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된장 점심에 220만원 적자 [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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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서부로 나와 오래된 동네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난다.
다섯개 단체가 함께 모여 활동하고 있는 '반빈곤 운동 공간 아랫마을'이다.
정부와 대기업은 아랫마을 활동가들의 싸움 대상이다.
맛깔나는 세상 꿈꾸는 이들이 아랫마을에 더 많은 후원을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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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서울역 서부로 나와 오래된 동네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난다. 다섯개 단체가 함께 모여 활동하고 있는 ‘반빈곤 운동 공간 아랫마을’이다.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이 한데 모여 빈곤 없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점심 즈음하여 아랫마을을 찾았다. 사무 공간치고는 이상하리만큼 크게 빠진 주방 공간에서 활동가 한명이 능숙하게 식사를 준비한다. 국물 우린 멸치를 남김없이 건져내더니 뼈를 발라 잘게 다진다. 불려둔 표고버섯도 잘게 썰어두고 갖은 채소들을 더했다. 우려 둔 멸치 육수에 손질한 재료를 넣고 된장을 잔뜩 푼다. 바글바글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두부 몇 모를 으깨 넣어 조려내듯 끓여낸다. 오늘의 메뉴는 강된장이다. 한소끔 끓여낸 강된장은 옆으로 빼내고 화구에는 찜기가 올랐다. 출근길에 현금만 받는 동네 야채 가게를 들렀단다. 양배추 찜을 할 생각이었는데, 호박잎이 좋아 그것도 한 뭉텅이 사 왔다. 빠르게 호박잎 쪄내고 그 자리에 다시 양배추. 같은 시간, 옆 화구에서는 중탕으로 쪄내는 부드러운 계란찜이 완성됐다. 그마저 모자랐는지 잠시 냉장고를 뒤적이더니 큼지막한 오이 세개를 꺼냈다. 상자를 뒤적이더니 상처 하나 없이 예쁘게 생긴 양파를 꺼낸다.
“예쁘지요? 농사지은 것 보내주신 거예요.”
그러고는 칼질 몇번에, 고춧가루 액젓, 유자청을 넣어 쓱쓱 무쳐낸다. 그렇게 한 상이 차려졌다. 뚝딱 차려진 호박잎 여름 밥상. 팔아도 되겠다.
매일같이 아랫마을에는 공동식사가 준비된다. 공간에서 운영되고 있는 각 단체에서 근무하는 활동가들과 홈리스 야학 학생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하루에 서른명 정도가 먹을 양의 식사가 매일같이 조리되고 있다. 그 일을 거르지 않고 오래 해왔다. 그러다 보니 요령도 생겼다. 홈리스들은 거리 생활에 이가 부실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돼 있다. 한번은 게장이 들어와서 기뻐했는데, 정작 대부분 먹질 못했다고 한다. 잘게 썬 강된장과 부드럽게 쪄낸 채소들, 계란찜은 그런 연유에서 고른 메뉴다. 반빈곤 운동의 거친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몸으로 부대끼며 억척스레 투쟁하는 활동가들이 주방에서는 어찌나 섬세한지. 한끼 천원, 그마저 부담스러우면 나중에 내시라고 한다. 서울역 근처 흔한 무상급식이 아니다. 활동가와 야학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 내고 책임지는 공동의 식탁이다. 그러니 식사 뒤 설거지도 각자가 해야 한다. 서울역 홈리스들에게는 “설거지하는 곳”으로 유명하단다. 이 도시에는 아랫마을 하나쯤 필요하다. 빈곤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지 않고, 구조적 모순에 당사자들과 함께 질문하는 곳. 느슨한 공동체를 이뤄 매일매일을 채워 가는 이 공간이 필요하다. 하루를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연민을 넘어 평등한 도시를 꿈꾸는 이들의 점심 밥상은 아랫마을의 꿈을 이미 닮아 있었다.

정부와 대기업은 아랫마을 활동가들의 싸움 대상이다. 그러니 그들의 후원도 받지 않는다. 매월 220만원의 적자. 가난한 단체에는 살벌한 숫자다. 그 숫자와 맞서기 위해 서울 을지로에서 후원 주점을 연단다. 점심 먹어 보니, 안주 맛도 알 법하다. 맛깔나는 세상 꿈꾸는 이들이 아랫마을에 더 많은 후원을 하면 좋겠다.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다. “국민은행 794001-04-083200 홈리스행동” 이번 주점 공식 후원계좌다. 마음들 보태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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