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왕의 와인’ 바롤로… 비에티 와이너리의 실험

변지희 기자 2025. 6. 2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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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스 페터 비에티 와이너리 디렉터 간담회

“비에티(Vietti) 와이너리가 피에몬테(Piemonte)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도전하고 실험하며, 새로운 것을 만드는 선구자였습니다.”

비에티 와이너리의 우르스 페터(Urs Vetter) 수출 담당 디렉터는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나라셀라 도운에서 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이날 세미나는 비에티 와인의 국내 공식 수입사인 나라셀라 주최로 열렸다.

비에티 와이너리의 우르스 페터 수출 담당 디렉터가 지난 18일 서울 강남 나라셀라 도운에서 간담회를 하고 있다. /나라셀라 제공

이탈리아 북서부에 있는 피에몬테 지역에서 생산되는 바롤로(Barolo)는 ‘왕의 와인, 와인의 왕’으로 불린다. 19세기 사보이 왕가가 외국 귀빈을 대접할 때 사용한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바롤로는 이 지역 토착 품종인 네비올로(Nebbiolo)로 모두 만들어진다. 18개월 이상 오크 숙성을 거쳐야 한다. 네비올로 품종의 특성상 산도와 탄닌이 높고, 단단한 구조감을 갖고 있지만 수년간의 숙성을 거치면 섬세하고 긴 여운을 지닌 와인으로 거듭난다.

비에티는 바롤로 지역에서 처음으로 싱글 빈야드, 즉 ‘크뤼’ 개념을 도입한 생산자로 꼽힌다. 페터 디렉터는 “비에티 설립자인 카를로 비에티의 아들, 마리오 비에티는 1917년 가업을 이어받았는데 당시 기준으로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과감했다”라며 “당시에는 포도를 사고파는 ‘네고시앙’의 개념만 있었는데, 그는 포도밭을 직접 재배, 제조, 병입해서 팔겠다는 비전을 갖고 좋은 포도밭을 찾아다니며 조금씩 매입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1952년 마리오의 딸 루치아노 비에티와 그녀의 남편 알프레도 큐라도가 와이너리 운영에 합류했다. 마리오의 뜻을 이어받아 비에티는 이때부터 싱글 빈야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미세한 토양의 차이를 그때부터 알고 제대로 표현해 보려고 애쓴 셈이다. 페터 디렉터는 “마리오의 선구안으로 현재 비에티는 바롤로 지역 11개 마을 중 9개 마을의 포도밭을 갖고 있고, 지금도 계속 포도밭을 매입하고 있다”라며 “바롤로 지역에서 가장 많은 포도밭 보유하고 있는 곳이 비에티”라고 말했다.

비에티 와이너리가 소유한 피에몬테 포도밭. /나라셀라 제공

피에몬테는 북쪽으로 알프스, 남쪽으로 지중해를 마주하고 있다. 해발 4800m에 이르는 알프스의 찬 공기와 지중해의 따뜻한 바닷바람, 연간 320일 이상 쏟아지는 햇빛은 과실의 향미를 더욱 정교하고 우아하게 만든다. 수백만 년 전 바닷속에 잠겨 있었던 이 지역은 이회토를 기반으로 하되 석회암, 모래, 점토 등이 섞인 복합적인 토양을 갖고 있다. 이는 토착 품종 네비올로가 지닌 강인함과 섬세함, 구조감을 균형 있게 표현하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이번 간담회에서 페터 디렉터는 비에티의 6가지 싱글 크뤼 바롤로를 소개했다. ▲바롤로 크뤼 브루나테 ▲바롤로 크뤼 체레퀴오 ▲바롤로 크뤼 로께 디 카스틸리오네 ▲바롤로 크뤼 라자리토 ▲바롤로 크뤼 라베라 ▲바롤로 크뤼 몬빌리에로 등이다. 페터 디렉터는 “각 크뤼는 모두 동일한 품종과 유사한 양조 방식을 사용하지만, 미세한 지형과 토양의 차이로 전혀 다른 개성을 표현한다”라고 설명했다.

브루나테와 체레퀴오 포도밭은 바롤로 중심부의 라 모라 마을에 있다. 페터 디렉터는 “두 포도밭이 근접해 있어 토양도 수확 시기도 비슷하다”라며 “다만 브루나테는 남향, 체레퀴오는 남동향 포도밭인데 여기서 차이가 생긴다”라고 설명했다. 바롤로 크뤼 브루나테는 잘 익은 검은 야생 체리의 향, 자두, 제비꽃, 감초 향이 느껴지는 강건한 구조감이 특징이다. 바롤로 크뤼 체레퀴오는 붉은 베리, 장미꽃 향이 느껴지는 섬세한 탄닌이 특징이다.

로께 디 카스틸리오네와 라자리토 포도밭도 불과 4㎞ 떨어진 지역에 있지만 토양 때문에 완전히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로께 디 카스틸리오네는 남동향이어서 햇빛을 충분히 받지만 깊은 경사지에 있어 금방 해가 진다. 토양은 이회토에 모래가 섞여 있다. 반면 라자리토는 6개의 포도밭 중 가장 따뜻한 곳이다. 이회토에 진흙이 섞여 있다. 바롤로 크뤼 로께 디 카스틸리오네는 말린 꽃, 카모마일 티, 건초 뉘앙스의 강렬하고 복합적인 아로마가 특징이라면, 바롤로 크뤼 라자리토는 자두와 무화과, 달콤한 탄닌이 느껴진다.

라베라 포도밭은 바롤로 지역의 남서쪽, 고도 450m에 있어 6개 포도밭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몽빌리에로 포도밭은 바롤로 지역의 가장 북쪽에 있으며 알프스에서 부는 바람을 고스란히 받는다. 두 곳 모두 서늘한 기후여서 포도 과실이 다층적인 향과 맛을 낸다. 바롤로 크뤼 라베라는 말린 장미와 오렌지 껍질 향이 인상적이다. 바롤로 크뤼 몬빌리에로는 6개 크뤼 바롤로 중 가장 섬세하고 우아한 스타일이다. 유일하게 토양에 초크 성분이 포함된 영향이다.

비에티 와이너리의 와인 제품들. /변지희 기자

비에티는 양조 과정에서도 섬세함과 정교함을 추구한다. 특히 발효가 시작되기 전 2~3일간 포도 껍질을 과육과 함께 재워두는 침용 과정을 저온에서 진행하는데, 포도 껍질과 씨에 물리적인 힘을 가해 짜내는 대신 차를 우리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와인을 분리해 낸다. 페터 디렉터는 “탄닌의 분자 구조를 부드럽게 연결시켜 거친 쓴맛을 줄이고, 밀도 있는 질감 속에서도 우아함을 유지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오크 사용도 절제한다. 새 오크에서 숙성하는 비율은 전체 15%를 넘지 않는다.

비에티는 바롤로 외에도 지역 고유 품종에 대한 실험을 지속해 왔다. 멸종 위기에 처했던 백포도 품종 ‘아르네이스’를 부활시킨 곳도 비에티다. 이외에도 바르베라, 돌체토, 프레이자, 티모라쏘 등 다양한 품종을 재배하며 각 품종의 특성을 살린 프리미엄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페터 디렉터는 “2016년 비에티 와이너리는 미국의 크라우제 패밀리(Krause Family)에 인수됐지만, 설립 초기부터 이어져 온 전통과 실험 정신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라며 “포도밭 관리부터 양조 방식까지 기존 인력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며, 와인 제조 철학을 계승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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