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에 더 비정해진 사회… 비정한 위로로 다음 준비해야”[북리뷰]

장상민 기자 2025. 6. 2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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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만의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 출간 김 애 란
돈이 낳은 현실속 ‘계급’의 경계
대화를 통해 예리하게 구분지어
부자를 향한 증오·측은함 대신
“자기 돌봄의 욕구는 당연한 것”
7편 단편,전작들의 다음이야기
“목놓아 울기보다 生 이어가야”
김애란 작가는 “보고 듣는 모든 행위가 자연스러운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며 “이웃과 멀어진 시대에 함께 빗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을 담아 쓴 소설”이라고 말했다. ⓒ이승재(LCC)

“과거에는 사회적 약자, 가난을 바라보는 시선에 최소한의 부채감과 의무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혐오의 시선으로 바뀌었죠. 그 목소리를 낼 때 의기양양함까지 더해졌네요.” 김애란 작가가 ‘바깥은 여름’ 이후 8년 만에 새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문학동네)를 들고 돌아왔다.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의 따끈따끈한 신작. 지난 19일 문화일보에서 서둘러 그를 만나 궁금증을 풀었다.

소설집에 묶인 7편의 단편은 사회 어디에서나 마주칠 법한 인물들을 통해 돈으로 빚어진 이 시대 계급의 비애를 그린다. 첫 번째 단편 ‘홈파티’는 작가 스스로 “초기작의 뾰족함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애정이 간다”고 말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지인을 통해 CEO, 의사, 변호사 등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로 구성된 특별한 모임에 초대받는다. 이들은 조롱 섞인 농담으로 서로의 문화적 취향, 돈을 버는 방식 등을 비교해가며 계급의 경계를 드러낸다. 마치 어서 계급의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라는 듯한 대화는 가난한 이들을 향한 몰이해와 혐오로 순식간에 뒤집힌다. 자립준비청년이 주어지는 정착금 500만 원으로 명품 가방이나 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들을 향해 주인공은 참지 못하고 적의를 내비친다. 심지어 파티 주최자의 값비싼 찻잔까지 깨는 실수를 범하자 그들의 흥분은 오히려 최고조에 달한다. 노골적인 분위기 속에서 흥분이란, 명확히 구분되는 계급을 전제로 그들이 자비롭게 용서를 베풀 수 있다는 우월감이다. 그러나 연극배우인 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부자를 향한 증오도, 수치심도 아닌 색다른 반응을 돌려준다. “평범한 사람들을 ‘경제 바보’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자주 느끼게 돼요. 평범한 사람의 큰 승리는 판타지일 수 있으니 주도권 정도를 쥐여줘 봤어요.”

작가는 스스로 “작은 방에서 시작한 작가”라고 말했다. 그의 등단작 ‘노크하지 않는 집’이 단칸방의 가난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작가는 전세와 자가, 구옥과 신축으로 변주하며 계급을 바라보는 인물의 모순을 보여준다.

마지막까지 표제작으로 고민했던 작품 ‘좋은 이웃’이 대표적이다. 전세 살던 집이 팔리게 돼 이사를 준비하던 주인공은 사랑하던 책부터 정리한다. 또 동년배로 보이는 이들이 윗집을 사서 이사 오자 그는 더욱 작아진다. 그러나 주인공에게도 속세에 절여지지 않은 마음이 있다. 굳이 먼 길을 이동해 장애인 아이를 위한 수업을 하고 있는 것. 어느 날 아이의 부모가 인근 신축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됐다며 계속 수업을 부탁하자 무료로라도 가르치고 싶다던 마음은 복잡해진다. 심란함 속에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절규하는 부모조차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다. “자기 돌봄 욕구는 당연해요. 다만 나의 이익과 타인의 생명, 안전을 놓고 저울질할 때 내 쪽에 무게를 더하는 손끝이 떨리는 사람만 돼도 좋은 이웃이에요.”

과거 작가는 가난과 상실 등의 불행 속에서도 특유의 ‘농담’으로 소설을 끌고 나갔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집필된 전작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서부터 사뭇 진지해졌다. 이번 소설집 속 작품들도 건조하거나 심지어 냉소적이다. 김 작가는 “때로는 비정함이 주는 위로가 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상황을 겪는 독자에겐 진실에 가까운 비정한 위로가 중요해요. 정확히 봄으로써 정확히 이해한 뒤에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죠.”

‘다음으로 넘어간다’는 그의 말처럼 소설집 자체가 전작들의 다음 페이지다. “비가 새는 반지하 방에서 젖는 책을 보며 슬퍼하던(‘도도한 생활’), 부모의 싱싱한 육체를 상상하기만 했던(‘달려라, 아비’) 취준생, 재수생, 아르바이트생들이 어른이 됐어요. 제 작품들을 따라오신 독자들이 있다면 이런 방식으로도 읽어보길 바라요.” 희망찬 어른은 아니지만 다음 페이지에는 ‘생(生)’이 있다. 아이를 잃은 부모가 스스로 도배를 하며 무너져 내리던 이야기(‘수옥’)와도 겹쳐 보이는 맨 마지막 수록작 ‘빗방울처럼’. 전세 사기에 남편의 죽음까지 겪은 곳에 남겨진 주인공은 물 새는 천장을 고친 후 도배를 맡긴다. 도배만 끝나면 따라 죽기로 결심했지만, 외국인 노동자이자 누군가의 엄마인 도배사의 방문 후 분명한 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직접적인 말하기는 언제나 꺼려지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살자 말하고 싶었어요.”

장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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