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히틀러의 병든 뇌
1945년 4월 20일, 베를린에서 히틀러는 56세 생일을 맞았다. 하지만 우울한 날이었다. 소련군의 베를린 진격으로 지하 벙커에 숨어 지내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자신은 물론 나치 독일의 몰락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생일도 자축하고 시민의 결사항전을 독려하기 위해 벙커 밖으로 나와 소련군 전차를 파괴한 소년병들에게 훈장을 수여한다.
이 장면은 나치의 선전 영상에 담겨 공개되었고 지금도 볼 수 있다(스미소니언 채널 https://youtu.be/0w3nsAaOpq4?si=keqrxKjW350cIreC). 그런데 영상 속 히틀러의 표정은 무척 굳어있고, 오른손만 쓰며 왼손은 뒤춤에 감추어져 있다. 물론 교묘히 편집된 영상이지만 이 영상을 통해 독일 국민은 격려는커녕 더 큰 좌절을 느꼈을 것만 같다. 후일에 동독에서 발견된 편집 전의 원본 필름을 보면 감추어진 왼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어 히틀러가 파킨슨병 환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으로 복무했고, 폭동을 일으켜 수감되었다 출소 후 카리스마 넘치는 대중 선동가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1933년에 바이마르공화국의 총리로 임명되었고 이듬해에 대통령이 죽자 대통령직까지 승계해 총통(총리+대통령)이 된다. 히틀러의 나치독일은 초기에는 꽤 성공적이었다. 패전국의 멍에를 버리고 군대를 다시 일으켰고, 공직에서 유대인을 몰아냈다.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도 손쉽게 집어삼켰다. 히틀러는 멋진 제복을 입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로 국민을 사로잡았다. 국민은 독일을 재건한 그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1939년 9월,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대전이 공식 발발했다. 영국은 프랑스를 지키기 위해 지원군을 보낸다. 하지만 독일군의 파죽지세를 감당 못하고 1940년 5월이 되면 벨기에 덩케르크 해안에서 독 안에 갇힌 쥐신세가 된다. 수십 만명의 병력이 궤멸될 위기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 히틀러는 진격 중지 명령을 내린다. 덕분에 영국-프랑스군은 철수작전에 성공했고 반격의 기틀을 마련했다. 현장 지휘관들의 의견을 묵살한 히틀러의 독선적인 결정이었다. 그의 결정적 실수를 두고 전문가들도 혼란스러웠다. 왜 그런 거지? 히틀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히틀러는 많은 병을 앓았다. 특히 1920년대 즉 30대 나이에 왼손을 떨기 시작했다. 공개 석상에서 손을 다소곳이 모은 사진이 많은데 그가 겸손해서가 아니라 왼손을 붙잡아두려는 고육지책이었다. 히틀러의 시그니처인 화려한 언변, 과격하고 선동적인 대중연설은 전쟁이 터진 후로는 현장에서 직관하기 어려웠다. 편집된 뉴스 화면으로만 만날 수 있었다.
1942년부터는 손떨림이 심해 안경을 잡은 왼손이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낼 정도였다. 몸도 구부정했고, 걸음도 비틀거렸다. 왕년의 카리스마 넘치는 선동가의 모습은 없었다. 사실상 그의 마지막 영상도 전문가들의 섬세한 손길에도 불구하고 어색한 표정과 행동을 숨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나저나 국가 원수를 왜 이 지경으로 놔둔 건가? 의사는 없었나?
물론 히틀러에겐 주치의가 있었다. 비뇨기과 의사인 테오도르 모렐이었다. 그는 총통에게 수십 가지 약을 처방했다. 그 중에는 치료제도 있고, 효과가 의심스러운 약도 있었다. 특히 모렐은 히틀러의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해소해줄 특별한 약물도 썼다. 아침마다 모렐의 주사를 맞으면 히틀러는 몸이 가볍고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했다. 주사에는 비타민, 카페인, 남성호르몬이 있었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효과를 낸 건 코카인과 메트암페타민(필로폰)이었다. 우리가 마약이라 부르는 바로 그 약이다. 필로폰을 왜 히틀러에게 썼을까?
메트암페타민은 19세기에 합성되었고 독일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피로를 잊고 고된 전투와 중노동을 견디게 했다. 모렐도 그 약을 히틀러에게 썼다. 그런데 이런 약은 히틀러의 뇌에, 파킨슨병에 해롭지 않을까? 당시에는 몰랐지만 메트암페타민에 중독되면 파킨슨병에 더 잘 걸린다. 뿐만 아니라 참을성이 없어지고, 쉽게 흥분하고, 수시로 분노 발작을 일으키게 한다. 말기의 히틀러가 그랬다. 심하면 정신병 증상도 나오는데 특히 망상이 심하다. 이미 궤멸된 부대에 반격 명령을 내리고, 소련군도 쉽게 물리칠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을 한 것을 보면 히틀러는 망상에 빠진 사람으로 보인다. 그가 헛된 저항을 중단하고 이성적 판단을 했다면 베를린에서 민간인들이 총알받이로 당한 끔찍한 일을 피할 수는 있었을 텐데.

오래된 영상 속에 남은 독재자 히틀러는 힘없는 파킨슨병 환자였다. 하지만 그를 빠른 속도로 망가트린 것은 파킨슨병이 아니었다. 유능한 의사를 내쫓고 비선으로 임명된, 처세에 능하지만 무능했던 주치의였다. 총통의 심기 경호를 위해 쓴 약들 속에 있던 마약이 히틀러와 독일의 몰락을 재촉했다. 제대로 된 의사나 전문가에게 치료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히틀러는 건강했고 총기를 잃지 않게 되고 그러면 전쟁은 더 길어졌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히틀러의 몰락을 재촉한 주치의에게 감사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 역사는 이런 아이러니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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