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95세에 첫 샷 이글 70타. 세월 거스르는 권노갑 이사장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은 1930년 2월 18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걷기도 쉽지 않을 만 95세도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골프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저 골프장을 찾아 라운드를 도는 수준은 아닙니다. 며칠 전에는 생애 첫 샷 이글까지 기록했다고 합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자 동교동계의 좌장인 권 이사장은 24일 경기 군포시에 자리한 삼성그룹 계열의 명문 골프장 안양CC(파72) 15번 홀(파4)에서 초고반발 클럽으로 유명한 뱅골프의 7번 유틸리티 아이언으로 한 두 번째 샷이 컵에 빨려 들어가 단번에 2타를 줄였습니다. 권 이사장은 안양CC에서 이글을 기념하기 위해 발급한 인증서를 받아 들고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글에 사용한 공은 리얼라인 77번이었다고 합니다. 사용 클럽과 골프공에 모두 ‘7’자가 들어가 있는 걸 보면 ‘러키세븐’이라는 말이 떠오르게 합니다.

<사진> 이글 기념 인증서를 받고 흐뭇해하는 권노갑 이사장. 채널에이 캡처
30년 가까이 골프를 취재한 필자의 눈에는 샷 이글뿐 아니라 이날 권 이사장이 남긴 스코어 카드에도 놀라움 그 자체로 보였습니다. 전반 9홀에 버디 2개를 하며 2오버파 38타로 마친 뒤 후반에는 이글 1개, 버디 4개, 보기 4개로 4언더파 32타의 맹타를 휘둘렀습니다. 더욱이 12, 13, 14번 홀에서 3연속 버디에 이어 15번 홀에서 이글을 했습니다. 프로들도 하기 힘들 4개 홀에서 무려 5타나 줄인 겁니다. 최종 스코어는 2언더파 70타입니다.

<사진> 권 이사장이 첫 샷 이글을 기록한 안양CC 15번 홀(파4) 전경. 안양CC 캡처
권 이사장이 진기록을 세운 안양CC는 1968년 개장한 국내 최고 골프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정성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회장은 벚나무와 소나무 한 그루도 직접 골랐고 밤나무와 배나무 같은 과실수의 수량까지 꼼꼼히 챙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안양CC 출신인 김종안 전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사장은 “회장님이 경부고속도로 어느 휴게소의 곰국이 맛있다는 말씀을 하셔서 직접 견학간 뒤 최고의 국물을 내기 위해 정성을 다한 기억도 난다. 늘 공부하고 노력해야 살아 남았다”고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뛰어난 조경과 코스 관리로 정평이 난 안양CC는 골퍼라면 한번쯤 라운드하고 싶은 코스지만 철저한 연간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어 문턱이 높습니다.

<사진> 골프 애호가였던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함께 라운드하는 권노갑 이사장. 채널에이 캡처
60대 초반이던 1991년 뒤늦게 골프를 시작했다는 권 이사장은 채널에이와 인터뷰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다 보니까 골프를 못 치고 대통령이 정계 은퇴하고 영국 가셨을 때 시작했어요. 나이는요.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아니라 하고자 하는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하고. 몸 관리를 항상 (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골프 의학의 대가인 서울 부민병원 서경묵 스포츠재활센터장은 “근력, 지구력, 집중력이 다 갖추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권노갑 이사장이 오랫동안 당뇨를 관리하고 있는데 정말 대단하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뱅골프 이형규 대표는 “골프는 대표적인 멘탈스포츠인데 권 이사장은 그 연세에도 정신건강도 또렷한 것 같다”라고 놀라움을 표시했습니다.
권 이사장은 고령자가 사용하는 옐로우 티를 썼을 겁니다. 이글을 사냥한 15번 홀의 경우 가장 긴 골드 티는 352야드이고, 옐로우 티는 314야드, 가장 짧은 레드 티는 295야드로 돼 있습니다.
스코어카드를 곰곰이 보니 권 이사장을 포함한 4명의 플레이어 모두 1번 홀은 파로 적혀 있었으며, 2번 홀은 모두 보기였습니다. 주말골퍼에게 흔히 적용되는 첫 홀 ‘올 파’가 적용된 건 아니었는지 합리적 의심이 가능해 보이긴 합니다.
권 이사장은 90대 중반의 나이에 18홀 라운드를 돌며 이글 1개에 버디를 6개나 했습니다. 골퍼라면 누구나 자신의 나이와 같거나 적은 스코어를 적는 ‘에이지 슈터(Age Shooter)’를 꿈꿉니다. 권 이사장은 가볍게 에이지 슈터의 대기록을 남겼습니다.
에이지 슈터는 골프 실력만 갖추고는 불가능합니다. 건강이 뒷받침돼야 도전이라도 해볼 수 있습니다. 필자가 만났던 에이지 슈터들은 한결같이 철저한 자기 관리와 근력 유지를 강조했습니다.

<사진> 권노갑 이사장. 인터넷 자료
권 이사장 역시 젊었을 때부터 권투, 농구 등을 즐긴 ‘운동 마니아’로 알려져 있습니다. 매일 서울 시내 헬스장에 가서 1시간은 달리기·자전거 타기 등 유산소 운동, 나머지 1시간은 아령·역기 같은 근력운동을 반복한다고 합니다. 57세에 찾아온 당뇨도 운동으로 극복했습니다.
오래 다져진 체력 덕분에 지금도 종종 지인들과 필드에 나간다고 합니다.
이기광 국민대 체육대학 교수는 “50세 이상 성인은 해마다 1~2%의 근육량이 감소해 80세에는 총 근육량의 40~60%를 잃는다”라며 “주 2, 3회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면 근 감소 속도를 늦출 수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척추 전문 남기세병원 남기세 원장은 “골프 칠 때는 적어도 초반 3번 홀까지는 걸어 다녀야 몸도 잘 풀린다. 전철, 버스 타고 다니면서 하체를 단련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습니다. 권 이사장도 카트 대신 걷다 보면 한 라운드에 1만5000보를 찍는다고 합니다.
스웨덴 연구 결과를 보면 골프를 열심히 치면 기대수명을 5년 늘린다고 합니다. 다만 ‘걷기 라운드’가 전제라고 하네요.

<사진> 권노갑 이사장이 사용하는 뱅 하이브리드 아이언. 뱅골프 제공
신기술을 접목한 고성능 클럽도 골프장에서 나이의 벽을 허물고 있습니다. 권 이사장이 사용한 7번 유틸리티 아이언은 아이언과 하이브리드 클럽의 장점을 겸비한 클럽입니다. 이형규 뱅골프 대표는 “권 이사장이 사용한 클럽은 초고반발로 거리가 많이 난다. 하이브리드 설계로 체적이 커서 일반 아이언에 비해 관성모멘트(MOI)가 높아 방향성이 4.4배 좋다는 결과가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서경묵 센터장은 “무거운 아이언으로 무리한 스윙하다가 다치는 사례가 많다. 하이브리드 아이언은 가벼우면서도 관용성이 뛰어나고 백스핀도 잘 걸려 엘보 부상 염려가 적은 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운블로로 찍어 치는 아이언과 달리 하이브리드 클럽은 바닥 면인 솔을 넓게 만들어 뒤땅을 칠 확률이 낮아지므로 부상 예상에 도움이 됩니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최고령 에이지슈터는 1973년 만 103세 나이로 103타를 친 캐나다 출신 아서 톰프슨(1869~1975)입니다.
국내에서 90대에도 골프를 즐기는 명사로는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 회장(92)과 이길녀 가천대 총장(93) 등이 대표적입니다. 권 이사장을 포함해 윤 회장과 이 총장 모두 여전히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는 것도 건강 유지의 비결로 꼽힙니다. 권 이사장은 90대에 접어들어 영문학 박사 과정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권노갑 이사장은 골프와 정치의 유사점에 대해 “정치도 첫째 ‘마음’을 비워야 해요. 상대방을 배려해 주고 여유 있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고 골프도 '상대방한테 이기겠다'하면 안 돼요. 자기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연구를 꾸준히 해야 하고요. 정치도 마찬가지예요”라고 덕담을 전했습니다.
초고령 사회를 맞아 권 이사장의 한마디가 골프장 그린을 뛰어넘어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글= 김종석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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