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로라우 태생 요제프 하이든 빈 슈테판 대성당 합창단원 활약 독학 작곡 공부해 귀족 악장 채용 시내 곳곳 흔적 남아 관광객 북적
음악 애호가들이 흔히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유형의 음악 시대는 누구에게서 시작됐을까. 한 장르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생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선도자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존재한다. 18~19세기 클래식의 문을 연 인물은 바로 모차르트와 베토벤에게 음악을 가르친 요제프 하이든이었다.
빈 ‘음악의 집’에 전시된 요제프 하이든 초상화. 남태우 기자
헝가리에 접한 시골마을 로라우에서 태어난 하이든은 탁월한 목소리를 인정받아 여덟 살 때 오스트리아 빈 슈테판 대성당 소년합창단 단원으로 스카우트됐다. 그는 대성당 인근 채플하우스에서 먹고 자면서 노래를 불렀고, 어깨 너머로 작곡 등 음악도 공부했다. 대성당에서는 수시로 합창단 공연이 열린다. 많은 사람이 신도석에 앉아 합창에 귀를 기울인다. 하이든도 300년 전 저곳에서 노래를 불렀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요제프 하이든이 소년합창단으로 활동했던 슈테판대성당에서 합창단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남태우 기자
하이든은 마리아 테레지아 황제로부터 목소리가 곱지 않다는 지적을 받는 바람에 슈테판 대성당에서 쫓겨났다. 다행히 합창단에서 사귄 친구 집에서 잠시 기거할 수 있었고, 나중에는 호프부르크왕궁 앞의 장크트미하일러교회에 붙은 사택 미하일러하우스의 다락방에서 살기도 했다. 미하엘러하우스는 매우 독특한 곳이다. 마치 중세 골목길을 연상케 하는 작은 출입구와 정원은 마치 비밀의 공간처럼 보인다.
슈테판대성당에서 쫓겨난 요제프 하이든이 살았던 미하일러하우스 입구. 남태우 기자
독학으로 배운 작곡 실력이 탁월하다는 소문이 난 덕분에 성인이 된 하이든은 당시 유명 귀족이던 에스터하지 가문의 전속 악장으로 채용됐다. 그는 가문의 본거지인 아이젠슈타트에 주로 머물렀지만 해마다 서너 달은 빈에 가서 활동했다. 그가 빈에서 머물렀던 곳은 장크트미하일러교회 인근 에스터하지궁전이었다.
하이든이 빈에서 주로 머물렀던 에스터하지궁전 중정 전경. 남태우 기자
하이든은 말년에 에스터하지 가문과의 계약을 마감하고 자유 음악인으로 독립했다. 지인이 많은 빈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여러 집에서 세를 얻어 살았다. 그중 한 곳은 시내 한복판 노이어 마르크트의 ‘궁정 신부의 집’이었다. 2층에 독특한 벽화가 그려진 이 건물은 지금 식당, 명품가게로 사용되는데, 벽에는 ‘하이든이 살았다’는 명패가 붙었다.
독립음악인이 된 요제프 하이든이 빈에서 세를 얻어 살았던 노이어 마르크트의 집. 남태우 기자
하이든은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등에서 순회 연주회를 열어 돈을 벌어 빈 외곽에 집을 샀다. 지금도 이곳은 시내에서 꽤 떨어진 곳인데 교통이 불편했던 300년 전에는 상당히 먼 곳이었을 것이다. 저택은 오늘날에는 ‘하이든박물관’으로 이용되는데 매주 금~일요일에만 문을 연다. 아쉽게도 일정상 박물관 내부는 둘러볼 수 없었다. 외관만 찍고 창으로 희미하게 비치는 내부 풍경으로 만족해야 했다.
유럽 순회연주회로 돈을 번 요제프 하이든이 빈 외곽에 산 집을 개조해 만든 하이든박물관. 남태우 기자
하이든은 1809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빈으로 쳐들어오자 자작곡 ‘황제 찬가’를 직접 연주하다 쓰러져 침대로 옮겨졌다.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닷새 뒤 숨졌다. 전쟁 탓에 그의 장례식은 아주 조촐하게 치러졌으며, 두 달 뒤에야 에스터하지 궁전 인근 쇼튼교회에서 모차르트가 작곡한 레퀴엠이 연주되는 가운데 추도 미사가 성대하게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