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경체] 조선의 물류 중심…객주와 김만덕의 교훈
[EBS 뉴스]
서현아 앵커
교과서 속 조선은 유교의 나라로 기억되지만그 안에도 엄연히 '돈'의 논리가 있었다는데요.
우리가 몰랐던 조선 상인의 세계, 이한 역사커뮤니케이터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사농공상'이라고 하죠.
유교 사회 조선에서 상업은 그만큼 천시되었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인데요.
실제로는 어땠습니까.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
조선은 틀림없는 유교의 나라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업은 천시되었지요.
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화폐보다는 물물교환이 많이 쓰였거든요.
세종 때 화폐제도를 도입하려다 실패했고, 상평통보는 숙종 때에야 도입되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화폐를 굉장히 싫어해서, "화폐가 세상을 망하게 할 것이다"라고 할 정도였어요.
그래도 돈과 상업은 발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더 좋은 걸 쓰고 먹고 싶어하거든요.
그러려면 다른 지역의 물품들을 사 와야 하고 이렇게 물자의 교류가 생깁니다.
이때 물물교환보다 화폐 사용이 더 편하지요.
이게 계속되면 상업이 발전하고, 그럼 교통도 좋아지고, 세상은 더욱 부유해지게 되지요.
그리고 조선시대 상인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인들이 만든 조직 상무사의 기록에는 "우리가 이 세상의 물류를 지탱하고 있다"라고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었습니다.
상업 없이는 물자가 유통되지 못하니까요.
결국 세상의 편견과 달리 상업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었지요.
서현아 앵커
조선 후기로 가면서 상업이 활발해졌다고 하는데, 어떤 변화들이 있었습니까.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
가장 잘 알려진 상인은 보부상입니다.
보따리를 가지고 다니는 보상, 지고 다니는 부상이라고 하는데 상품을 이고 지고 조선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이것은 개인들이 하는 장사이고 더 큰 규모의 상인도 있습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상인들의 영향력은 점점 커집니다.
이 사람들의 활약으로 생활문화가 바뀌기도 했습니다.
재미난 예를 들자면 냉동선의 발달입니다.
예전 물고기는 상하기 쉬워서 말려서 포로 사고 팔았는데 후대에 오면 신선한 물고기, 곧 생선이 공급됩니다.
상인들이 얼음을 보관하는 빙고를 만들고, 이 얼음으로 물고기들을 얼려서 배에 싣고 날라와 팔았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신선한 생선을 먹을 수 있게 되었지요.
조선시대의 상인들이 상품의 가치를 높이려 애썼기에 식생활마저 바뀐 겁니다.
서현아 앵커
상업이 발전하면서 '객주'라는 공간도 등장했습니다.
주로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까.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
객주는 아주 쉽게 말하면 여관 주인입니다.
상인들은 외지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자거나 쉴 수 있는 숙소가 필요했거든요.
그런데 자는 것 말고도 상품을 맡아주는 보관해 주기도 하고, 현지 사람들과 연결해주는 중개인도 필요했습니다.
또, 살다 보면 갑자기 큰돈이 쓸 데가 필요해집니다.
객주는 이 모든 일을 했습니다.
결국 숙박, 금융, 중개를 전부 다 했지요.
서현아 앵커
당시 일부 객주들은 지역 경제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힘이 셌다던데요?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
전국 각지에 상인들이 발달했지만 가장 자료가 많은 곳은 수도인 한양.
특히 한강 유역의 상인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경강상인이라고 했는데요, 나라의 관리들조차 감히 손댈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집니다.
특히 조선 후기가 되면 더 심해지는데요,
가장 심각했던 것은 1833년의 쌀 폭동이었습니다.
한강의 객주들 몇몇이 담합해서 서울 안에 아예 쌀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쌀값이 오를 것이고 이 때 비싸게 팔아 돈을 벌려는 속셈이었죠.
결국 2주 만에 쌀값은 3배로 뛰었고 사람들은 폭동을 일으킵니다.
건물들이 불타고 약탈되자 도성 안의 모든 병력, 심지어 왕의 친위대까지 동원되어 진압했습니다.
결국 폭동에 참여한 사람들과 사태의 원흉인 객주들 중 몇몇은 처벌받았습니다만.
이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밥의 민족에게서 쌀을 빼앗은 극악무도한 객주도 있었습니다.
서현아 앵커
그중에서도 큰돈을 벌고 이름을 남긴 인물들도 있었죠.
특히 김만덕의 경우엔 사극 드라마 주인공으로도 대중에게 알려졌는데요.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
아무래도 조선에서 객주들의 평가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객주와 상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소송도 걸고 거침없이 싸웠으니 다들 좀 거북해했지요.
하지만 상인들도 사회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김만덕인데요, 1795년 제주도에서 큰 흉년이 듭니다.
사람들이 거의 다 굶어죽게 되자 조선 정부는 급하게 곡식을 보냈는데, 운 나쁘게도 이 배가 풍랑을 만나 가라앉았습니다.
이처럼 위태로운 상황에 제주시 객주 김만덕이 500석의 곡식을 사 와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그렇게 시간을 번 동안 다시 나라에서 곡식을 보냈고 식량 위기가 해결됩니다. 이 공헌으로 김만덕은 내의녀의 관직을 받고 조선시대 가장 유명한 여성 상인이 됩니다.
그런데 같은 시대의 다른 기록을 보면 김만덕은 굉장히 인색하고 무자비한 상인이었다고도 합니다.
저는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벌면서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모은 돈을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었던 것이 김만덕의 위대함이었습니다.
서현아 앵커
그렇다면 이런 '객주'나 '김만덕'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요?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
상인이나 객주는 이익이 정말 중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때로 나쁜 짓을 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기꺼이 세상과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사람인 우리도 기부하기가 힘들지만, 세상에서 가장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기부는 더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앞서 말한 김만덕처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위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노력 하나하나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었지요.
인간은 대체로 이기적이고 대체로 남을 등쳐먹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타인을 도울 수 있기에 그 사회가 유지되고 더 좋게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서현아 앵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사는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는 설명인데요.
지금 우리 사회에도 꼭 필요한 가치로 보입니다.
작가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Copyright © E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