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올림픽 [뉴스룸에서]

김기중 2025. 6. 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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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세계에서 도핑(Doping·경기력 향상을 위한 금지 약물 사용)의 유혹은 강렬하다.

그 유혹이 얼마나 강렬하냐 하면, 2007년 미국의 한 스포츠 잡지가 미국 국가대표 육상선수를 대상으로 '이 약을 복용하면 확실히 금메달을 딸 수 있다. 대신 부작용으로 7년 뒤 사망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복용할 것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80%가량의 선수들이 복용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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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허용 '강화 게임' 내년 개최
로마 검투사 대결과 다를 바 없어
순수한 육체와 정신 경연 돼야
선수들이 금지 약물을 먹고 뛰어도 되는 대회인 '강화 게임' 홍보를 위해 비공식 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그리스 수영선수 크리스티안 그콜로메예프. AP 연합뉴스

스포츠 세계에서 도핑(Doping·경기력 향상을 위한 금지 약물 사용)의 유혹은 강렬하다. 그 유혹이 얼마나 강렬하냐 하면, 2007년 미국의 한 스포츠 잡지가 미국 국가대표 육상선수를 대상으로 ‘이 약을 복용하면 확실히 금메달을 딸 수 있다. 대신 부작용으로 7년 뒤 사망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복용할 것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80%가량의 선수들이 복용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목숨을 지불할 수 있을 만큼 약물의 유혹이 크다는 얘기다.

도핑 역사에서 동독을 빼놓을 수 없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1988년 서울 올림픽까지 동독이 딴 메달 수는 519개로, 세계 3위의 스포츠 강국이었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소련의 10배, 미국의 13배나 된다. 동독은 특히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여자 수영에 걸린 13개의 금메달 중 11개를 쓸어갔다. 종합순위에서도 금메달 40개로 34개의 미국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그 이면에는 국가 차원의 도핑이 있었다. 스포츠를 통한 체제 우월성의 과시가 그 목적이었던 동독은 무려 7,000여 명의 선수들에게 약물을 투여했다. 그 후유증은 끔찍했다. 호르몬 분비 교란으로 선수들은 뇌경색, 심근경색, 불임, 기억상실, 고혈압, 당뇨 등 온갖 질병에 시달렸다. 사망한 선수도 속출했다. 스포츠에서 약물을 금지하는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이런 치명적 후유증 때문이다.

내년 미국에서 이른바 ‘도핑 올림픽’이 열린다. 선수들이 금지 약물을 먹고 뛰어도 되는 대회로 정식 명칭은 ‘강화 게임(Enhanced game)’이다. 종목은 수영과 육상, 역도 3가지다. 참가 선수들은 기존 모든 스포츠 경기에서 금지됐던 약물인 성장호르몬, 스테로이드제 등을 복용하고 나설 수 있다. 다만 코카인 등 마약류는 금지된다. 종목당 상금은 최대 50만 달러에 달한다. 육상 100m와 수영 자유형 50m는 세계기록을 뛰어넘으면 100만 달러(약 13억8,000만원) 보너스도 준다. 대회 설립자는 에런 디수자라는 호주 기업가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들 트럼프 주니어와 전자 결제 기업 페이팔 공동 창업자이자 거물 투자자인 피터 틸 등 여러 기업가들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초기 자금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대회를 개최하려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공정성’ 때문이다. 적발만 되지 않았을 뿐 이미 약물 복용이 스포츠계에 만연해 있는 만큼 모든 선수들이 공정하게 기록을 경쟁할 수 있도록 약물 복용을 허용하겠다는 논리다.

하지만 스포츠는 타고난 몸과 정신력으로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여기에 약물이 개입되면 스포츠 정신은 근본부터 무너진다. 약물의 도움으로 이룬 성적은 인간의 성적이 아니라 약물의 성적일 뿐이다.

윤리적인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과거 동독 사례를 보더라도 약물 복용의 부작용은 심각하다. 그럼에도 ‘도핑 올림픽’ 출전 선수들은 목숨을 담보로 거액의 우승 상금과 보너스를 좇을 것이 분명하다. 선수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고 기록 향상만이 대회의 지향점이라면 고대 로마 검투사들의 대결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약물로 강화된 인간의 한계가 어디인지 궁금해하는 일부 자본가들의 유희성 대회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스포츠는 반드시 약물에 오염되지 않은, 인간의 순수한 육체와 정신의 경연이 돼야 한다. 그것이 스포츠 정신이다.

김기중 스포츠부장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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