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셀럽을 만나다] 박광덕 "천하장사는 못해도 천하무적 정신으로 족발을 삶습니다"

모래판 위에서 벌어지는 한판 대결, 씨름. 상대를 넘어뜨리는 순간 승자가 된다. 이 치열한 샅바 싸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는 건 오직 한 명뿐. 하지만 우승이라는 산을 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타이틀 하나 거머쥐지 못하고 은퇴 수순을 밟는 선수도 상당수다.
반올림 천하장사' 박광덕 씨도 그중 하나다. 역경을 이겨내고 다섯 번이나 천하장사 결승전에 올랐지만 승리의 여신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외면했다. 모래 위 그는 영원한 2인자였다. 결국 정상에 서지 못한 채 은퇴를 선택해야 했다. 새로운 삶을 위해 도전한 요식업 역시 만만치 않았다. 손대는 것마다 실패를 거듭하며 망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다시 시작한 것은 '족발집'이었다. 주방에서 직접 칼을 들고 족발을 삶겠다는 각오로 간판에 '박광덕 천하장사 족발'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그래서였을까. 현역 시절 외면했던 승리의 여신이 이번엔 미소를 보냈다. 입소문을 타며 '족발 맛집'으로 자리 잡았고, '족발 명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는 '천하장사'라는 타이틀보다 '동네 사장님'이라는 말이 더 좋다는 박광덕 씨. 모래판을 떠나 삶의 무게를 감당해온 그를 만나 그간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 오랜만에 뵙는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늘 똑같다. 자주 받는 질문인데, 족발집을 하다 보니 아침에 출근해서 족발을 삶고, 손님이 오면 대접하고, 마감하면 집에 간다. 그런 일상이 계속된다. 자영업자라면 다들 비슷할 것 같다.
- 박광덕이라면, 씨름선수로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데 그 시절이 궁금하다.
"처음부터 씨름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저희 집은 오 형제 모두 남자인데, 바로 위 형님이 먼저 씨름을 하셨다. 형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씨름부를 만들려고 했지만 여의치 찮았고, 그때 아버지께서 '너라도 한번 해볼래?'라고 권유하셨다.
처음엔 거절했지만 형의 훈련 파트너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합에 나가게 됐고, 그게 출발점이 됐다. 동네 대회에서 몇 번 우승하자 아버지께서 씨름부가 있는 중학교로 전학을 보내주셨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선수 생활이 시작됐다."
- 프로 데뷔는 언제였나.
"1990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바로 프로로 진출했다. 모든 게 새롭다 보니 마냥 설렜다. TV에서만 보던 선배들과 같은 숙소, 같은 훈련장에서 땀을 흘린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했다.
- 막상 프로 무대는 쉽지 않았을 텐데.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같이 훈련하는 선배들처럼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정신력'으로 버티며 이겨냈다. 혼자 야간 훈련을 하며 튜브를 당기고, 타이어를 끌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계속했다. 고등학생 때보다 밥도 잘 챙겨 먹고, 열심히 훈련하다 보니 몸도 좋아지고 실력도 올라갔다."

-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지금은 돌아가신 고 황대웅 선배님과 천하장사 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대0으로 이기고 있었지만 3대2로 역전패당했다. 그 뒤로 천하장사 결승만 다섯 번 올라갔지만 모두 2등을 했다. 그중 네 번은 3대2로 졌다. 그래도 백두장사는 세 번 했지만, 천하장사를 한 번도 하지 못해 아쉽다."
- 어느 순간 씨름판에서 보이지 않았는데, 은퇴를 결심하게 된 이유가 있나.
"1995~96년쯤 방송 생활을 1년 정도 해봤다.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준비 없이 시작한 방송은 쉽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말도 더듬고, 주눅이 들었다. 결국 다시 씨름판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망가진 몸을 회복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점점 성적보다 회의감이 앞섰고, 자연스럽게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 감독님도 제 결정을 존중해 주셨고, 은퇴식도 치러주셨다. 그때 정말 많이 울었다.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고마웠고, 무엇보다 경기장을 떠난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 지도자의 길도 있었을 텐데, 족발집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막걸릿집, 호프집, 라이브카페 등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다 잘되지 않았다. 그러다 족발집을 열게 됐고, 처음으로 직접 주방에 들어가 칼을 잡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박광덕 족발집 왔는데 사장님은 어디 계시냐?'고 묻는 걸 듣고, '내 이름을 걸고 장사하려면 내가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 생겼다. 그때부터 직접 삶고 썰며 진짜 장사에 임하게 됐다."
- 지금은 '박광덕 족발'이 지역 맛집으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운영 철학이나 원칙이 있다면.
"좋은 재료, 청결, 넉넉한 인심이 기본 원칙이다. 손님들이 '양이 많다'며 포장해 가는 걸 보면 뿌듯하다. 또 제 이름을 걸었기 때문에 책임감도 크다. 가끔 행사로 자리를 비우면 '행사하러 갑니다. 행사비 벌어올게요'라는 안내문도 붙여둔다. 손님과 솔직하게 소통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 프로선수부터 족발집 사장님까지 180도 바뀐 인생을 살고 있는데, 전혀 다른 직업에 공통점이 있나.
"둘 다 '정신력'이 중요하다. 몸이 힘들어도 정신이 버텨주면 하루를 견딜 수 있다. 반대로 정신력이 무너지면 아무리 건강해도 버티지 못한다. 씨름이든 장사든 끝까지 살아남는 건 결국 정신력이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지금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다른 친구들은 벌써 손자까지 봤지만, 아직 초등학생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결혼식 때 손을 잡고 입장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는 게 목표다. 거창한 성공보다 '무탈한 하루'가 지금 제겐 가장 큰 목표다."
최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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