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대한 그리움 흐르는… 울분·냉소 어우러진 전통춤곡[이 남자의 클래식]

2025. 6. 2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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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남자의 클래식 - 쇼팽, 마주르카 작품 33-3 D장조
16세기 농민들에 사랑받아
활기찬 템포에 유려한 선율
全생애에 걸쳐 59곡 만들어
러시아에 맞서는 모국 보며
파리 머물며 안타까움 담아

마주르카(Mazurka)는 활기로 가득 찬 빠른 3박자의 폴란드 민속 춤곡이다. 이는 세 개의 폴란드 전통 무곡이 혼합돼 탄생한 것으로 느리고 장엄한 느낌의 쿠자비악(Kujaviak), 보통 빠르기의 마주르(Mazur), 빠른 템포의 활기찬 오브렉(Obrek)이 그것이다. 16세기경부터 유행한 이 춤곡은 자유분방한 것이 특징으로 격식 찾기를 좋아하는 귀족보다는 주로 보통의 폴란드 농민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이렇다 할 안무 없이 그저 제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어대는 민중들의 소박한 춤곡으로 폴란드의 민중들은 오랜 세월 마주르카의 리듬에 맞춰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그네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해 왔다. 이런 보통 사람들을 위한 간단하고도 짧은 춤곡에 감각적이고 유려한 선율과 미묘한 화성 등을 덧입혀 보다 섬세하고 우아한 하나의 예술 장르로 확장시킨 이가 있으니 바로 프레데리크 쇼팽(Frederic Chopin, 1810∼1849)이다.

프레데리크 쇼팽은 1810년 3월 1일 현재의 폴란드인 바르샤바 공국 젤라조바 볼라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인 아버지 니콜라 쇼팽과 폴란드 귀족의 딸이었던 어머니 테클라 유스티나 크시자노프스카 사이에서 태어난 쇼팽은 일찍이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7세에 작곡을 시작했으며 특히 피아노에 비르투오소적인 재능을 보여 어릴 적부터 왕과 귀족들의 부름을 받아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 음악의 변방이라 여겼던 폴란드에서 신동이 등장하자 언론들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만 태어나는 줄 알았던 음악 천재가 드디어 우리 폴란드에서도 태어났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천재를 담아내기엔 폴란드란 그릇은 너무나도 작았다. 음악가로서 성공을 꿈꿨던 쇼팽은 스무 살이 되던 해 음악의 메카인 오스트리아 빈으로 연주 여행길에 올랐고 이후 독일을 거쳐 파리에 정주하게 된다. 파리에 도착한 쇼팽이 로스차일드 가문의 피아노 교사가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파리 사교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쇼팽에게 피아노를 교습받길 원했다. 파리의 명망 있는 백작부인, 남작부인, 공주들까지 모두 쇼팽의 제자들로 당시 사회적 인사 명부와 다를 바 없을 정도였다. 파리에서 쇼팽이 교류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상류층의 사람이다 보니 쇼팽도 상류층의 살롱에 자주 초대되었고, 그 덕분에 파리에서 쇼팽의 음악 활동은 귀족들의 살롱이 그 중심이었다. 쇼팽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연주는 금세 살롱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인기 스타로 더욱 명성을 얻게 된다. 당시 쇼팽의 연주를 본 멘델스존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 ‘현재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중 최고는 쇼팽’이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다.

거칠 것이 없었던 쇼팽 앞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그가 스무 살이던 1830년, 그해 11월 폴란드 수도에서 러시아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폴란드 군인과 민중들이 들고 일어선 바르샤바 봉기사건이 일어난다. 쇼팽은 당장이라도 귀국해 민중들과 함께 싸우길 원했지만 태생적으로 연약한 그를 친구와 가족들은 극구 만류했다. 쇼팽은 맞서 싸울 힘이 없다면 군악대에서 ‘드럼이라도 치겠다’고 말했지만 친구와 가족들은 음악가로서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며 그의 귀국을 말렸던 것이다. 치열한 전투 끝에 결국 러시아가 폴란드 군을 제압하고 1831년 9월,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11월 봉기는 실패로 끝나고야 말았다. 이때부터 쇼팽은 이방인의 조국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 본격적으로 마주르카를 작곡했고 죽기 직전까지 전 생애에 걸쳐 59곡의 마주르카를 작곡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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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마주르카 작품 33-3 D장조는 가장 널리 알려진 마주르카 중 하나로 1838년 출판되었다. 쇼팽 특유의 루바토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청년 쇼팽의 강직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쇼팽의 울분과 냉소가 동시에 녹아있는 작품으로 조국을 향한 그리움과 염원을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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