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우옌티탄이 대한민국 대통령실에 가기까지 [세상읽기]


임재성 |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 대리인
1968년 학살로부터 시작하면 약 60년, 2000년 한국 사회의 ‘운동’이 시작된 때로부터는 25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가해국 대통령실에 방문해 고통과 요구를 자신의 육성으로 직접 전달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피해자들은 수차례 한국을 방문해 ‘진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외쳤지만, 대통령에게 가닿지는 못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청와대 면담이 시도되었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문턱을 지난 23일 비로소 넘었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인 두 응우옌티탄(동명이인)은 지난 18일 방한해 23일까지 한국 사회 곳곳에서 사실 인정과 사과를 요구했다. 퐁니 학살(1968년 2월12일 퐁니 마을 민간인 70여명이 희생된 사건) 피해자인 응우옌티탄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 2심 판결 선고일인 지난 1월에 맞춰 피해자들의 방한이 준비되었지만, 계엄·내란과 대통령 선거 등으로 방한 시기가 6월로 연기되었다. 마침 새 정부 출범 직후였다. 피해자들, 그들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는 새 대통령에게 목소리를 전달해보자 의기를 투합했다. 만명이 넘는 한국 시민들도 같은 시기 이재명 대통령에게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규명하고, 사과를 포함해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는 조처를 하라는 청원에 참여해 큰 힘을 보탰다.

23일 오전 10시. 대통령실 관계자 2인과 두 학살 피해자, 면담을 주선한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변호사와 활동가들이 대통령실 회의 장소에 마주 앉았다. 퐁니 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은 “현재 대법원에서 계속 중인 국가배상 소송에서 상고를 취하해주시길 원합니다. 우리들은 나이가 많고 남은 시간이 적습니다. 한국 정부의 도움이 간절합니다. 무엇보다 대통령께서 우리를 한번 직접 만나주시길 바랍니다”라는 요구를 전달했다. 하미 학살(1968년 2월22일 하미 마을 민간인 130여명이 희생된 사건) 피해자 응우옌티탄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공식 기구를 설립해주시길 원합니다”라고 했다.
면담에 배석했던 필자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답변’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여러 조건을 고려했을 때 ‘잘 듣고 전하겠다’ 이상의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최선의 예의를 보여주었다.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피해자분들의 이야기에 인간적으로 마음으로 공감한다. 잘 정리해서 전달하겠다. 여러분들의 한이 해소될 방법이 있을지 찾아보겠다. 노력하겠다”고 했다. 놀랐고, 고마웠다.
두 응우옌티탄의 가슴에는 호아쓰 꽃을 상징하는 배지가 달려 있었다. “호아쓰꽃은 베트남에서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한국 시민들은 학살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이 꽃 모양의 배지를 만들어 달고 있어요. 제주4·3의 동백꽃 배지 같은 겁니다.” 활동가의 설명이 이어지자 대통령실 관계자는 자신도 달겠다고 했다. 두 응우옌티탄은 자신의 옷깃에 달린 배지를 떼서 달아주었다. 피해자들의 가슴에 달렸던 삶과 죽음의 꽃이 한국 대통령실 관계자들 가슴으로 전해졌다. 면담 직후 퐁니 응우옌티탄이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기쁘고 행복합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어서요.”
듣는다는 건 응답할 의무로 이어진다. 이재명 대통령께 간청을 드린다. 대한민국 법원이 5년에 걸친 심리 끝에 1·2심 모두 퐁니 학살을 사실로 인정했다. 피고 대한민국이 불복해 소송은 대법원까지 갔지만, 법률심이기에 사실관계 판단이 바뀔 여지는 극히 낮다. 베트남 외교부는 이 소송에 큰 관심을 표명해왔는데, 특히 한국 정부가 패소 판결에 불복할 때마다 강한 유감이라 지적했다. 주무 부처인 국방부에 지시해, 또다시 수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이 대법원 상고를 취하해달라.

이 대통령은 민주당 당대표 시절인 2023년 이 소송의 1심 판결을 “문명국가로서의 입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판결”이라 환영했고, “(윤석열) 정부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 전향적 태도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또한 대통령은 21대 국회에서 학살의 진실을 규명하는 정부 기구 설립을 위한 법안에 공동발의 의원으로 참여했다. 이제는 이재명 정부다. 상고 취하는 한국 행정부가 즉시 실행할 수 있으면서도 신중한 성찰적 태도를 담을 수 있는 전향적 조처다. 60년을 기다린 피해자에게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다를 것이라는 최선의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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