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싱크홀 지도 있었다면… 땅은 메우면 되지만 오빤 안돌아와”[히어로콘텐츠/크랙]
“서울시 위험지역 공개 안해 답답… 아직도 사고 원인 설명조차 못 들어
골목마다 공사, 또 사고날까 불안… 국가가 관리 안하면 피해자 또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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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의 깨진 휴대전화 들고 선 사고 현장 서울 강동구 명일2동 싱크홀 사고로 숨진 박평수 씨의 동생 수빈 씨가 26일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수빈 씨의 손에는 오빠가 생전에 사용하던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평수 씨가 싱크홀에 추락할 때 스마트폰도 부서져 액정에 금이 갔다. 도로 저편에 공사 차량들이 보인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26일 서울 강동구 명일2동 대명초교 교차로 인근에서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을 만난 박수빈 씨(31)는 본보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를 손에 들고 말했다. 그의 오빠 박평수 씨(33)는 올해 3월 이곳에서 발생한 싱크홀 사고로 숨졌다. 사고 지점에서 멀지 않은 강동구 길동에 사는 수빈 씨는 3개월이 지난 지금도 불안하다.
“이 동네에 싱크홀 사고가 또 나진 않을까요? 저는 날 것 같아요. 골목마다 공사장이 너무 많이 보여요.”
● 싱크홀로 빨려 들어간 33세 청년
석 달 전 사고 당일 평수 씨의 일과 시작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3월 24일, 전날 늦게까지 야식을 배달한 평수 씨는 오전 9시 알람 소리에 깼다. 배달 일은 평수 씨가 어머니, 여동생 몰래 4년 전 시작한 부업이었다. 그는 2018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사업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거래처에 돈을 떼여 빚이 생겼다. 여기에 법정 다툼까지 얽혔고, 평수 씨는 주 7일 배달일을 시작했다.
그날 평수 씨는 점심 ‘배달 콜’이 몰리기 전인 오전 11시부터 나가 주문을 기다렸다. 오전 11시 37분 샐러드, 11시 42분 볶음밥, 낮 12시 6분 커피, 12시 33분 샐러드, 12시 44분 곱창, 12시 50분과 53분 햄버거. 평수 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강동구 일대에 배달 7건을 마쳤다.
오후 2시 반 평수 씨는 잠깐 집에 들러 어머니가 차려준 김치볶음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평수 씨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오후 3시 자신의 본업인 통신사업체 사무실로 출근해 잠시 남은 업무를 처리했다.

● 유족들, 아직 사고 원인도 듣지 못해
그날 오후 10시쯤 평수 씨의 동료 라이더가 집에 찾아왔다. “싱크홀 사고가 났는데 뉴스 영상 속 오토바이가 평수 오토바이와 같은 기종 같아요.” 늘 자정이 다 돼야 일을 마쳤기에 한창 배달 중일 줄만 알았던 오빠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 3개월이 지난 이달 24∼26일 히어로팀은 싱크홀 위험 지역과 사고 사례를 분석한 ‘크랙: 땅은 이미 경고를 보냈다’ 시리즈에서 전문가들과 제작한 안전지도를 공개했다. 평수 씨가 숨진 강동구 명일2동, 수빈 씨와 어머니가 살고 있는 길동은 안전지도에서 싱크홀 발생 위험이 높은 4등급 지역이었다. 수빈 씨는 “가장 위험한 4, 5등급 지역만 체계적으로 잘 관리해도 사고 발생률을 낮출 수 있었을 텐데. 서울시는 이런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해당 지점에 싱크홀이 생긴 이유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는 당초 5월 말까지로 예정했던 조사 기간을 7월 말까지 연장했다. 서울시는 4월 20일 사고 지점 보수를 마치고 도로를 정상 개통했다. 예전처럼 그 위로 차가 다닌다.
수빈 씨는 국토부나 서울시로부터 아직 사고의 원인이 뭔지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별다른 연락도 없었다. 수빈 씨에게 거듭 어쩔 줄 몰라 하던 사람은 사고 지점 바로 앞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던 이충희 씨뿐이었다. 그는 사고 징후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알린 인물이었다. 이 씨는 서울 지하철 9호선 굴착공사의 영향으로 주유소 바닥에 균열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 공사 관계자, 서울시 측에 여러 차례 항의했다.
사고 당일 오전에도 빗물받이에 작은 구멍이 생긴 걸 발견해 신고했다. 사고 이후 주유소 운영을 중단한 이 씨는 지자체 등에 피해 복구를 요구했다. 그는 수빈 씨에게 평수 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사람이 죽었는데 나는 먹고살자고 소리를 낸다는 게 참,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 “땅은 다시 메우면 되지만 사람은 안 돌아와”
수빈 씨는 사고가 잊혀지고 또 다른 사람이 비슷한 사고를 당할까 우려했다. 그는 “국가가 관리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피해자가 생길 것”이라며 “우리가 백날 뭐라고 한들 관리자들이 잘해줘야 하는데. 저 같은 시민 한 명이 얘기한들 누가 들어주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무너진 땅은 다시 메우면 되지만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며 “저희 가족의 일상은 오빠가 떠난 그날에 멈췄다”고 말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공승배 기자 ks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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