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낙인 사이 [크리틱]

한겨레 2025. 6. 2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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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위한 출장으로 며칠간 교토에 머물다 돌아왔다.

6월 중순이지만 벌써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교토 서부의 하나조노(花園), 묘신지(妙心寺)의 거리와 골목을 걸었던 것은 연구 대상을 더 깊게,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이광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일본 유학 시절을 둘러싼 독서, 사귐, 감각, 풍속까지 탐구해야 한다고 봤던 김윤식이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쓰기 위해 1980년 1년간 일본 체류에 나선 건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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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 넷플릭스 제공

권성우 |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연구를 위한 출장으로 며칠간 교토에 머물다 돌아왔다. 6월 중순이지만 벌써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교토 서부의 하나조노(花園), 묘신지(妙心寺)의 거리와 골목을 걸었던 것은 연구 대상을 더 깊게,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근대문학 연구자 김윤식은 이광수를 연구하며, “일단 일본에 가서 이광수의 유학 당시의 시대상과 사상사 및 정신사를 심도 있게 추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춘원의 중학 시절에서도 어떤 느낌을 잡지 않으면 안 됨을 깨달았다”고 적은 바 있다. 이광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일본 유학 시절을 둘러싼 독서, 사귐, 감각, 풍속까지 탐구해야 한다고 봤던 김윤식이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쓰기 위해 1980년 1년간 일본 체류에 나선 건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그는 이광수의 일본 시절 산책길까지 직접 걸어 보며, 이광수가 당시 지녔을 법한 어떤 감각을 포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이해’를 위한 지난한 시도는 학문적 연구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범죄 등 인간에 대한 탐구에 필요한 핵심적인 절차이다. 넷플릭스 4부작 드라마 ‘소년의 시간’이 바로 마음으로 이해하는 과정의 중요함을 환기하는 문제작이다. 이 드라마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장면은 동급생 여자 친구 케이티를 살해한 13살 소년 제이미와 심리학자의 대화다. 그는 제이미에게 “난 네 자백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이해하려고 온 거야. … 난 널 이해하고 싶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심리학자에게 거리를 두던 제이미는 대화가 지속되면서 친구를 끔찍하게 살해하게 된 자신의 욕망과 이유를 발설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부모 세대들이 짐작하지 못했던 제이미를 둘러싼 동급생 집단의 고유한 감각과 성적 풍속이 드러난다. 이 드라마에서 심리학자의 역할은 살인자인 제이미에 대한 단죄나 용인이 아니라 속 깊은 이해다. 그런 정성이 없었다면, 제이미를 살인으로 이끈 내밀한 욕망을 둘러싼 문화적 감각은 묻히고 단지 소년 살인자에 대한 선정적인 관심과 폭력적 낙인만이 남았을 테다. 진정한 대화와 비판은 단죄와 용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소설가 박형서가 말했듯이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새벽의 나나’) 타자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이처럼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해를 위한 노력을 멈출 수는 없을 테다. 그런 시도가 사라질 때, 그야말로 각자도생과 방치가 초래할 새로운 야만의 시대가 열리게 되리라.

누군가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상대방의 욕망과 의지, 그 절박함의 정도를 면밀하게 살피는 작업과 통한다. 가령 밀란 쿤데라의 화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주인공 토마시는 수시로 베토벤의 악보에 쓰인 문구 “에스 무스 자인!”(Es muss sein·그래야만 한다)을 되뇐다. 어떤 운명적인 행동에 빠지는 이 ‘그럴 수밖에 없음’의 세계에 대한 이해는 곧 매력적이며 복합적인 캐릭터를 지닌 토마시를 이해하는 첩경이기도 하다.

최근 극우, 파시즘, 20대 남성에 대한 여러 담론과 기획이 분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꼭 필요한 건 최대한 내부의 시점에서 그 욕망의 무늬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런 작업은 물론 용인이나 단죄, 낙인, 방치와는 결을 달리해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깊은 탐색을 통과한 이후에 비로소 생산적인 비판과 상호 대화가 가능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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