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돌고래와 인간이 협상한다…‘사물의 의회’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한겨레 2025. 6. 2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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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쉽다.

환경운동가는 물론 행정가, 기업가도 인간이 '지구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직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의 다른 존재와 협상하고 양보하고 결단하는 제도 말이다.

인간의 의회가 아닌 '인간을 포함한 사물의 의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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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의회’ 누리집 갈무리

남종영 |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말은 쉽다. 환경운동가는 물론 행정가, 기업가도 인간이 ‘지구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우리가 ‘행성의 관리자’로서 의무를 다하자고 하고, 어떤 이는 우리가 지구를 대하는 겸허함을 회복하자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때로 인류로서 지구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는 말이 공허하게 들린다. 왜일까? 나는 ‘남종영’이라는 ‘개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지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살아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인류라는 말은 ‘개념’일 뿐이다. 일찍이 네덜란드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가 ‘개라는 개념은 짖지 않는다’라고 한 것처럼, 인류 또한 개념이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인류라는 정체성을 제대로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을 맘대로 다뤄도 된다고 생각하고, 급기야 절체절명의 기후위기에 빠진 건 아닐까?

그런데, 개념이라고 해서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국민’은 개념인데, 우리는 ‘국민’을 경험한다. 특히, 이번 불법 계엄령 사태 때 쫓겨난 대통령을 뒤로하고 기표소에서 새 지도자에 도장을 찍을 때 나는 ‘국민’임을 경험했다. 그렇다. 정치 제도는 말뿐인 정체성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기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선한 행성의 관리자인 ‘인류’로서 활동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오직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의 다른 존재와 협상하고 양보하고 결단하는 제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가 제안한 ‘사물의 의회’야말로 인류를 경험하는 기발한 방법이다. 그렇다. 인간의 의회가 아닌 ‘인간을 포함한 사물의 의회’다.

사물의 의회에는 동물, 식물, 생태계 심지어 기술도 참여한다. 거기서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처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잠재적인 영향력에 관해 환기하고, 미래의 이해를 주장할 수도 있다.

이 의회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라는 근대의 이분법적 세계관이 똬리 틀 틈이 없다. 대신 우리가 서로 연결되었다는 믿음, 다수의 네트워크적 관점, 상호 존중의 태도로 다른 존재와 사건의 해결책을 바라보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동화 같은 상상력이 세상을 바꾼다. 어렵지 않다. 비인간 존재를 대리하는 사람이 대변인으로 의회에 참석하면 된다. 라투르는 과학자, 환경운동가 그리고 관심 있는 시민이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했다. 대표적으로는 과학자들을 통해 바다의 목소리를 알리고 법인격 인정을 목표로 삼는 네덜란드의 북해 대사관 프로젝트가 있다.

국내에서도 사물의 의회가 열린다. 기업가, 노동자, 농민, 미래세대, 사회적 약자 등 인간 5개 그룹 그리고 대기, 산림, 해양, 동물, 기술 등 비인간 5개 그룹 등을 합쳐 대변인 100명을 모집하고 있다. 오는 11월 1~2일 이틀 동안 모여 기후위기 관련 정책과 법률을 협의할 예정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그동안 너무 인간 중심, 가진 자 중심적이었다. 국내에서 지난 6년 동안 평균 100만마리의 가축이 불볕더위로 죽었다. 해상 풍력발전소가 대규모 설치되면 바람길을 이용하는 바닷새가 터전을 잃을 게 뻔하다. 비인간 존재도 기후위기의 피해자이자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다.

당장은 실험적 프로젝트이지만, 제도화되지 못할 것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각 정부 부처에 동식물과 생태계를 이해하는 대변인을 둬서, 그들의 관점에서 정책을 따져 볼 수 있다. 국회를 둘로 나누어 인간 의회는 하원으로 비인간 의회는 상원으로 두고, 비인간 입장에서 제·개정된 법률을 검토할 수 있다.

이를테면, 산과 바다에 풍력발전소를 지어야 하는데, 산양과 돌고래의 이해와 첨예하게 부딪친다. 인간과 비인간의 협상이 시작된다. 그때 난 인간을 대표해 협상 카드를 이렇게 내미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사는 도시의 주차장이나 건물 지붕에 태양광 발전소를 지금보다 100배 더 지을게. 우리로서 최선을 다한 것이니, 너희도 다른 방법을 찾아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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