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영화 ‘바다호랑이’ 배우 이지훈…“치유의 영화입니다”

김은형 기자 2025. 6. 2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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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홍 잠수사 모델로 그린 영화 주연
영화 ‘바다호랑이’에서 잠수사 나경수를 연기한 배우 이지훈. 영화로운형제 제공

“여기 우리 주인공 역할을 맡을 배우가 계시네요.”

영화가 시작되면 연습실 같은 공간에서 카메라 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배우들 사이로 혼자 등을 보이던 배우가 정면으로 돌아선다.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로 익숙한 배우 이지훈(46)이다. 그가 맡은 주인공 이름은 나경수. 세월호 참사 당시 물속의 아이들을 건져내기 위해 분투하다 잠수병에 걸리고, 억울한 송사에 휘말린 동료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니다 참사 2년 만에 세상을 떠난 고 김관홍 잠수사를 모델로 한 인물이다.

25일 개봉한 ‘바다호랑이’는 세월호와 잠수사를 소재로 하지만 커다란 배도, 검푸른 바닷물도, 아이들도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도그빌’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모든 이야기가 진행된다. 누가 봐도 진짜 배, 진짜 바닷속은 아니지만, 빨려 들어가는 이야기, 배경이나 소품에 의지하지 않는 배우들의 옹골찬 연기만으로 관객을 팽목항과 깊은 바닷속과 치열한 법정으로 안내한다. 특히 줄곧 이어지는 클로즈업 화면에서 떨리고 흔들리며 무너지는 눈빛을 담담하게 연기한 이지훈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 ‘바다호랑이’는 그의 첫 주연작이다.

“감정적으로 힘들면서도 배우로서 해내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하는 시나리오였습니다. 이야기를 풀어내며 내가 느낀 감정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도 크게 들었고요. 세월호를 소재로 했다는 이유로 ‘괜찮겠냐’는 주변의 시선이 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이 작품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다시 삶을 회복한 희망의 이야기여서 꼭 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선 만난 이지훈이 말했다.

영화 ‘바다호랑이’. 영화로운형제 제공

본래 ‘바다호랑이’는 김탁환 소설가의 ‘거짓말이다’ 출간 직후 이를 원작으로 하는 제작비 100억원대의 대형 프로젝트로 기획됐다. 하지만 준비 과정이 더뎌지고 코로나 벽에 부딪히며 엎어질 위기에 놓였다가 독특한 실험으로 되살아났다. 이지훈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교회 대학생 형으로 처음 만났던 정윤철 감독이 그에게 “이런 걸 해보면 너한테도 공부 많이 될 거 같으니 한번 해보는 게 어때?”라고 캐스팅 제안을 했다. 배경이나 의상, 소품, 조명 등 감정을 북돋는 도구 하나 없이 맨몸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건 데뷔 23년차 배우인 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배우들은 소품을 쓰고 배경에 의지하면서 심리 상태를 극대화하는데, 이런 게 없으니까 한마디로 비빌 언덕이 없는 거예요. 믿을 수 있는 건 내 목소리, 말투, 몸짓뿐이었죠. 나 자신에게 좀 더 확신을 가져보자고 다짐하면서 나아갔어요. 그러다 보니 텅 빈 공간이 정말 물속처럼 느껴지고, 저 위를 올려다봤을 때 아이가 있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이지훈이 간단한 잠수복을 입고 물속으로 내려가 유영하는 장면은 그 속도감과 움직임이 정말 물속에서 찍었나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실존 모델을 연기하는 건 배우들에게 또 다른 도전이다. 그는 김관홍 잠수사의 이력과 관련 기사들을 샅샅이 찾고 조사하진 않았다고 한다. “김관홍 잠수사에 대해 자세히 알면 알수록 그의 모습과 표정을 흉내 내게 될까 싶었어요. 그분의 마음을 타인이 헤아리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인간 이지훈이 이런 일을 겪으면 어땠을까, 그때 김 잠수사가 처한 상황에 저를 대입하면서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갔습니다.”

그는 ‘바다호랑이’가 슬픔의 영화지만 동시에 치유의 영화이기 때문에 많은 관객이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지만 힘들어서 못 볼 것 같다는 말을 몇번 들었어요. 세월호라는 소재를 결코 가볍게 볼 수는 없지만, ‘바다호랑이’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나섰던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이고, 그로 인해 지옥 같은 고통을 겪었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의 이야기예요. 세월호 참사로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이 비단 유족들만은 아닐 텐데 ‘바다호랑이’를 보면서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는 힘겨움을 털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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