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기술이 너무 빨라질 때, 인간은 어떻게 될까?"

2025. 6. 2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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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정승조 아나운서 ■

눈앞이 뿌옇습니다.

차민영 작가의 전시 '미래에서 온 안개'는 우리가 겪고 있는 ‘지금 여기’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AI는 매일 더 똑똑해지고, 기후 위기는 이미 한계를 넘나들고 있는데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인간은 어떻게 될까요?

작가는 빠른 세상 속에서 방향을 잃은 우리를 ‘안개 속을 걷는 존재’로 묘사합니다.

보트 피플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은 인간의 욕망, 희망과 고난이 뒤섞인 감정을 담아냅니다.

가방 파편 시리즈에서는 디지털 시대에 잊힌 기억들을 끌어냅니다.

숨을 나누는 AI 클론이 등장하는 영상 Sharing the Breath는 기술 속 인간의 불안함을 보여줍니다.

이번 전시는 하나의 줄기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작품마다 다른 질문을 던지는 하나의 사고 실험실입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안개 속이라도 한 걸음을 내딛는 그 용기가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일일지도 모른다고요.

이제 질문은 우리 몫입니다.

"기술이 너무 빨라질 때, 당신은 어디쯤 있을 것 같나요?"

정승조의 아트홀릭은 '차민영 작가'를 만나 전시 '차민영: FOG FROM THE FUTURE'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 전시 제목이 ‘FOG FROM THE FUTURE(미래에서 온 안개)’입니다. 작가님이 말하는 ‘미래의 안개’는 어떤 걸 뜻하나요?

미래에서 온 안개 163x125x230 cm, Stainless steel, LCD monitor, Led lamp, wood etc, 2024

미래에서 온 안개는 거대한 가속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방향 감각 상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대의 대표적인 거대한 가속은 기후 위기와 기술의 가속화를 꼽을 수 있는데 속도감의 본질은 어떤 것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변화가 너무 빠르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 속도에 제대로 반응하거나 제어할 수 없음을 느끼는 것과 관계있습니다.

안개 속에서 우리는 앞을 내다보는 시야와 방향 감각을 잃어버립니다. 오늘날 AI의 진화 속도와 기후 위기의 Tipping point에 대한 심각한 우려들은 그에 대한 지적 대응이나 저항을 할 수 있는 면역 체계가 현대인들에게 아직 부재함을 의미합니다.

안개로 덮인 길 위에서 지금, 여기라는 시공의 좌표만을 의지하며 또 한 걸음을 내딛는 행위가 저에겐 가장 인간다운 행위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미래가 촉발시키는 여러 징후들에 대한 상상력과 질문들을 작품으로 풀어보려 했습니다.

▮ 전시 대표작이 ‘보트 피플’에서 출발했다고 하셨죠. 이 이야기가 어떤 감정이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을까요?

Brown Shash door 전면 클로즈, variable size, stainless steel, antique suitcase, walnut, lcd monitor etc, 2025

구체적인 작품 구상에 영감을 준 사건이긴 하지만 (흰색: 난민들의 구조요청 시 흔든 흰 천과, 흰색의 페인트로 칠해진 배 등 흰색이 의미하는 구원과 희망은 동시에 고난과 역경의 중의적 의미)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해 ‘보트 피플’에서 출발한 것은 아닙니다.

초월적 이주와 기후 위기 담론을 통한 지질학적 상상력과 인간 욕망에 관한 작품을 구상하던 중 이주와 이동에 얽혀있는 인간의 욕망은 과거로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음을 인지하게 되었고 인류 공통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큰 상흔의 흔적을 쫓다가 찾게 된 사건입니다.

이 비극적 사건은 강제 이주가 초래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뿐 아니라 배제와 차별의 문제, 극한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개개인의 서사들처럼 인류 역사이래 끊임없이 탐구되어 온 인간 본질의 의미와 이미지를 상기 시켰습니다.

▮ ‘기후난민’이라는 말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작가님이 상상하는 ‘기후 이후의 인간 존재’는 어떤 모습일까요?

기후난민은 인류가 직면하게 될 미래의 현상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 모습을 예측할 순 없지만 사회의 많은 부분이 재구성되고 재편되겠지요. 그러나 인간의 기본 본성과 욕망, 취약성은 유지될 것이며 이는 자본과 같은 특수한 조건 아래 재분배되고 이에 따른 갈등들도 촉발될 것이라 상상해 봅니다.

▮ ‘Great Acceleration’이라는 작업에서는 기술이 인간을 점점 ‘골동품’처럼 만든다고 하셨어요. 이 부분을 쉽게 풀어주신다면요?

Great Accelleration, 69 x160 x 23cm,stainless steel , antique scale, antique suitcase,motor etc, 2025

개인적으로 ‘거대한 가속 Great Acceleration’ 작품이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골동화 개념은 독일 미디어 이론가 귄터 안더스의 저서 'Die Antiquiertheit des Menschen 인간의 구식성'에서 차용한 개념입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매스미디어 (특히, 텔레비전)의 확산을 통해 기술 발전의 속도와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 사이에 엄청난 격차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결국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은 골동품처럼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저는 인간의 골동화와 기술 사이의 격차가 동시대 가장 뚜렷한 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기록이 기억을 대체하고 프롬프트가 사유를 대체하는 시대입니다. 미디어 의존성은 미디어가 발전할수록 가속화될 것이고 이를 인간이 촉발시켰으나 인간 스스로 통제 불가능한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 ‘가방 파편’ 시리즈 이야기를 해 볼게요. 작업을 하시면서 떠올랐던 장면이나 감정이 있으셨을까요?

가방파편 설치전경 사람

디지털 미디어가 탈각시키는 기억들을 작품을 통해 물질적으로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이 물질적 기록은 제 기억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급속한 도시화를 통해 무수한 것들이 탈각되고 상실되는 흐름 속에서 여전히 잔존하는 것들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사회적 현상과 개인적 기억이 교집합 되는 부분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모티브가 고향의 구도심 지역까지 다다랐다 할 수 있습니다. 1970-80년대 유행했던 샷시문과, 사자모양 손잡이, 반지하 등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건축 요소인 동시에 제 기억 속에서도 수많은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아련하게 떠오르는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 ‘숨을 나누는 클론’이 등장하는 'Sharing the Breath' 작품도 독특했어요. 이 작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나요?

Sharing the Breath, stainless steel, monitor, 145 x 108 x 13cm, 2025

협심증으로 겪었던 호흡 곤란 경험에서 비롯된 Sharing the Breath 작품은 AI로 생성된 클론형 인간이 서로의 숨을 나누는 기이한 풍경을 통해 기술 진보 속 인간의 취약성과 존재론적 불안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영상의 사운드는 제 숨소리입니다.

협심증 증상은 저에게는 일상 속 깊이 침투해 있는 공생 해야 할 위협적 요소인데 현재 AI를 지각하고 감각하는 개인적 불안도는 이처럼 높다 하겠습니다. 특히 숨은 인간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행위인 동시에 인간 신체의 유한성과 의존성, 취약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지표라 생각합니다. 서로의 숨에 의지하는 복제된 클론의 이미지는 인간의 취약성과 한계를 끊임없이 개선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포스트휴먼 담론과 맞닿아 있습니다. 영원히 추구될 그러나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열망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고자 한 작업입니다.

▮ 전시를 통해 아트홀릭 독자들이 어떤 걸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보세요? 혹은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요?

작가 차민영

이번 전시는 하나의 연속적 주제 아래 매끈하게 꿰어진 작품들의 행렬이 아니라 불연속이고 단절된 기표처럼 개별적 작품들이 각각의 독립된 질문 자체입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징후들로 촉발된 부유하는 상상력과 질문들을 개별 작품으로 안착시킨 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해 이제껏 걸어온 길 앞에 예측 불가능한 안개를 만났더라도 지금, 여기라는 좌표에서부터 다시 한 발을 내딛는 행위에 대해 각자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 제공: 비트리 갤러리)

■ 작가 소개

차민영(b.1977)은 홍익대학교에서 판화를 전공하였고 동대학원 석사, 영상학 박사를 취득했다. 그는 표갤러리, 표갤러리 베이징, 갤러리현대, 마카오 타이파하우스박물관, 상하이 듀오론 현대미술관, 두바이 PROJECT2009 ART Dubai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국립현대미술관, HOMA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서울미술관, 성곡미술관, 포스코미술관, 남포미술관, 서울대학교 미술관, 유니세프홀, 영국 사치갤러리, 홍콩 HART Hall, 홍콩 크리스티 등 국내외 다양한 단체전에도 참여했다. 차민영은 2016, 2018년 홍콩 소버린재단이 주최하는 소버린아시안아트프라이즈에서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었다. 주요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부산현대미술관, NHN, 포스코미술관, 경기도미술관,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네이버, POSCO, 프랑스 Galerie Baudoin Lebon, 영국 David N Kowitz Fairlight Hall 등이 있으며 현재 모교에서 초빙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 차민영: FOG FROM THE FUTURE

- 장소: 비트리 갤러리(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 94, 비트리 갤러리

- 일정: ~ 2025. 7. 5(토)

- 관람시간: 화-금요일 10:00 AM-6:00 PM / 토요일 11:00 AM-6:00 PM / 일·월요일 휴무

- 관람료: 무료

정승조 아나운서 /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방송인으로 CJB 청주방송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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