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을 묻다 (6) 서영옥 ㈜화인테크놀리지 회장

knnews 2025. 6. 2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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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점착테이프 생산 1인 회사로 출발
산업용 특수테이프 분야 최고 기업 거듭나
특허 10개 보유… 벤처 최초 금탑산업훈장
경영은 정직 바탕에 겸손 얹어 달리는 것
직원 진심으로 위할 때 완벽한 제품 탄생


고교 진학을 앞둔 소녀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남들처럼 여상에 가서 주산을 배워 회사에 취업하는 게 최고라는 말을…. 소녀가 지원한 곳은 ‘공고’였다. 그 ‘공고’는 5년제 ‘부산공업고등전문학교’라는 특별한 곳이었다. 그렇게 소녀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갔다.

몇 년 뒤 한 페인트 회사에 취업했다. 그곳에서 나와 작은 회사의 시험실장으로 있던 중 중소기업진흥공단의 프로그램으로 국제경영용역단(IESC)의 외국인 교수로부터 기술지도를 받았다. 지독한 화공약품 냄새를 맡아 가며 연구에 푹 빠졌고, 점착제가 테이프 성능을 좌우한다는 걸 체감했다. ‘그래, 내가 만들자.’ 회사를 나와 점착제 제조기 한 대로 1인 회사를 꾸렸다. 10년 뒤 산업용 기능성 특수테이프 회사를 창업했고, 이 분야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소녀는 어느덧 칠순이 됐다. 양산 어곡일반산업단지에 자리한 화인테크놀리지의 서영옥(70) 회장이다. 그의 삶과 경영 철학, 그리고 나눔 이야기를 들어봤다.
㈜화인테크놀리지 서영옥 대표가 지난 24일 양산 어곡일반산업단지에 자리한 회사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전강용 기자/

㈜화인테크놀리지 서영옥 대표가 지난 24일 양산 어곡일반산업단지에 자리한 회사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전강용 기자/

◇한눈팔지 않고 ‘정도 경영’ 실천

-회사 1층 안내판에 회장실 표기가 없어 당황했는데.

“사무실 한쪽 저곳이 제 자리예요. 회장실이 따로 없어도 불편한 거 없어요. 직원들이 불편해 하려나?(웃음) 겉치레가 싫어 그냥 이렇게 일해요.”

-화인테크놀리지 창업 과정과 그동안 걸어온 길은.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1987년 점착테이프를 생산하는 유니온화학㈜을 창업했어요. 페인트 회사 연구실장으로 5년여간 일하며 받았던 퇴직금과 주변에서 빌린 자금 등으로 점착제 제조기 한 대를 구입해 1인 회사를 차린 거죠. 1998년 9월에 두 번째 창업으로 ㈜화인테크놀리지를 설립했어요. 일반 점착테이프 분야를 응용한 특수테이프 분야의 연구 개발을 해 왔답니다. 국내 최초로 MLCC(Multy Layer Ceramic Capacity)용 발포테이프 국산화에 성공해 세계적인 품질과 기술력을 자부합니다. 브라운관용 보호테이프를 시작으로 산업용 기능성 테이프뿐 아니라 반도체와 전기전자용 특수테이프도 개발했고요. 현재 국내 공급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대만, 필리핀 등 해외에 수출하고 있어요.”

-100억원의 부채를 갚아 가며 회사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는데, 그 비결은.

“창업 당시 기술만큼은 자신 있었지만 부지 비용과 설비 투자 비용이 의외로 많이 들었어요. 부채를 갚기 위해 부지런하게 뛰었어요. ‘제가 물러나고 다른 오너를 들이더라도 회사만은 살리자’는 각오로 열심히 일했던 시기였죠. ‘나는 화인테크놀리지의 연구원이자 최전선에 선 영업사원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영업 활동에 발품을 팔았거든요. 그래도 원칙만큼은 철저히 지켰어요. ‘빚 장부’를 갖고 다니면서 대출 상환 계획을 잡았고, 사업이 잘되더라도 과도하게 사업을 벌이지 않아 위기를 극복했어요.”

-벤처 기업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는데.

“지난 2018년 벤처창업진흥 유공으로 벤처 기업으론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어요. 그동안 회사가 한눈팔지 않고 걸어온 과정과 ‘정도 경영’을 실천해 온 기업가 정신에 높은 점수를 준 것 같아요. 2016년부터 4년 연속 ‘청년친화강소기업’에 선정된 것에도 자부심을 느껴요. 일·생활균형우수, 고용안전우수에 이어 임금우수 부문까지 선정됐으니까요. 이와 함께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글로벌강소기업으로 지정돼 여러 혜택을 받았죠. 70명의 직원들이 힘을 합쳐 지난해 319억원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는 330억원을 목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원 복지가 남다르다고 소문이 나 있는데.

“직원들의 복지 향상에 신경 썼어요. 집밥 같은 한 끼를 제공한다는 마음으로 구내식당에서는 소시지 같은 인스턴트 반찬은 피하고, 채소 위주로 최상의 식재료를 써요. 식당 2층에는 헬스장과 샤워시설이 있고, 본관 3층 B&B(Book & Billiards) 카페에는 당구대도 갖췄어요. 또한 회사 내에 자연생태미술관인 인송갤러리와 다목적시설인 프론티아트홀을 만들어 직원들이 문화예술과 가까이할 수 있도록 했죠. 월급만 준다고 대표의 역할이 끝나는 게 아니에요. 직원들의 마음을 사야 합니다. 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최고예요. 내 직원을 진심으로 위할 때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요.”

-장학금 기탁과 기부 등 사회공헌활동도 꾸준히 이어 오고 있는데.

“모교인 부경대에 장학금 기탁을 해오고 있어요. 장학금 기탁은 수혜자가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입니다. 그 밖에 양산시 인재육성장학재단 장학금, 양산독립공원 조성 성금, 양산부산대병원 후원금, 창원대 발전기금 기탁 나눔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경남메세나협회 창립멤버로 메세나 활동을 통해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어요. 대학 시절 극예술연구회 동아리에 몸담아 연극 무대에도 서면서 문화예술과 인연을 맺었거든요. 그때 경험이 문화예술인들과 소통하며 공감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거예요.”

◇어려움 견뎌낼 면역력 갖춰라

-주경야독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공학박사 학위도 받았는데, 공부가 재미있는지?

“아이가 네 살 때 부산공업대(현 국립부경대)에 들어갔어요. 3학년 때 편입을 해서 주간으로 입학했지만 대학 측의 배려로 회사를 다니면서도 야간에 공부할 수 있었죠.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기 전까지 화공기사, 화약류 관리기사 등 기사자격증만 6개 딴 ‘독종’이었어요. 시대 변화에 부응한 기술력을 갖추려면 공부가 필요했어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던 중 IMF 외환위기가 닥쳐 궤도를 수정했고, 2001년 동아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현재 화인테크놀리지는 반도체 웨이퍼 가공용 점착시트 등 특수테이프 분야에서 10건의 특허를 갖고 있어요. ‘기술력이 중소기업의 살길’이라는 신념으로 직원들과 함께 애쓴 결과물이죠.”

-부경대학교 총동창회장을 지난해까지 두 번이나 역임했는데.

“전국 국립대학교 총동창회 중 제가 최초의 여성 총동창회장이라는 게 일단 자랑스럽죠. 무엇보다도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모교를 위해 베풀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두고 기꺼이 맡았어요. 대학 측에서 배려를 많이 해준 덕분에 무사히 졸업하고 회사를 창업할 수 있었으니, 오늘의 저를 있게 해준 ‘뒷배’가 부경대라고 할 수 있어요.”

-지역의 기업인뿐만 아니라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기업인들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견뎌낼 수 있는 면역력을 갖춰야 합니다. 취업이나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겐 ‘엄마 말을 듣지 마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도 좋아하게끔 해보라’고. 주위 조언보다 자기 의지가 중요하다는 뜻이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한 후 과감하게 도전했으면 합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거든요.”

◇경영은 힘겹지만 아름다운 여행

50여 년 전 엄마 말을 안 듣고 과감하게 ‘공고’ 진학이라는 도전의 길을 택한 사람, ‘서영옥’다운 말이다. 그는 ‘작은 마음으로 얘기하고 싶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경영은, 정직이라는 바탕에 겸손을 얹어서 열심히 달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힘겹지만 아름다운 여행이라고.”

☞ 서영옥 회장은?

▷1955년 양산 물금 출생 ▷부산공업고등전문학교·부경대 화학공학과 졸업 ▷동아대 공학박사 ▷현 ㈜화인테크놀리지 회장 ▷1000만불 수출탑 ▷경남메세나인상 ▷금탑산업훈장 ▷양산시민대상 ▷‘청년친화강소기업’ 선정 ▷중소벤처기업부 ‘존경받는 기업인’ 선정 ▷여성공학인대상 ▷경남 제15호 나눔명문기업 ▷아너 소사이티 가입 ▷부경대 총동창회장·경남벤처산업협회장·경남여성경영인협회장 역임

/심강보 프리랜서 작가/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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