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째 반찬배달 봉사… “나눔은 돌고 돌아 누군가의 삶 바꾸죠”[나눔 실천하는 초록빛 능력자들]
제주 독거노인 돕는 택시기사 송수빈씨
어린시절 정부 지원으로 생계
받은 것 꼭 돌려주겠다고 다짐
개인택시 갖자마자 본격 시작
“배달받던 분 별세때 마음 아파
중요한 것은 사람 사이의 온기”

제주 골목골목을 누비는 수많은 택시 중 유달리 특별한 한 대가 있다. 손님이 타지 않은 자리, 21년째 따끈한 반찬통과 안부 인사를 싣고 달리는 송수빈(57) 씨의 개인택시다. 그의 택시가 멈추는 곳은 독거노인들의 집 앞이다. 홀로 살며 식사를 제대로 챙기기 어려운 이들에게 따뜻한 한 끼와 정담을 나른다. 그가 봉사할 때 중시하는 대목은 이랬다. “지금까지 수많은 봉사시간이 기록됐는데, 그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쌓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입니다.”
송 씨는 2005년부터 초록우산 제주종합사회복지관에서 반찬배달 자원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전부터 나눔에 대한 열망은 있었다. 어린 시절,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에서 제공하는 쌀과 생필품, 지원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기억 때문이다. 송 씨는 “어린 나이 느끼는 ‘부족함’은 단순히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외로움이기도 했다”며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경험은 제게 ‘세상은 그렇게 차갑기만 한 곳은 아니다’라는 위안을 줬고, 그때부터 ‘언젠가는 나도 받은 것을 돌려주자’는 생각을 마음속에 새겼다”고 떠올렸다.
개인택시를 갖게 된 해, 그의 나눔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초록우산 제주종합사회복지관에서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반찬배달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택시가 그의 밥벌이 수단이자 세상에 돌려주는 ‘나눔의 도구’가 된 셈이다. 송 씨는 “택시 일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각기 다른 삶의 얘기를 들으며 사람 간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됐다”며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 제 차를 활용해 도움을 줄 수 있단 점이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숱한 제주의 바람과 볕, 눈발을 헤친 지 벌써 스무 해가 넘었다. 낯선 골목을 오가는 일이 힘들만도 하지만 송 씨는 “따뜻한 마음을 나눠 좋다”고 했다. ‘요즘 날씨가 덥다’ ‘고맙다’는 인사를 주고받으면 서로의 삶에 스며드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단순히 음식만 전달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어르신들과 정이 들었다”며 “종종 어르신들의 사정으로 인해 못 봬 아쉬울 때도 있지만, 밖에 나가 긍정적인 활동을 하고 계실 거라 생각하면 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도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복지관에서 전해오는 ‘그 집은 더 이상 배달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통지다. 사실상 부고다. 송 씨는 “오랜 시간 반찬을 전달했던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며 “매번 문을 열어주시며 ‘고마워요 선생님’ 하던 인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단 사실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그냥 반찬을 들고 방문한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을 지켜주는 작은 기둥이었음을 느끼게 된다”고 덧붙였다.

여유가 될 때면 따로 기부 활동도 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적은 금액이라도 꾸준히 이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나눔은 ‘마음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라고도 했다. 송 씨는 “시작이 어려워 그렇지 시간, 물질, 재능 중 어느 하나라도 가능하면 나눔의 문이 열린다”며 “나눔은 돌고 돌아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결국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고 강조했다.
송 씨는 나눔의 결실이 최종적으로는 정서적·환경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닿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예전보다 경제적 지원이 늘어난 시대지만, 마음이 허전한 아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단 느낌을 받는다”며 “특히 가정의 해체, 방임 속 자라난 아이들은 어른과의 관계 속에서 따뜻함을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눔을 통해 ‘너는 소중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줄 수 있다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 아닐까요. 모두가 연결돼 있단 것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어른 한 사람 한 사람이 따뜻한 울타리가 돼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화일보 - 초록우산 공동기획
김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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