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차이나-전환의 시대, 세계와 한중관계] ⑮ 인천이 그리는 동아시아 평화 정체성

이은경 기자 2025. 6. 2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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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국립통일교육원 교수]

한미일-북중러 진영 구도 고착 속
정치·안보적 긴장 장기화 불가피

확증편향·혐오 확산…시민 감정 왜곡
경제교류 확대로는 심리적 장벽 못 넘어

사드 사태 이후 한중 교류 빠르게 회복
정상 축전·K팝 재개…문화 협력 재가동

인천, 국제 행사 등 소화 역량 갖춰
지역 지리적 강점·문화적 기반 바탕
동아시아 평화 정체성 실험장 가능성

동아시아는 경제적 긴밀함과 정치적 거리감이 공존하는 독특한 지역이다. 2023년 기준 IMF 자료에 따르면 한중일 3국의 명목 GDP는 세계 GDP의 약 24%, 무역량은 세계 교역의 약 20%에 이른다. 그러나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한미일-북중러 진영 구도의 고착 속에서 정치·안보적 긴장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심리적 거리감 큰 동아시아

여기에 디지털 확증편향과 혐오 표현이 시민들의 상호 인식을 왜곡시키며 심리적 거리는 더욱 벌어지게 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이를 보여준다. 일본 내각부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56.3%까지 회복되었지만,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14.7%에 머물렀다. 2025년 아산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대중국 호감도 역시 10점 만점에 3.13점으로 낮은 수준이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될수록 시민들 간의 정서적 간극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평화 정체성이 형성되지 못하는 배경에는 네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첫째, 안보 딜레마가 상호 불신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 둘째, 역사적 기억이 정치적으로 활용되면서 상반된 역사 인식이 시민들의 감정을 자극한다. 셋째,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국내 정치에서 손쉽게 동원되며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든다. 넷째, 디지털 확증편향이 상대국에 대한 편향된 인식을 강화하며 혐오 감정을 확산시킨다. 따라서 경제교류의 확대만으로는 이 복합적인 심리적 장벽을 넘어서기 어렵다.

▲한중 사회문화 회복의 조짐

여기서 말하는 '평화 정체성'이란 단순히 전쟁을 회피하는 것을 넘어, 서로를 공존의 파트너로 인식하는 시민사회의 심리적 기반을 의미한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바로 공동 서사다. 얼굴을 맞대고 교류하며 쌓아가는 축적된 경험이야말로 신뢰와 공감의 토대가 된다.

최근 한중 관계에서도 회복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17년 사드 사태 이후 교류가 크게 위축되었으나, 2024년 들어 인적 교류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2024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약 460만 명으로 전년 대비 128% 증가했다.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 수도 무비자 입국 재개의 영향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 민간 교류의 숨통이 다시 트이고 있는 것이다.

정상 간 소통도 복원되고 있다. 2025년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낸 축전에서 "이데올로기와 사회제도의 차이를 뛰어넘어 양국 관계 발전을 고도로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도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트와이스, 아이브 등 K-팝 그룹들이 중국 본토에서 공연과 팬 미팅을 재개했으며, 신인 아이돌 그룹들도 팬 사인회를 열고 있다. 또한, 텐센트 뮤직 엔터테인먼트가 하이브 지분 9.38%를 인수하면서 문화산업 협력도 한층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점차 동아시아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2014년부터 한중일 3국이 매년 각국의 도시를 선정해 상호 교류하는 '동아시아 문화도시' 프로그램에는 2022년까지 총 27개 도시가 참여하였으며, 약 800여 차례에 걸친 문화교류 활동이 전개되었다. 2025년에는 한국의 안성, 중국의 후저우와 마카오, 일본의 가마쿠라가 선정되어 청년 캠프, 음식 축제, 퍼레이드 등 실질적인 시민 참여 중심의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마카오에서는 15개국 60개 예술단이 참가한 개막행사가 열려, 문화 융합의 가능성과 동아시아 문화공동체 형성의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한편 인천시는 2019년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된 바 있다.

▲ 2025년 동아시아 문화도시로는 한국의 안성시, 중국의 마카오와 후저우, 일본의 가마쿠라시가 선정되었다. 지난 3월 24일 마카오에서 열린 동아시아 문화도시 개막식에서는 안성시의 전통 풍물 공연이 펼쳐지는 등, 올해 선정된 도시 간의 사회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어질 예정이다./사진제공=마카오방송(TDM) 홈페이지
▲ 2025년 동아시아 문화도시로는 한국의 안성시, 중국의 마카오와 후저우, 일본의 가마쿠라시가 선정되었다. 지난 3월 24일 마카오에서 열린 동아시아 문화도시 개막식에서는 안성시의 전통 풍물 공연이 펼쳐지는 등, 올해 선정된 도시 간의 사회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어질 예정이다./사진제공=마카오방송(TDM) 홈페이지

'동아시아 문화도시' 프로그램은?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문화 교류 협력 사업으로, 문화적 유대와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지향하는 다자간 지역 협력 플랫폼이다. 이 사업은 2011년 일본 나라에서 열린 한중일 문화장관회의에서 제안되어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이후 매년 각국은 자국 내 도시 중 한 곳을 선정하여, 연중 다양한 문화예술 교류 활동과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 자산 갖춘 인천 역할 기대

이제 인천이 이 흐름의 새로운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천은 북한의 개성·해주와 인접해 있으며, 칭다오, 상하이 등과도 가까운 동북아 관문의 입지에 있다. 여기에 내항 재개발을 통해 조성 중인 '상상플랫폼'과 '아트센터인천'는 K-콘텐츠 교류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으며, 청라 영상문화복합단지도 2026년 착공을 앞두고 있다. 또한, 영종도의 인스파이어 복합리조트, 제물포 복합역사문화공간, 송도의 MICE 컨벤션센터 등은 이미 국제행사와 글로벌 문화 이벤트를 소화할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최근 인천은 K-콘텐츠 박람회, 국제 e스포츠 대회, 청년 창작 캠프 등 다양한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그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인천이 가진 이 문화적·지리적 자산은 동아시아 평화 정체성 형성의 실험장이 될 수 있다. 인천의 지리적 강점과 문화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중일과 남북이 어우러지는 문화 축제의 장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단계별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 간 문화교류 협정을 확대하고, 청년 창작 캠프와 공동예술 프로젝트 등에 대한 예산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지방정부 간 문화교류 MOU를 체결하고, 지역 차원의 정례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민간 기업, 청년 창작자, 콘텐츠 산업 간의 국제 협업도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문화교류는 반복되고 누적될 때 비로소 신뢰와 공감을 만들어낸다.

결국 평화 정체성은 정부의 외교적 선언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일상 속 반복되는 시민들 간의 교류와 협업의 경험이 신뢰를 쌓고, 그 신뢰가 평화를 만든다. 지금 동아시아의 평화 정체성은 '미생'을 넘어 '완생'을 향해 나아갈 출발선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의 중요한 실험장이 바로 인천이 될 수 있다.

김지영 교수는

국립통일교육원에 재직 중이며, 영국 워릭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같은 대학에서 국제정치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과 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북한의 대외·안보정책, 남북관계, 동아시아 국제정치이며, 특히 양안관계와 중국의 대외관계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트럼프 2.0 시대 북중러의 전환과 한반도』(한비출판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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