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이석원

아레나옴므플러스 2025. 6. 2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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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입니다.
음악했습니다.
글 쓰고 있습니다.

음악계와 문학계에서 모두 베스트셀러를 남긴 능력자.
지금 이석원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소개 글이다. 이석원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거짓말을 덮기 위해 만든' 언니네 이발관은 한국 모던 록의 전설로 남았다.
역시나 '출판 제안이 밀려든다'는 허풍 덕분에 쓰게 된 첫 책
<보통의 존재>는 80쇄를 넘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런 이석원은 정작 스스로 은퇴를 번복한 뮤지션, 생계형 작가라고 소개했다.
앨범 데뷔 30주년을 앞둔 이석원은 또 어떤 일을 벌이고 있을까?
15주년을 맞아 새롭게 나올 <보통의 존재>는 어떻게 달라질까?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파주의 달 출판사. 그곳에서 이석원을 만나고 왔다. 

식상하지만 팬들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부터 해볼게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제가 쓴 책 중에 <보통의 존재>라고 있어요. 그 책이 나온 지 15주년이 됐거든요. 올여름 그 기념판이 나옵니다. 그거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보통의 존재> 15주년 기념판에 새롭게 더하는 게 있을까요?
본문은 변화가 없는데요. 문상훈 님과 주고받은 편지가 추가됩니다. 그리고 15년 전에 쓴 글들에 제가 코멘트를 단 내용도 더할 거예요.

수많은 분들 중에서도 문상훈 님과 함께한 계기가 궁금하네요.
출판사에서 먼저 권하셨어요. 저는 그냥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분이 그렇게 유명하고 대단한 분인 건 한참 나중에 알았어요. 블랙핑크랑 에스파가 빠더너스 유튜브 채널에 나왔더라고요. '이런 분이 왜 나랑 해주셨을까' 하는 의아함이 들었죠.

문상훈 님께 직접 여쭤보셨어요? 왜 나랑 해주셨냐고.
그런 질문을 하진 않았어요. 돌아올 대답이 너무 뻔하잖아요. '팬입니다' 정도일 텐데, 대답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서.(웃음) .

편지는 얼마나 주고받으셨어요?
각자 4~5통을 주고받았는데요. 아마도 문상훈 님이 먼저 편지를 주셨던 걸로 기억해요.

남자끼리 편지 주고받을 일이 잘 없잖아요. 그 자체로 남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기도 한데.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끼리 편지가 오갈 수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 생각 못한 공통점이 하나 있었어요. 그분도 저도 무대에 서잖아요. 무대에 오르는 사람으로서 아주 근본적인 마음가짐 하나가 같더라고요. 그래서 수월하게 편지를 쓸 수 있었어요.

그 공통점은 뭐였나요?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객석의 대중에게 솔직해야죠. 하지만 100% 솔직할 수만은 없는 게 무대에 서는 사람들의 숙명이기도 하거든요. 내가 아무리 거짓말을 하기 싫어도 그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저마다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괴로움이 있거든요. 그 부분이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답장이 오갈 때마다 위안을 느끼기도 했을 것 같아요.
조금 잔인하게 들릴 수 있는데요. 저보다 대단하고 유명하고 잘나가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 대단한 사람들이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인간적인 어려움을 겪는단 말이죠. 하물며 노벨상을 탄 한강 작가도 두려움을 느낀다잖아요.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받거든요. '저런 사람도 그런다고?' 하는 안도감이 있죠. 역시나 문상훈 님께도 그걸 느꼈고요.

음악 이야기를 해볼게요. 내년이 데뷔 30주년입니다.
정확히는 내년 11월이 되면 앨범으로 데뷔한 지 30년이 돼요. 나름대로 기념해보려고 올해 초부터 30년 전 했던 일들을 다시 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에요.

최근 있었던 음감회도 그 일환으로 준비한 거네요.
맞아요. 30년 만에 음감회를 다시 했는데 예상 밖이었어요.

"이전까지 제 음악들은 '음악 자체인 음악'이라기보다,
'삶이 반영된 음악'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공감도 해줬던 것 같은데요.
이제는 음표가 더 중요한 음악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어떤 점이 예상 밖이던가요?
사실은 30년 전으로 돌아가보는 프로젝트는 아주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했어요. 정말 그때로 돌아가보고 싶었거든요.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 보니, 더 어리고 젊었을 때로 돌아가보고 싶다. 그리움을 해소해보자. 그런데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과거로 돌아가는 기분이 아니라, 그냥 지금의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느낌이더라고요.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요.

슬픈 감정이 들었던 건 왜일까요?
못 돌아가는구나. 뭔 짓을 해도. 그런 슬픔이었죠.

팬들 사이에서는 모든 공연마다 '처음 오신 분들 손 들어보세요' 짚고 넘어가는 게 유명하더라고요. 이번 음감회에서도 그랬고요. 일종의 습관일까 궁금했어요.
제가 첫 책을 냈을 때, 어떤 유명한 분이 책 잘 읽었다고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출판사로 연락을 준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4년을 도망다녔거든요. 그게 '오늘 저 처음 보는 분은 손 들어보세요' 하는 이유랑 비슷해요. 작가가 아닌, 인간 이석원으로 다른 사람 앞에 설 때면 제가 예측하지 못한 불편함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저를 처음 보는 분들은 제가 화났다고 생각하세요.

진짜 화가 난 건 아니죠?
그럼요. 돈 내고 내 공연 보러 온 사람들인데, 화가 나면 이상한 거죠. 그런데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가이드를 드리는 거죠. 나 화 안 났다. 화났을 리가 있냐. 그렇게 시작을 하죠.

 '이석원'을 검색하면 이런 설명이 뜨더라고요. '음악계와 문학계에서 모두 베스트셀러를 남긴 능력자'. 이석원이 소개하는 이석원은 어떤 사람일까요?
요즘은 저를 소개할 일이 잘 없는데요. 한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까요? 이석원입니다. 음악했습니다. 글 쓰고 있습니다.

뜬금없는 질문인데, 요즘 어떤 생각 제일 많이 하세요?
제가 2017년에,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마지막 앨범인 6집을 냈을 때 욕을 엄청 먹었어요. 그 이유가 '이석원은 20년 동안 똑같은 얘기만 한다'였어요. 물론 창작자가 20년, 아니 평생 동안 똑같은 얘기만 할 수 있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알 것만 같더라고요. '왜 나는 항상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부분이 똑같지?' '왜 나는 30년 전에 했던 고민을 아직도 하지?' 인간적인 자괴감이 있었는데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지금처럼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최선인가. 그런 생각을 계속하죠. 스스로 답답하기도 하고요.

다시 15년 전으로 되돌아가볼게요. <보통의 존재>는 작가 이석원의 첫 번째 책이자, 첫 베스트셀러이기도 합니다. 예상하셨나요?
곧장 베스트셀러가 된 건 아니에요. 제 음악을 좋아했던 분들이 이석원 책 냈다니까 사주셨는데, 초반에만 반짝하고 금방 사라졌어요. 그러다 1년 정도 지나서 다시 팔리기 시작했어요.

입소문을 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네요.
그렇죠. 당시에 유명한 분들이 언급을 많이 해주셨어요.

당시 책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계기가 있나요?
무언가를 시작할 때, 특히 글 쓰는 일은 크게 따지지 않고 그냥 해요. 당시에도 출간 제안이 와서 쓴 거였어요.

책을 내기 전에도 글은 꾸준히 쓰셨고요. 
남한테 돈 받고 글 쓴 지는 30년 정도 됐어요. 주로 신문, 잡지, 사보에 글을 보냈죠. 그리고 15년 정도 됐을 때 처음 출간 제의를 받았어요.

평소에 책 자주 보세요?
저는 책보다 기사를 많이 봐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매일 신문이 네댓 개는 집으로 왔거든요. 책을 안 읽었는데도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신문 덕이지 않나 싶어요.

 음악은요?
요즘은 곡 작업을 하고 있어서 다양하게 들으려고 하죠. '이 양반은 여기서 이렇게 했구나'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잘 만들 수 있지?' 하는 차원에서 많이 듣고 있어요.

음감회에서 '지금까지 1000곡을 들었다면, 내가 만들 수 있는 음악은 그 1000곡 안에서 나온다'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앨범 작업 때문에 찾아 듣는 뮤지션도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꼭 음악 처음 하는 사람처럼 들어요. 아마추어가 처음 음악할 때 '이거 멋있다'' 나 이거 할래' 하다가, 다른 장르에 꽂히면 '아니다. 나 이걸 해야겠다' 왔다 갔다 하거든요. 제가 지금 그런 상태예요. 그래서 정식 앨범보다는 싱글을 여러 장 내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아니면 백화점 식으로 이것저것 고루 넣은 데모 앨범을 내거나.

새 음반은 언제쯤 나올까요?
내년에 나올 것 같아요. 일단 데모나 싱글로 곡을 내고, 저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좀 봐야죠. 그러고 범위를 좁힐 수 있으면 정식 앨범을 낼 수도 있고요. 아니면 계속 싱글만 내면서 하고 싶은 걸 할 수도 있고요. 어떤 앨범이 나올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평소 음악 들을 때, 가사는 하나도 신경 안 쓰신다고요.
아예 안 써요. 가요고 팝송이고 가사를 신경 써본 일이 없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이석원이 쓴 가사' 좋아하는 팬들은 많잖아요. 새 앨범에서 텍스트적으로 신경 쓰는 점이 있다면요?
이제는 음악적인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이전까지 제 음악들은 '음악 자체인 음악'이라기보다, '삶이 반영된 음악'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공감도 해줬던 것 같은데요. 이제는 음표가 더 중요한 음악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대신 사람들이 당황할 수도 있겠죠. 이석원 너 뭐 하냐고.

언니네 이발관 시절, 제목을 고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들었거든요.
그것도 5집까지예요. 6집부터는 안 되더라고요. 제목 짓는 능력이 바닥 난 거겠죠. 마흔입곱쯤 되니까 아무리 고민을 해도 그럴듯한 제목이 안 나오더라고요.

사실 다음 질문으로 '제목 잘 짓는 방법' 여쭤보려고 했어요.
노력과는 상관없이 잘되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은 제가 뭘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제목이 안 나오고. 그 방법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블로그를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 매번 제목 정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요즘은 요일만 써요. 월요일에 쓴 글은 '월요일', 목요일에 쓴 글은 '목요일'. 곧 발매할 노래들에도 멋진 제목을 붙이고 싶지만 분명 안 될 거예요. 기호에 불과한 '1번 곡' '2번 곡' 같은 제목이 되지 않을까요? 사실 그보다 이름이 걱정이에요.

활동명이요?
솔로로 나갈지, 팀으로 나갈지 아직 안 정해졌는데요. 언니네 이발관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거든요. 만일 솔로로 앨범을 낸다. 그런데 이석원은 너무 평범하잖아요. 팀이면 새 이름이 필요할 텐데, 그 이름을 뭐로 할지도 고민이고.

'솔로 가수 이석원'. 나쁘지 않은데요.
아니에요. '윤종신' '이문세' 같은 분들은 솔로로 음악을 내도 이상하지가 않죠. 그런데 이석원? 가수 이석원? 이 생각부터 들잖아요.

최근 활동을 다시 시작한 데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큰 전환점이 됐다고 하셨어요. 처음 수상 소감이 발표된 날, 기억나세요?
네. 누군가 대단한 성취를 이뤄서 거기에 자극을 받았다기보다는, 그분이 수상 직후 한 인터뷰에서 전성기 이후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나름의 위로를 받았어요. 이미 있지도 않았던 전성기가 한참 지난 입장에서 그나마 가진 재주를 다 써버린 자의 막막함 같은 것을 가지고 나름의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집에 책이 몇 권이나 있으세요?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오래된 책들은 많이 처분하기도 했고요.

혹시 LP는 얼마나 있으세요?
저는 LP에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LP 얘기를 하면 별로 할 얘기가 없어요.

이번 음감회 때 LP로 음악 트셨잖아요?
그거 제 것 아니에요. 음악 틀어준 친구들이 LP 전문가거든요. 제가 준 리스트대로 그 친구들이 준비해줬어요. 사실 저는 그냥 유튜브로 틀었어도 되는데 친구들이 준비를 해줬죠. 전 LP뿐만 아니라, 수집이라는 행위 자체를 아예 안 해요. 물건보다는 공간에 대한 관심만 있어요.

그럼 평소 음악은 뭘로 들으세요?
저는 그냥 컴퓨터. 따로 스피커도 없어요. 컴퓨터 내장 스피커로 들어요. 소리는 별로 안 따지는 편이에요.

의외인데요. 엄청 깐깐하게 고르실 것 같은데. 
스튜디오에서 곡 작업할 때는 신경 쓰죠. 그게 작곡의 일부라고 생가하니까. 그 외에는 음질에 크게 신경 안 써요.

이어폰은 쓰세요?
이어폰 절대 안 써요. 중학교 3학년 '마이마이' 들을 때 이후로는 한 번도 안 써본 것 같아요. 저는 무대에서도 인이어 안 쓰거든요. 그 덕분에 그나마 아직까지 청력은 괜찮은 것 같아요. 신문에서 이어폰이 귀에 안 좋다는 기사를 읽은 후로는 써본 적이 없어요.

자동차 스피커는요?
차 안에서 음질은 중요해요. 저는 차에서 곡 작업하거든요.

그럼 차 살 때 스피커가 엄청 중요하겠네요. 
제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만들 때 차를 6번인가 8번을 바꿨어요. 차에서 작업을 하니까 최대한 좋은 환경을 갖춘 차를 사고 싶었거든요. 양재동에 단골 딜러까지 있었어요. 그분이 그러더라고요. 당신 때문에 돈 많이 벌었다고.

언니네 이발관 시절에는 '가수는 히트곡이 있어야 한다'라는 강박이 컸다고 들었어요. 요즘은 어떠세요?
오늘 아침에 한 생각인데요. 킴 칸스라는 가수가 있어요. 그 양반 히트곡 'Bette Davis Eyes'가 오늘 우연히 제 유튜브에 뜬 거예요. 그 노래를 들으면 알 수 있어요. 이건 노력으로 만들 수 있는 노래가 아니구나. 재능의 영역이구나. 나는 다시 음악을 해도 이런 히트곡은 만들 수 없겠구나. 그래도 생각은 하죠. 한 번뿐인 음악 인생인데 히트곡 하나 못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요즘 제 음악 인생에 다른 국면이 펼쳐졌다는 생각은 해요.  남들처럼 히트곡을 낼 수는 없지만, 이제부터 진짜 내 이야기를 해봐야 되겠다라는 명제가 생긴 거죠. 그게 요즘 제 가장 큰 동력 중 하나예요.

여전히 스스로 히트곡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없잖아요.

에이, '가장 보통의 존재' 있잖아요.
그걸 누가 안다고. 그건 히트곡일 수가 없죠.

작가님이 생각하는 히트곡 기준은 뭔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잘한다 못한다를 떠나서, 설명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어요. 저는 설명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책이랑 앨범을 되게 많이 팔았지만, 사람들은 얼마나 팔린 줄 몰라요. 반대로 제 주변에 델리 스파이스의 김민규라는 친구가 있어요. 걔는 '챠우챠우' '고백'이라는 히트곡을 갖고 있는데, 그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곡이잖아요. 반면 사람들이 히트곡 이야기할 때, 누가 언니네 이발관 '아름다운 것' 꺼내면 그때부터 옥신각신하게 된단 말이죠. 히트곡은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어야 히트곡이죠.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이석원의 대표곡은?
히트곡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몇십 년 동안 음악하면서 '아름다운 것' 하나는 남겼다고 생각해요. 물론 당시 동료와 함께 만든 작품인데요. 문제는 앞으로가 중요한데, 남은 음악 생활에서 진짜 대표작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있죠. 할 수만 있다면.

막연한 질문인데, 좋은 음악은 어떤 음악이라고 생각하세요?
좋은 음악은 좋은 음악이죠. 직관적으로 설명이 필요 없는. 저는 설명을 싫어해요. 우리가 만든 결과물을 대중에게 내놓을 때는 일일이 설명할 수가 없어요. 글도 음악도 오로지 직관적으로 좋다 별로다 단번에 판가름이 나잖아요. 좋은 음악은 들었을 때 그냥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5월 20일은 화요일이었다. 해가 저물 무렵, 을지로 우래옥 앞은 평양냉면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고, 그 속에는 다른 기대감으로 부푼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이석원 음감회 '소음의 정원'을 찾아온 팬들이다.
저녁 7시, 음감회는 어김없이 '그 멘트'로 시작됐다. "처음 오신 분들 손 들어보세요."
이석원이 30년 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열었다는 음감회는
음감회라기보다 2시간짜리 자기소개서처럼 느껴졌다.
이날 그가 들려준 플레이리스트, 그리고 함께 덧붙였던 코멘트를 옮긴다.

<이석원 음감회 '소음의 정원'에서 들려주었던 노래들>

토미 로, 'Dizzy'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곡.

더 셔렐스, 'Will You Love Me Tomorrow'
'좋은 멜로디란 이런 거구나' 알게 해준 곡.

엘튼 존, 'Come Down In Time (Jazz Version)'
영국의 조영남, 엘튼 존의 명곡. '재능이란 이런 것이다'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곡.

모던 토킹, 'You're My Heart, You're My Soul'
중학생 시절, 최초의 음악적 충격을 선사해준 곡.

동물원, '지붕 위의 별'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하지만 사실은 천재 집단이었던 동물원. 우리말로 부른 노래도 이렇게 근사할 수 있구나 알게 해준 곡.

박학기, '자꾸 서성이게 돼'
시대를 넘나드는 트렌디한 곡. 그 이유는 프로듀싱을 김현철이 했기 때문.

펫숍보이스, 'Did You See Me Coming?'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를 냈을 때 닐 테넌트의 철학적인 가사에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들었지만 정작 나는 가사에 관심이 없다. 난 그저 내 걸 잘하는 게 중요하다. 음악은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많다.

페이브먼트, 'In the Mouth a Desert'
마지막까지 자기만의 작곡법을 바꾸지 않았던 천재의 곡.

노이즈 가든, 'Rain Of Compromise('94 Demo] [*)
내가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명확하다. 윤병주를 만났기 때문. 윤병주가 이 노래를 들려준 바로 그날, 나도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언니네 이발관, '우스운 오후'
아날로그 녹음기로 완성했던 데모 앨범의 수록곡.

비틀스, 'I Will'
축가로 부르는 곡. 이상하게 축가만 부르고 나면 그 지인과 연락이 끊긴다.

또 한 번 막연한 질문인데요. 글은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요?
어렸을 때는 저 나름대로 글재주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내고 작가 생활을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있구나. 다만 어려서부터 스스로 강박적으로 고집한 건 있어요. '나는 예술가이려고 하면 안 된다. 이석원 너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고, 예술 하는 티 내지 말고, 작품도 쉬워야 된다. 글은 쉽게 쓰는 게 진짜 가오다.' 이게 저의 필치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쉽게 쓰는 게 가오다.' 멋진 말인데요.
지금에 와서는 아쉬운 점도 있어요. 제가 화가라면 가지고 있는 붓 종류가 너무 적은 거죠. 30년째 글을 쓰다 보니 후회가 돼요. 너무 어려서부터 성숙한 척하려고 '쉽게 쓰는 게 진짜야, 그게 멋있는 거고' 스스로를 설득했거든요. 좀 더 풍부하게 표현하고, 깊은 글을 쓰려고 할 때는 되레 막히더라고요. 고치려고도 노력해봤는데 안 돼요. 내가 죽도록 노력한다고 비틀스처럼 음악할 수 없듯이.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창작하길 잘했다 하는 순간이 있다면요?
딱 하나 있어요. 현실감. 세상에 대해서 알게 됐다. 내가 링 밖에서 링에 오른 선수들을 평가하기만 할 때는, 링 안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라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링 밖에서 평가만 하다가 생을 마감하죠. 저는 링 위에 올라가봤잖아요. 물론 후회하는 부분도 많지만, 링 위의 삶이 어떤 것인지 맛은 봤다. 그 점 하나만큼은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해요.

유치한 상상인데요. 어느 날 신이 '노벨문학상 작가, 빌보드 1위 가수. 둘 중 하나만 골라. 들어줄게' 한다면 뭘 고르시겠어요?
지금 택하라고 하면 가수. 음악이 저를 더 직관적으로 발산할 수 있는 수단인 것 같아요. 다시 음악을 시작한 것도 그 이유이기도 하고요.

실례되는 질문인데요. 평소 쓸데없는 생각 많이 하세요?
쓸데없는 생각만 하죠. 남들처럼 상상력을 발휘해서 창의적인 무언가로 이어지는 생각이 아니라요. 말 같지도 않고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생각만 해요. 예를 들면 LA 다저스의 김혜성이 오늘 3루타를 쳤어요. 그럼 내가 절대적인 존재가 돼서 내일은 김혜성이 홈런을 치게 해줬으면 좋겠다. 이 나이에 이따위 상상을 하고 있다니까요.

아참, 야구 좋아하시죠. 어디 팬이세요? 
아버지가 한화 팬이셔서 같이 보긴 하는데요. 특정 팀을 응원하진 않고, 야구판이 돌아가는 걸 즐기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선수는요?
전 메이저리그 가서 잘하면 그 선수 좋아해요. 김혜성이 키움에 있을 때는 크게 관심 없었거든요. 키움이 눈여겨보던 구단도 아니었고. 그런데 메이저리그 가서 너무 잘하니까 좋아지는 거예요. 저 선수가 저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까 싶더라고요. 멋지잖아요.

말 나온 김에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 팀 한번 예상해볼까요? 저는 LG 트윈스 봅니다.
저도 LG일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 연세가 올해 여든여덟인데, LG가 우승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뜬금없는 이야기인데, 배달의 민족 헤비 유저시라고.
큰일 났어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어요.

가장 자주 시키는 메뉴나 맛집 있나요?
제가 미식가는 아닌데, 먹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아요. 만일 배가 고프다, 혹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허기와 스트레스를 해소해줄 수 있는 탄수화물, 그리고 달고 시원한 것만 있으면 돼요.

탄수화물, 그리고 달고 시원한 것.
몸에 제일 안 좋은 애들이죠. 암세포가 제일 좋아하는 게 달고 시원한 음식이라잖아요.

소울 푸드 있으세요?
냉면 좋아해요. 저 1년에 300그릇은 먹거든요? 냉면은 다 좋아해요. 평양냉면도 좋고, 함흥냉면도 좋고, 분식집 냉면도 좋고.

냉면계에도 톱티어가 있잖아요.
일단 배달을 제일 많이 시키는데요. 평양냉면은 톱이 계속 바뀌는데 요즘은 우래옥이랑 남포면옥 좋더라고요. 동치미를 워낙 좋아해서. 의정부 평양면옥도 좋아해요. 평양냉면은 아니지만 저는 이태원 동아냉면도 좋아합니다.

지금까지 뮤지션으로서, 또 작가로서 많은 찬사를 들어오셨잖아요. 그중 가장 듣기 좋은 말은 무엇인가요?
찬사를 들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 올해 책 내고 감동받은 적이 있어요. 저는 창작자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저 사람이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거든요. 저 사람이 오래 살아서 뭘 하나라도 더 내야 그게 내 기쁨이 된다는 거잖아요. 책을 냈는데 '내가 이석원 책을 사는 건, 이 사람이 오래 살아서 한 권이라도 더 내줬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글을 봤어요. 살다 보니 이런 말도 듣는구나 싶었죠.

반대로 창작하면서 벽을 느끼는 순간도 있겠고요.
이 나이쯤 되면 한계에 직면하는 일은 너무 익숙해요. 그보다 힘든 부분은 일 자체에 대한 권태인 것 같아요. 제가 50대 중반이니까 빠르면 명예퇴직을 할 수도 있는 나이거든요.

권태기나 슬럼프를 넘기는 방법은 없나요? 
없죠. 독자들이 가끔 '작가님 친구가 너무 없어서 외로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해요. 속수무책이죠. 삶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그냥 견디고 때우면서 하루하루를 넘기는 거죠. 저로서는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지 않아요.

가끔 냉면 드시는 정도겠네요.
이제는 그것도 불안에 떨면서 먹어야 해요. 건강때문에. 정말 미치겠어요.

사람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다를 수 있죠. 지금의 이석원에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말씀하신 점이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른다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구분할 때 프로가 될 수 있어요. 다만 지금의 제가 처한 상황은 다른 국면이에요. 프로, 아마추어의 문제는 아니고요. 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예요.

그럼에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가장 하고 싶은 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가능할 것 같지는 않지만요. 얼마 전에 스윙스라는 래퍼가 유튜브에 나온 걸 봤는데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생각을 많이 하면 망한다.' 그래서 자기는 생각을 안 하고 일단 한다는 거예요. 저는 반대거든요.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진도가 안 나가요. 그다음 나온 영상이 아기 새가 낭떠러지 위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장면이었어요. 내레이터가 말하길, 낭떠러지에서 하늘을 향해 날아가기를 주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포식자한테 잡아먹힐 확률이 높아진대요. 곧 잡아먹힐 것 같은 바로 그 새가 이석원이거든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작게나마 있었다면 그마저 소진된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떡해요. 그냥 카드 돌려막기처럼 하는 거죠.(웃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세요?
제일 좋은 건 아무도 기억 안 하는 거. 인간 이석원으로서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은 전혀 없어요. 다만 저는 사라져도, 히트곡 하나 정도는 남으면 좋겠네요. 히트곡 하나만 나와줘도 "하나님!"이죠. '챠우챠우'나 '고백' 같은 거.

아니 '챠우챠우' 이야기 왜 그렇게 많이 하세요.
제 일생의 콤플렉스라니까요. 히트곡이 없잖아요. 뮤지션인데 히트곡 없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여기까지 인터뷰를 읽은 분들에게 노래 한 곡만 추천한다면?
지금 작업하는 곡 중에 있어요.

그럼 못 듣잖아요.
네, 내년에 나와요.

제목이라도 알려주세요.
아직 제목 없어요. 아, 그걸 들으셔야 되는데 들려드릴 방법이 없네. 되게 좋은데.

그럼 발매한 곡 중에서라도 하나 골라주세요.
음··· 이런 건 어떨까요? 요즘 사람들 청계천 많이 가거든요. 언젠가 청계천을 산책하시다 보면 낯모르는 사람이 피아노 연주를 하거나 노래를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 순간을 선사해드리고 싶어요.

그건 기대해봐도 좋겠죠?
그럼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공간이거든요. 처음에 청계천 만들어질 때는 욕 엄청 했는데, 요즘은 맨날 가요. 제 안식처 같은 곳이에요. 거기서 만납시다.

"저는 창작자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저 사람이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거든요.
저 사람이 오래 살아서 뭘 
하나라도 더 내야
그게 내 기쁨이 된다는 거잖아요."

CREDIT INFO

Editor 주현욱
Photographer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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