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박완서 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6월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공로를 기리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자유가 어떤 값진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를 되새기게 되는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6·25 전쟁이 발발한 달이기도 한 6월에는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 짓는 성찰이 필요해지는데요. 이런 의미에서 오늘은 한국 현대사의 고통과 상처,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한 작품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박완서 작가의 작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입니다.
박완서 작가는 40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문단에 데뷔했지만, 이후 40여 년간 80편 이상의 단편과 15편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동화, 산문집, 콩트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습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는데요. 그중에서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박완서 작가의 대표작으로, 다음 이야기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의 기반이 되는 서막이기도 합니다.

책은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성장소설인데요.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과 1·4후퇴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한 여성의 성장기를 담담하면서도 생생하게 그려내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작가는 어린 시절 경기도 개풍의 박적골 마을에서 자연과 함께 순수한 시절을 보내다 자식은 어떻게 하든지 서울에서 길러야겠다는 엄마의 의지로, 일곱 살 무렵 상경해 현저동에 정착하게 됩니다.
좁은 골목길과 촘촘히 들어선 초가집들이 빼곡히 묘사된 현저동은 싱그러운 자연의 모습인 박적골과 대비돼 등장합니다. 공동 화장실을 써야 했던 시절, 안집 식구들이 모두 다녀간 뒤에야 겨우 눈치를 보며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던 작가의 경험은, 궁핍했던 작가의 서울살이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작가는 서울에 정착하던 초기에는 시골의 삶을 그리워합니다. 특히 제목으로도 등장하는 '싱아'는 작가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식물로, 고향 뒷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싱아를 도시에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음에 깊은 상실감과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문장에 이끌려, 내가 마치 그 시절의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조선말은 한마디도 못 쓰게 하고 눈에 보이는 사물과 행동을 일본 말로 반복해서 주입시킨 그 시절. 작가는 늘 가장자리에 처져 홀로 친구 없이 그 시절을 꿋꿋이 보냅니다.
방학 때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작가는 답답한 골목에서 공기나 고무줄놀이를 하는 토박이 서울 아이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풀과 두엄 냄새가 어울린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실 생각에 흥분하기도 하는데요.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서울 아이들이 알기나 할까, 쫙 깔린 달개비꽃의 남색이 얼마나 영롱하다는걸. 그리고 달개비 이파리엔 얼마나 고운 소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달개비 깔린 푸른 길의 이슬을 맨발로 밟을 때처럼 순수한 희열을 느낀 작가. 그건 서울 아이에 대한 최초의 우월감이었고, 그러한 감정은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책의 배경이 일제강점기 시대이다 보니 책에는 시대상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게다가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알 수 없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 이 책만이 가진 강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특히 저는 이 책을 통해 창씨개명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됐습니다. 숙부를 비롯한 어른들은 사회적 안정과 편의를 이유로 창씨개명을 지지했으나, 호주인 작가의 오빠는 집안의 존엄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강하게 반대하며 가족 내 갈등이 벌어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 또한 일본 이름이 더 세련됐다는 생각으로 은근히 창씨개명을 원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모두가 반일감정으로 창씨개명을 억지로 당했을 것이라 여겼기에, 이러한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6·25전쟁은 제가 생각한 모습과는 정말 달랐습니다. 전쟁이라고 하면 피난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전쟁터가 돼버린 아무도 없는 적막한 서울 땅에 숨죽여 사는 것 역시 또 다른 형태의 피난이며, 공포와 고립 속에 버텨야 한 치열한 생존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교과서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배운 일제강점기, 6·25전쟁이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비극적인 현실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나는 한 시대의 증언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그 삶은 곧 역사가 되기도 합니다. 이 책은 박완서 개인의 성장 이야기를 넘어 한국 현대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와 자신 간의 애증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을 다루면서도 그 속에 애정과 존경을 놓지 않는 박완서 작가의 문장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전해주기도 하는데요. 희망과 좌절, 사랑과 상실의 이야기가 가득한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땅의 자유가 많은 분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음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유수연 시민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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