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대학생, 밤엔 야학교사로… 검정고시 돕던 시절 그리워[보고싶습니다]
1984년 유난히 무더웠던 그해 여름 나는 낮에는 대학생으로 밤에는 부산 성화 야학 교장으로 바쁘게 생활하고 있었다. 성화 야학은 처음엔 부산 사직동의 조그만 무용학원을 빌려 배움을 나누는 데 뜻을 함께하는 대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후 1984년부터는 부산의 양정동 사무소가 새 건물을 지어 이사 가고 구 건물이 방치되어 있었는데, 그곳을 야학 교실로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 야학은 노동, 생활, 검정고시 야학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성화 야학은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야학이었다. 대학생들과 같은 또래의 배움의 기회를 놓친 학생들에게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도록 대학생들이 학교 체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교가도 있었고 봄가을에는 소풍도 가고 부산지역 야학 연합 모임의 야학 체육대회도 있었다. 수업 내용은 검정고시 과목 외에도 노동자들인 야학 학생들이 각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노동법 교육도 있었다.
하지만 양정동 사무소 동장은 이를 문제 삼아 검정고시를 한 달 앞둔 시점에 갑자기 건물 사용을 불허하겠다고 해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정의감에 불타는 우리는 동장과 감정싸움을 심하게 했는데, 우리들의 안타까운 소식은 TV와 각 언론에도 보도돼, 방송을 본 독지가의 도움으로 부산 남천동의 어느 서예 교실을 빌려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 비용이 없었던 우리는 수업에 필요한 대충의 필요한 물품들은 버스를 통해 나르고, 버스를 이용할 수 없는 큰 칠판은 앞뒤로 서서 손으로 직접 들고 양정동에서 남천동으로 걸어서 옮겼다. 양정동에서 남천동까지 거리는 10㎞ 정도 되는데, 그렇게 이사를 했다.
그런데 그날 밤 야학 교실로 사용했던 양정동 사무소에서 불이 났다. 벽에는 정부를 비판하는 이른바 ‘불온 낙서’가 발견되었다. 나는 다음 날 부산진 경찰서 대공 수사과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다. 교장인 나뿐 아니라 다른 대학생 선생님들도 차례로 조사를 받게 되며 일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학생들의 직장으로 형사들이 방문해 조사하는 바람에, 겁을 먹은 사업주들은 우리 학생들을 직장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 당연하게 학생들이 하나둘씩 직장을 잃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내가 다니던 대학의 학생과에서도 호출이 왔다.
당시 흥사단 아카데미 서클장과 함께 야학 교장을 맡고 있었던 나는 이번 일로 학교에서도 감시 대상이 되어 있었다. 학생과 주임이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일주일 동안 다녀올 때가 있으니 간단한 개인용품만 챙겨 만나자고 했다. 그날 나는 새마을중앙운동본부에 입소하게 되었다.
매일 강도 높은 정신 교육이 계속되었고, 천신만고 끝에 새마을중앙운동본부를 퇴소하고 학교로 돌아온 나는 본의 아니게 휴학을 권유받아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군대에서 들은 마지막 소식은 성화 야학 역시 이 일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야학에서 가르치는 데 흥미를 느낀 나는 대학 졸업 후 교육 회사에 입사했고 주재원으로 파견되어 미국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야학에서 가르친 경험이 지금 내가 미국에서 교육 사업을 하는 계기가 되어준 것 같다. 현재 전 세계 30개국 아이들에게 코딩 교육을 하는 글로벌 교육 업체 RoboThink(MyRoboThink.com) 의 CEO로 일하고 있다.
젊은 시절, 내가 대학생인지 야학 선생님인지 헷갈릴 정도로 열심히 하며 나의 청춘을 보낸 성화 야학. 아직도 동사무소에 누가 그날 밤 불을 질렀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낮에는 학생으로 밤에는 선생님으로 열심히 활동했던 그때가 그립다. 부산 성화 야학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정말 보고 싶다. 지금 다들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박준희 (RoboThink LL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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