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느끼는 反語의 味

한동안 TV에서 정치 풍자 코미디가 인기를 모은 때가 있었다. 어쩜 고소하기도 하고 무언가 줄 것 없이 미운 사람의 뺨 한번 때리는 기분, 속이 후련했다. 모두가 그런 현실을 잘 알고 있기에 그렇게 고소하고 폭소를 자아낸 것이 아닌가 한다. 그 현실의 재현으로 코미디가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와 풍자가 있기 때문이다.
봉산탈춤의 양반 과장에 나오는 말뚝이의 한 대목이다. "아, 양반이라고 하니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낸 퇴로재상으로 계신 양반인 줄 아지 마시오. 개질량이라는 양자에 개다리소반이라는 반자 쓰는 양반이 나온단 말요." 말뚝이가 모두 거짓이고 말치레에 지나지 않는 가짜 양반을 '개다리소반'이라는 비유를 통해 스스로 폭로하는 말로, 양반들의 반발이 나와도 흥을 돋우기나 할지언정 요동도 않는다. 도리어 가짜 양반의 사실을 더욱 강조하는 꼴이 되고 만다.
현실에 맞는 이야기로 패러디한다면 무궁무진한 반전의 이야기가 요즘 참 많다. 아이러니(反語)는 '아닌 척하는 자'라는 '에이론'에서 왔고, 다시 파생된 '모르는 척하는 것'의 뜻인 '에이로니아'에서 왔다고 한다. '간파되기(알려지기)를 바라는 아닌 척하기'가 본래 의미라는 얘기다. 뜻하고자 하는 것 반대의 말과 의견을 제시하거나 비난하기 위해서 칭찬하고, 칭찬하기 위해서 비난하기라고 정의하면서 언제 그랬느냐는 식의 '시치미 뚝 떼기'라고 그 행동 원칙까지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말장난에 화술의 공중전인 셈이다.
말과 행동으로 신의를 쌓고 인간과 인간으로의 진정한 믿음 앞에서 아이러니는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나 문학작품 속에서의 아이러니와 풍자는 패러디를 통한 현실 비판을 쏟아낼 수 있어 독자를 갖는 것이며 많이 읽힐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한 직장의 근로자로 몸과 마음 그리고 머리의 여백 미를 느껴 보지 못한 채 지내다 이제 백수로서 여유를 갖게 됐다. 책을 읽는 즐거움, 쏟아지는 행복이 있다. 어느 정도 세월이 간 다음 읽었던 책 다시 읽는 즐거움, 첫 번째보다 천천히 소화시키며 즐기는 습관이 다시 시작됐다.
채만식은 진정한 아이러니와 풍자와 패러디를 통한 비판의 작가이며 우리식 서사를 현대적으로 접목시킨 진정한 '재담꾼'으로 당대의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다양하게 그려 낸 작가가 아닌가 한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작품을 남기며 당대에 무엇을 문제 삼고 자기가 무엇을 쓰려고 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작가로 염상섭과 함께 식민지 시대의 작가다운 작가로 생각된다.
단편 「세 길로」를 조선문단에 발표하며 등단. 초기 '프로문학'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좌익 문단으로부터 동반작가로 인정되기도 했지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뚝심 있는 작가였다. 사상 탄압이 극심했던 일제 말 '개성독서회'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그는 해방 뒤 「민족의 죄인」을 쓰기도 했고 월북을 권유받았지만 낙향, 6·25전쟁 직전 사망했다.
「태평천하」, 「탁류」 등 장편소설에서 시대의 총체성이 잘 반영돼 지금 읽어도 어색함 없이 '작가적 관점'이 잘 살아 있다. 무수한 삶의 표상들 속에서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잡아채는 현실적 시선이 탁월하다는 것이 '작가적 관점'이라는 말이며, 뒤로 갈수록 '입담'을 되살려 판소리나 민담 형식과 함께 골계(滑稽)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실험하는 것이 더없이 좋다. 그의 작품 중 백미는 1938년에 발표한 「치숙(痴叔)」, 요즘 식이면 '모노드라마' 투의 일인 독백식 구어체 소설에 있다.
아이러니는 희비극의 미묘한 경계에 서기 마련인데,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희극적으로 그려져 더욱 눈물겨운 비극의 아이러니라면 「치숙」은 가치가 전도된 비극적 현실이 조카의 익살을 통해 희극으로 변하는 참 아이러니다. 타자의 '거울'을 통해 보는 원주민의 소외, 그 시절 식민지 사회의 심인성(心因性) 장애라고 푼다면 광장에 나와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은 어쩜 소외에 저항하는 몸부림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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