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서랍 속 유골함들…빛바랜 전몰 장병 희생
일부 '육군하사'·'군번' 기록
6·25 휴전 후 안치 기사 게재
“관계기관 문의엔 책임 전가만
호국영령 맞다면 꼭 예우해야”

"너무 오래돼서 꺼낼 수도 없어요. 유골함을 꺼내면 가루가 계속 떨어지거든요. 저 서랍 안쪽까지 다 유골함이에요. 10년 전쯤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에서 조사를 나왔었는데, 연락준다 하고 돌아간 후 감감무소식이에요."
24일 인천 중구 신흥동 해광사.

한눈에 봐도 수십년 보관이 됐던 듯 유골함에는 먼지가 내려앉았고, 유골함을 꺼낼 때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루들이 떨어졌다.
유골함을 감싼 종이 포장지는 낡을 대로 낡아, 손을 대면 부서졌다. 그나마 십수년 전 사찰 측에서 새로 싼 천 보자기들만 제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유골함 중 몇몇에는 '육군하사', '군번' 등 군인 신분이었음을 알아볼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다만 오랜 세월 탓에 바래진 군번은 육안으로 정확하게 식별하기 어려웠다.
이곳에 있는 유골함은 총 65개. 이 중 11개가 군인, 54개가 민간인의 유해로 추정된다. 해광사 측은 이 유골들이 6·25 희생자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 1953년 12월1일자 경향신문에 '[인천] 멸공전에서 애석하게도 호국의 신으로 화한 경기지구 출신 조일윤 대위 외 526명이 해광사에 안치됐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사진출처= 온라인포털 사이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6/24/551716-rDsE8w9/20250624204508694wvpr.png)
실제 1953년 12월1일자 경향신문에는 '(인천)멸공전에서 애석하게도 호국의 신으로 화한 경기지구 출신 조일윤 대위 외 526명이 해광사에 안치됐다'는 기사가 게재됐다.
미추홀구 역사를 담은 온라인 백과사전 '디지털미추홀구문화대전'에도 '1954년 10월30일, 인천 중구 해광사에 안치돼 있던 김수언(金秀彦) 대위 외 6·25 전쟁 당시 전사한 인천 출신 전몰장병 261주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인천 고등학교 학생들이 전몰장병 261주의 영령을 각각 가슴에 안고 해광사를 출발해 미추홀구 도화동까지 행진한 후 도화동 뒷산에 안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찰에서도 유골함들을 임의로 처리하지 못하고, 매년 현충일이면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해광사 관계자는 "과거 이곳에 6·25 희생자들이 안치됐던 사실이 있기 때문에 유골을 함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며 "전에 계셨던 노스님께서 수십년 전 사찰에 있던 유골함들을 이전했다고 말씀하신 적 있다. 이때 미처 옮겨지지 못한 유골함들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6·25 전사자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관계기관에 여러 차례 문의했지만, 다들 다른 기관으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며 "호국영령이 맞다면 그에 맞는 예우를 꼭 해드려야 하지 않겠느냐. 언제까지 이 서랍 안에 보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전민영 기자 jmy@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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