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되면 우울, 30년 전 그날 같아"…'삼풍 유족' 60% 울분으로 고통

전유진 2025. 6. 2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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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참사 30주기]
외상후울분장애 겪는 유족들... 정신건강 빨간불
실종자 수습 중단 '정부' 부적절 보도 '언론' 비판
삼풍 사주·건설업자·공무원 처벌 미비 목소리도
추모공간 불만족..."정부 나서 위령탑 관리해야"
삼풍백화점 참사 미수습자 가족인 홍영희씨가 20일 강원도 춘천시 자택 인근을 걷고 있다. 강예진 기자
지금도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면 생각나요. 무너진 백화점 안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약을 안 먹으면) 가슴이 두근두근해서 잠을 못 자고 열이 차오르고 숨이 차요...
(참사 얘기가 나오면) 분노 조절이 잘 안 돼요. 이태원 참사 때 한 친구가 ‘놀러갔다 죽었는데 왜 난리냐’고 해서 밥상을 엎었어요.

502명의 목숨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참사'가 발생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유족들 가슴엔 응어리가 여전하다. 한국일보는 재난피해자권리센터가 참사 30주기를 맞아 유족 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유가족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입수했다. 대형 참사 수십 년 뒤 희생자 유족을 추적해 분석한 조사는 사실상 처음이다.


가족도, 직장도 무너졌다

삼풍백화점 참사 유족 실태조사. 그래픽=신동준 기자

유족들은 지금도 극심한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유족들을 상대로 부정적인 경험 이후 부당함·무력감·좌절감·허탈감 등에 사로잡히는 반응성 장애인 '외상 후 울분 장애(PTED)' 검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33.3%는 심한 장애인 '중증도 울분', 30%는 장기간의 울분으로 고통받는 '임상적 울분' 상태였다. 63%가 고강도의 정신적 고통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한 유족은 "6월만 되면 우울증이 오는 것처럼, 오늘이 30년 전 그날인 것처럼 트라우마가 되새겨진다"고 털어놨다.

참사 후 유족들의 삶은 무너졌다. 먼저 가족 관계에 금이 갔다. 참사 전 가족관계를 묻는 질문엔 긍정 응답(매우 좋았다+어느 정도 좋았다)이 58.6%였으나 참사 후 40.8%로 17.8% 감소했다. 또 응답자의 48.3%는 '참사 후 가족 내 갈등을 겪은 적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를 잃은 한 유족은 "보상금을 받으러 친척들이 학교로 오고 집을 때려 부쉈다. 가족 간 갈등이 심해 1년간 학업을 중단했다"고 토로했다. 실종자를 찾고 시신을 수습하는 등의 이유로 직업을 잃었다는 유족도 21.7%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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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언론 유족 목소리 외면

1995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현장에 장맛비가 쏟아져 시신 발굴 및 잔해 제거 작업에 차질이 빚어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흡했던 정부 대응도 유족들에게 큰 상처였다. 응답자의 90%는 정부로부터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고 구조·수습·지원 과정에서 피해자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실제 당시 서울시대책본부는 현장 수습을 이유로 참사 보름 만에 잔해물을 난지도 매립지 등에 버려 유족들이 직접 쓰레기장을 뒤져 유해와 유류품을 수습했다. 실태조사 보고서도 이런 점을 지적하며 정부가 참사 19일 만에 구조 및 수습 활동을 중단한 건 큰 문제라고 짚었다.

보상금 수령에 초점을 맞춘 언론 보도 역시 유족에겐 한이 됐다. 응답자의 86.7%는 '참사 당시 언론 보도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인식했다. 당시 언론들은 공무원과 삼풍 사주 간 유착 관계, 미비한 관련법·제도 등 참사 원인 규명에 집중했다. 유족이 바라는 사후 대책과 공적 애도 요구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시신 수습이나 추모 공간 조성 요구를 보상금 문제로 연결 짓는 기사도 많았다. 한 유족은 "'시체팔이를 한다' '단체 행동을 해 보상금을 타려 한다' 등 공격이 많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세월호 참사 직후 논란이 됐던 미확인 보도와 집단 오보, 지나친 경쟁에 따른 선정적 보도, 피해자와 유족을 배려하지 않은 취재 관행 등이 30년 전에도 자행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엔 언론단체 '재난보도준칙'이 제정되는 등 후속 조치라도 뒤따랐지만 삼풍 참사 땐 이런 사회적 노력조차 없이 심적 고통을 오롯이 유족이 짊어졌다.

삼풍백화점 붕괴 28주기인 2023년 6월 29일 서울 양재 시민의숲 삼풍참사위령탑에서 유가족이 희생자 명패의 빗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응답 유족 전원은 책임자들이 '적절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당시 이준 삼풍건설산업 회장과 이한상 사장은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징역 7년과 7년 6개월을 각각 받아 복역했고 이충우·황철민 전 서초구청장에겐 징역 10개월에 300만 원 이하 추징금이 선고됐다. 그러나 붕괴 위험을 알고도 백화점을 운영했던 '삼풍 일가', 부실시공을 한 '건설업자', 뇌물을 받고 눈감아준 '공무원' 등의 결탁으로 발생한 사회적 참사라는 점에서 엄중한 책임이 뒤따르지 않았다는 게 유족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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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우리 죽고 나면 위령탑은 누가 닦나"

삼풍백화점 참사 유족 실태조사. 그래픽=신동준 기자

참사 현장으로부터 도보 1시간 거리에 있는 '삼풍참사위령탑'에 대해선 응답자 절반이 '만족하지 않는다'고 했다. 위치 변경, 규모 확대, 공원화 등 추모공간 재구성은 73.4%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와 지자체가 위령탑을 관리하지 않는다는 한탄도 나왔다. 한 유족은 "바람만 불면 더러워지니 맨날 청소한다"며 "늙은 우리가 죽고 나면 탑이 묻혀버릴 테니 정부에서 보호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과거 난지도 매립지였던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 미수습자를 위한 표지석을 세워달라는 의견도 나왔다. "거기(난지도에) 공원이 만들어졌으니 당연히 (추모비를) 세워야 한다" "사회적으로 기억되도록 해 달라"는 요구였다. 김정숙 재난피해자권리센터 활동가는 "실태조사를 통해 유족의 고통이 여전하고 국가 지원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세월호, 이태원, 무안 참사 등 재난 피해자 권리 지원에 대한 논의가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30주기 유가족 실태조사
재난피해자권리센터는 사랑의열매의 지원을 받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30주기 유가족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발간했다. 2024년 1월 31일 설립된 재난피해자권리센터는 4.16재단 부설 센터로, 재난피해자의 권리 증진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다. 센터는 삼풍 참사 유족의 현 상황을 파악해 공적으로 기록하고, 재난 피해자 지원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대상: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희생자 유족 30명
조사 방법: 우편을 통한 설문조사. 5명의 유족에 대해선 심층 전화 인터뷰 추가 진행

전유진 기자 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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