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범 우려 호소하자… 폰 건네받은 경찰 “관여할 부분 아냐”
삼산경찰서 찾아간 아버지와 8분28초 통화
되레 아버지와 이야기 해보라 권유
자택서 만났지만 ‘반성 기미’ 없어
공권력의 적극 개입 필요했던 시점
“집 비밀번호 뭐야, 내 집 아니냐.”

아내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이 풀린 가정폭력 가해자의 보복 범죄를 막지 못한 경찰의 부실 대응 정황들이 추가로 드러났다.
25일 경인일보는 60대 남성 A씨가 지난해 12월 아내 B씨를 흉기로 위협해 불구속 기소된 와중에 앙심을 품고 B씨를 살해하기 사흘 전인 지난 6월16일 오후 8시59분께 아들과 통화한 8분28초 분량의 녹취 파일을 단독 입수했다.
아들 C씨에게 전화를 건 A씨는 “집 비밀번호 뭐냐”고 물었고, C씨는 “왜, 엄마가 집에 있는데. 뭐 둘이 같이 있으면 내가 불안한데, 지금”이라고 답했다.
‘임시조치’(접근금지 명령 등)가 끝났으니 집에 가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C씨는 통화 중 15차례나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날은 A씨가 접근금지 기간 종료 후 처음으로 아내 B씨에게 접근하고, 가정폭력 사건으로 자신을 수사한 삼산경찰서를 찾아가 현관문 비밀번호가 바뀌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며 거세게 항의한 첫 날이었다.
■ “아버지가 집에 오면 일 터질지 몰라” 재범 우려에 경찰은 중재 의사 묻기만
통화 도중 A씨가 “지금 경찰서에 와서 네가 하는 말 경찰이 다 듣고 있다”고 하자, C씨는 경찰과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삼산서 관계자가 “아드님이 중간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중재할 생각이 있는 건가요?”라고 묻자, 그는 “중재하고 싶은데 아버지가 먼저 이 사달은 만들어놨고, 나도 불안하고 엄마도 불안해요”라고 했다.
C씨는 이어 “지금 무작정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려고 그래요. 근데 지금 들어와서 일이 어떻게 터질지 모르잖아요. 경찰서에서도, 저도요”라며 아버지의 재범을 우려했다.
그러나 삼산서 관계자는 “제가 강요할 수 있는 거는 아닌데 아드님이 그럴 생각이 있으면 아버지하고 잘 이야기를 나눠봐야지 않느냐”고 했고, C씨가 거듭 불안하다고 호소하자 “그 부분(중재)은 제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며 A씨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C씨는 다시 아버지 A씨에게 “왜 그 사달을 만들었냐. 칼을 왜 들었냐”며 지난해 12월17일 A씨가 흉기를 들고 어머니 B씨를 협박한 일을 언급했다. 그러자 A씨는 “그게 내 잘못이냐. (아내 B씨가) 밤 10시 넘어 시끄럽게 해 싫어서 했다. 왜 너네 엄마가 그 일을 조성했냐”며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A씨는 오후 9시30분께 재차 B씨가 있는 자택을 찾아갔다. 당일 집 앞에서 아버지와 마주쳤다는 C씨는 “‘아버지가 집에 들어와 우리 가족과 다시 살고 싶다면 지난해 12월 흉기 사건에 대해 평생 반성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며 “아버지는 그때도 반성의 기미 없이 ‘난 잘못한 게 없으니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만 주장했다”고 말했다.
■ 임시조치-피해자보호명령, 가·피해자 분리 등 보호 공백 사이 범행
끝내 A씨는 19일 오후 4시30분께 인천 부평구 부평동 자택 현관에서 흉기로 아내를 무참히 살해했다.
그는 21일에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으러 가며 “나는 잘했다고 여긴다”며 “접근 금지 끝났는데, 내 집인데, 내가 들어가야지, 내가 어디 가서 사느냐”고 취재진을 향해 따지듯 말했다.
숨진 B씨와 아들 C씨는 접근금지 명령이 해제된 A씨의 가정폭력 재범 등 보복을 우려하며 신고와 전화 상담 등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살해당하기 하루 전인 18일 B씨가 경찰서에 전화해 추가적인 보호 조치를 문의한 후에야 경찰서에 방문하면 ‘피해자보호명령’ 제도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겠다고 했다.
‘피해자보호명령’은 통상 법원이 심리 기일을 정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불러 조사한 뒤에야 명령을 내릴 수 있어 가·피해자를 분리하는 데에 최소 일주일이 걸린다. 이 때문에 즉각적으로 가해자의 접근을 막기 위해선 임시조치를 우선 시행하면서, 피해자보호명령을 법원에 신청한다. 이는 피해자 보호 공백이 발생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A씨의 접근금지 기간 종료 전 경찰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선아·송윤지 기자 su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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