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와 ‘조광’ 창간호 [한국근대문학관 컬렉션·(6)]

박경호 2025. 6. 2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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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재단 공동기획> 읽는 시대에서 보는 시대로… 신문사 대중잡지 꽃피던 그때

신동아, 정치·경제·사회·연예 등 ‘망라주의’ 편집
조광, 압도적 분량과 매호 경품·할인권·부록 증정
두 매체 모두 2만부가량 발행… 가격은 1권당 30전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한 일제강점기 월간지 ‘신동아’ 창간호(왼쪽)와 ‘조광’ 창간호 표지. 2025.5.29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우리나라 출판의 역사에서 1930년대를 ‘신문사 잡지 시대’라 부른다. 말 그대로 신문사가 발행하는 잡지의 전성시대였다. 앞선 1920년대에도 ‘개벽’ ‘동광’ ‘삼천리’ ‘별건곤’ 등 잡지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주요 일간지들이 대규모 자본과 배급망, 기존 신문 매체의 영향력, 당대 최고의 필진 등을 앞세워 대량으로 발행한 잡지를 현재와 같은 ‘상업적 대중 잡지’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동아일보가 1931년 11월1일 창간한 ‘신동아’(新東亞)가 신문사 잡지 시대의 문을 열었다.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한 신동아 창간호는 가로 18.9㎝, 세로 26㎝ 크기에 113쪽 분량으로, 먼동이 트길 기다리는 듯 둔덕에 오른 수탉을 표현한 표지가 인상적이다. 잡지 가격은 1권당 30전이었다. 당시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는 창간사에서 “조선 민족은 바야흐로 대각성, 대단결, 대활동의 효두(曉頭·먼동이 트기 전 이른 새벽)에 섰다”며 “조선 민족 전도의 대경륜을 제시하는 전람회요, 토의장이요, 온양소”를 표방했다.

편집 책임자는 설의식, 주요섭, 최승만이었고 이은상, 최영수, 고형곤, 김자혜, 황신덕 등이 기자로 활동했다. ‘신동아’는 정치, 경제, 사회, 문예, 학술은 물론 과학, 운동, 연예, 취미분야를 아우르는 ‘망라주의’를 편집방향으로 설정했다. 창간호에서는 ‘독자 공동 제작 소설’이라는 독특한 문학 기획도 시도했다. 동아일보 사회부장이던 소설가 현진건이 ‘연애의 청산’이란 제목으로 소설의 운을 띄우고, 독자 공모로 소설의 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형식의 연재물이었다.

‘조광’ 창간호에 실린 무용가 최승희의 화보. 2025.5.29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한국근대문학관은 1935년 11월1일 조선일보가 창간한 잡지 ‘조광’(朝光) 창간호도 소장하고 있다. 조광은 신동아, ‘중앙’(1933년 창간)에 이은 신문사 잡지의 후발 주자였지만, 400쪽이 넘는 압도적 분량과 내용으로 경쟁지를 넘어서려 했다. 잡지 가격은 1권당 30전으로 경쟁지와 같았다. 조광 창간호는 가로 14.5㎝, 세로 21.5㎝ 크기에 높은 산봉우리 위를 비행하는 두루미 그림으로 표지를 장식했다. 2호부터는 미인화로 표지를 꾸몄다고 한다. 조광 창간호는 무용가 최승희의 화보부터 톨스토이 사후 25주년 기념 특집, 백석과 임화의 시, 한용운의 수필, 주요섭의 단편 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 등 당대 최고 예술인들의 작품이 초호화판으로 실렸다.

조광은 매호마다 각종 경품, 할인권, 부록 등을 증정하는 방식으로 독자를 모았다. 2만부가량 발행되면서 대중의 인기를 끈다. 신동아 창간호 또한 2만부 이상 발행됐다. 화려한 채색 화보와 만화 등은 ‘읽는 잡지’에서 ‘보는 잡지’로 대중의 매체 수용 방식을 바꾸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1933년 여성 잡지 ‘신가정’을 창간했다. 조선일보 역시 ‘여성’(1936년 창간), ‘소년’(1937년 창간), ‘유년’(1937년 창간) 등 자매지를 잇달아 내놓으며 잡지의 시대를 확장했다.

신동아는 1936년 8월 이른바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 사건’ 여파로 폐간됐다가 해방 이후인 1964년 복간됐다. 조광은 1944년 12월(통권 110호)까지 발행되면서 일제강점기 대표적 종합 월간지 지위를 굳혔으나, 점차 친일 색채를 띠었다는 비판도 받는다. 신동아 창간호와 조광 창간호는 모두 대량 출판된 잡지이지만, 현재 남아있는 책이 많지 않아 소장 가치가 크다.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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