 싹트게 하고 자중지란 하는 모습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이는 연대와 신뢰가 훼손되고 반목과 대립을 반복하는 현대 사회의 복사판이다.
타락한 인간성은 ‘어른’ 금자(강애심)를 통해 조금씩 회복된다. 아들의 빚을 갚기 위해 이 게임에 뛰어든 금자는 시즌3에서 되레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 살았어”라며 광기에 빠진 이들을 다독인다. 만삭의 몸으로 게임에 참여한 준희(조유리)를 보듬고 게임 중 태어난 아이를 받는 것도 금자의 몫이다. 그 모습을 보며 각성한 기훈은 자책하는 준희에게 “네 탓이 아니야. 우리는 스스로 선택을 한 것”이라고 위로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황금가면을 쓴 VIP들은 이런 상황이 빤하다는 듯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엄마를 만들었다”고 비웃지만, 그 모성은 456억 원이라는 거액 앞에 매몰됐던 인간성을 끄집어내는 단초가 된다. 시즌3 중 3부의 제목이 ‘당신의 탓이 아니다’인 이유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투표 결과에 따라 게임을 속행하겠습니다”
‘오겜3’를 관통하는 표현은 ‘민주적 투표’다. 게임 속행 여부는 OX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VIP들은 마치 사냥하듯 그 과정을 즐기는 악마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투표 결과”라는 안내 방송은 ‘다 너희가 선택한 거야’라는 식의 책임 회피다. 황 감독은 가장 민주적인 의사 결정 과정이라는 다수결의 원칙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강요하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지 경고한다.
VIP들이 원하는 건 분열이다. 그들에게 정의와 평화는 따분한 교과서 속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게임을 멈춰달라”고 호소하는 금자를 “미친 여자”로 치부하고, 자기 몫의 상금을 늘리기 위해 ‘깐부’를 죽이는 이들을 바라보며 “약속과 동맹은 늘 부질없다”고 말한다. 혈연관계에 놓인 참가자들이 서로를 위해 희생하려는 모습에는 “가족 관찰 예능인가?”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황금가면 속 그들의 정체는 결국 공개되지 않는다. 이는 민주적 절차와 자본주의 논리 뒤에 숨어 숱한 이들의 희생을 강요하지만 정작 그 민낯을 드러내지 않는 배금주의의 정점에 선 현대 사회 속 ‘보이지 않는 손’을 상징한다.
◇“우린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일확천금을 노리던 기훈은 앞서 이 게임에서 살아남았다. 456억 원이라는 거액을 손에 쥐었지만 고작 1만 원만 꺼내 쓴 그는 이 게임을 멈추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다시 살육의 현장으로 뛰어든 기훈의 이 같은 신념은 작품 안팎에서 의심받는다. 더 큰 상금을 노리고 도와주는 척하며 동료들을 위험에 밀어 넣는 인물로 치부되기도 한다.
시즌3 초반, 자신의 무력감을 절감한 기훈은 분노에 사로잡혀 방황한다. 그 역시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고, 살기 위해 타인을 죽인다. 그런 기훈은 용식(양동근)을 끔찍하게 아끼는 금자, 갓 태어난 아기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준희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돌리고, 아기를 살리기 위해 헌신한다. “456번, 아직도 사람을 믿나?”라는 ‘프론트맨’(이병헌)의 질문에 오랫동안 침묵하던 기훈은 “우린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라고 이 게임을 멈춰야 하는 당위를 웅변한다.
또 다른 게임의 우승자 출신인 프론트맨이 사람이길 포기하고 이 게임판의 말이 될 수밖에 없었던 전사(前事)도 드러난다. 과거 마지막 게임을 앞둔 시점, 만신창이가 된 그는 운영진으로부터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우승에 눈먼 그는 추악한 제안에 응했고, 그 대가로 가면을 쓴 채 운영진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프론트맨의 삶을 살게 됐다. 이처럼 스스로 인간다움을 저버린 프론트맨에게 더 이상 인간은 믿지 못할 존재였고, 프론트맨은 기훈에게 똑같은 제안을 던지면서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려 한다.
시즌3의 마지막 편인 6부의 제목은 ‘사람은’이다. 이는 기훈의 마지막 대사이기도 하다. 사람다움을 지키고,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는 황 감독이 ‘오겜’ 시리즈의 긴 장정을 마무리하며 이 시리즈를 지켜본 모든 이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아울러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딱지녀’는 이 시리즈의 또 다른 출발을 알리며 여운을 남긴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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