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빈집 / 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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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 시는 '인생'이란 무대 위에서 펼친 일인극처럼 보인다.
어쩌면 노년이란 빈집은, 이 세상 한 번도 발표되지 않은 '미완의 시'인지도 모른다.
시 빈집의 압권은 "아, 혼자"라는 시구의 호명(呼名)이다.
박주영의 빈집은 현대사회의 독거와 죽음, 소외와 늙음의 문제점을 직시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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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 박주영
저 혼자 저무네/ 저 혼자 동트네// 혼자 밥 먹네// 혼자 연속극 보네// 혼자/웃네/우네// 내 속의 빈집/ 빈 벽// 혼자 묻네// 대답하네// 아, 혼자…// 저 혼자 동트네/ 저 혼자 저무네
『꿈꾸는 적막』(2024, 문학세계사)
마치, 이 시는 '인생'이란 무대 위에서 펼친 일인극처럼 보인다. 곁에 사람을 두고도 홀로 말하는 방백(傍白, aside)은 절묘하다. 진실한 고백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그녀의 심장은 너무 절박해 아프다. 노경(老境)은 하늘이 내린 허무의 미학이다. 저무는 노을을 밟고 그녀의 행간을 서성이면, 괜스레 눈가에 눈물이 괸다. 새벽녘 컴컴한 거실에 "혼자"깨어 "동"틀 때까지 창을 바라보는 그녀가 보인다. 돌아가는 것은 모두 단순하고 외롭다. 박주영(1951~, 대구 출생)의 「빈집」은 적막하다. 시의 깊이는 삶의 그늘과 일치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심원하고 비극적인 시가 다 그렇듯, 그녀의 빈집은 쓸쓸하다. 독거(獨居)는 외로움의 절벽을 기어오르는 실존이다. 중얼거림의 방식은 시를 호리는 묘처이다. "빈 벽"은 인간의 불안과 소외된 자아가 만나는 경계이다. 벽은 단절의 은유이자 현실의 모호성이다. 불안하다는 것은, 안과 밖의 세계에 귀를 열어두고 산다는 희망의 신호다. 하여, 그녀는 우리에게 역설로 묻는다. '당신의 벽 안쪽은 안전한가, 아님, 무너져 내리고 있는가?' 혼자 먹는 "밥"은 희극이기도 하고 비극이기도 하다. 인간은 생사의 무대 위에서 세계를 향해 연극을 하다 사라지는 배우다. "혼자/웃"고, 혼자 "울"다 떠나는 피에로 같은 광대이다. 병든 몸과 백발 역시 연극의 한 과정이며, 죽음의 리얼리티(reality)를 끝으로 막이 내린다. 어쩌면 노년이란 빈집은, 이 세상 한 번도 발표되지 않은 '미완의 시'인지도 모른다. 시는 젊은 날의 것보다 쇠잔한 노년의 시가 더 뼛속까지 파고든다. 죽음을 기다리는 적요는 누구에게나 으슬으슬 추운 법이다. 시 「빈집」의 압권은 "아, 혼자…"라는 시구의 호명(呼名)이다. 말 줄임표는 인간 백 년을 일장춘몽에 비유하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허공에 뜬 해도 달도 모두 "저 혼자 동트고" "저 혼자"저문다. 시작법에 있어 "혼자 묻"고 혼자 답하는 문답법은 고수의 방식이다. 무의식 속에 숨겨진 주체와 객체의 '목소리'를 번갈아 밖으로 불러내는 것은, 신탁(神託)만이 가능하다. 박주영의 「빈집」은 현대사회의 독거와 죽음, 소외와 늙음의 문제점을 직시한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이승에서 저승 사이 다섯 개의 강이 나온다. '비통의 강', '통곡의 강', '불의 강', '증오의 강' 마지막엔 '망각의 강'이다. 누구에게나 어느 날 문득, 이 강들을 차례로 건너야 할 때가 온다.
김동원(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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