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호 100대 사건]〈2〉우리나라 최초 인터넷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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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구미와 서울대 연구실.
대한민국이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인터넷 연결에 성공한 순간이다.
1982년 5월, 경북 구미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있던 두 대의 중형 컴퓨터가 각각 고유 인터넷 주소를 할당받아 데이터 패킷을 송수신했다.
인터넷 접속 표준 프로토콜인 TCP/IP 방식으로 이뤄진 인터넷이 연결된 순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인터넷 데이터 송수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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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구미와 서울대 연구실. 두 곳에 놓인 컴퓨터 앞에 모여있던 연구자들이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대한민국이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인터넷 연결에 성공한 순간이다.
1982년 5월, 경북 구미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있던 두 대의 중형 컴퓨터가 각각 고유 인터넷 주소를 할당받아 데이터 패킷을 송수신했다. 인터넷 접속 표준 프로토콜인 TCP/IP 방식으로 이뤄진 인터넷이 연결된 순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인터넷 데이터 송수신에 성공했다. 당시 KAIST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를 주도한 전길남 박사는 이 공로로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시작은 미미했다. 당시 구축한 국내 최초 인터넷망 SDN 데이터 전송 속도는 1200bps로, 초당 150글자를 주고받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작고 느린 시작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명실상부 IT 강국으로 만든 씨앗이 됐다.
첫 인터넷 연결 이후 우리나라 인터넷 연구는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2년 후인 1984넌 공중정보통신망(PSDN)을 개통해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패킷 보유망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같은 해 이메일 수·발신이 가능해진 것을 발판으로 1985년 한국데이터통신에서 상용 이메일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1986년 최초의 PC통신 '천리안'과 함께 인터넷 대중화가 이뤄지고, 다음커뮤니케이션,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가 차례로 탄생했다. 야후, 프리챌, 아이러브스쿨, 싸이월드 등 커뮤니티 서비스와 수많은 온라인 게임이 연이어 등장하며 '초고속' 인터넷 시대 IT 강국 발판을 마련했다.
정다은 기자 dand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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