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고려문화 대표지인데… 전문박물관 ‘0’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1)]
우리나라 대표명칭 KOREA 인식
몽골 침략시기 도읍지 ‘강도’ 불려
당시 문화 우수성 노래 ‘삼도부’

우리나라 여권 겉면에 새겨진 ‘대한민국’의 영문 표기는 ‘REPUBLIC OF KOREA’이다. 그대로 풀면 ‘고려공화국’.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대한민국과 고려공화국은 같은 의미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헌법을 처음 만든 1948년, 헌법기초위원회는 국호를 놓고 표결까지 했다. 대한민국 17표, 고려공화국 7표, 조선공화국 2표, 한국 1표가 나왔다. 이렇게 대한민국이 우리 국호로 결정됐다.
정부 수립 당시 국호를 고려공화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으로 결정했으면서도 영문 표기에 그 어색함을 무릅쓰고 ‘고려’를 넣은 것은 ‘KOREA’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칭으로 오래전부터 인식돼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고려’를 밖으로는 얼굴처럼 내세우면서 정작 나라 안에서는 제대로 대접하지 않고 있다. 전국에 그 흔하디 흔한 국립박물관 중 ‘고려’를 테마로 잡은 전문 박물관 한 곳이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속 박물관이 전국에 13곳이나 된다. 여기에 1곳이 내년에 추가로 개관한다. 이들 14곳은 대개가 신라, 가야, 백제 등 우리 옛 역사 속 국가와 관련돼 있다. 대한민국의 얼굴이라는 고려만 빠져 있는 상황이다.
남한에서 고려 문화를 대표할 곳은 인천 강화(江華)다. 강화는 몽골 침략 시기 고려의 도읍지여서 ‘강도(江都)’로 불린 곳이다. 당시에 이미 강화의 문화적 우수성을 노래한 문학작품도 탄생했다. ‘보한집’으로 유명한 최자(1188~1260)의 ‘삼도부(三都賦)’.
‘삼도부’는 옛 도읍지 평양(西都)과 개성(北京), 그리고 강화(江都)를 대표하는 3명이 나서 각각 자기네 도시를 자랑하는 대화체로 꾸며졌다. 그 대표 주자는 평양의 ‘변생’(말 잘하는 청년), 개성의 ‘담수’(이야기 잘하는 노인), 강화의 ‘정의대부’(논리가 정연한 대부)다. 이들 3명이 강화에 모였다. ‘삼도부’에서는 평양과 개성이 제아무리 자랑을 늘어놓더라도 강화에는 비견할 수 없다.
정의대부가 말하는 강화는 물산이 풍성하고, 해상 물류가 활발한 경제 상황뿐만 아니라 문화가 생동하는 곳이다. 그의 강화 예찬에서는 온갖 쇠 다루는 기술과 도자기 굽는 수준, 대장경 판각 상황 등도 유추할 수 있다. 정의대부는 강화를 ‘풍속이 순후한 덕의 터전’이라 칭송했다.
‘삼도부’에 그려지는 고려시대 강화는 분명, 문화(文化)로 문화(文華)를 이룬 ‘문화 수도’이기도 했다. 인천 강화는 우리나라 ‘문화 샘터’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경인일보가 강화에서 화려하게 꽃핀 고려 문화의 자취를 찾아 떠난다.

/정진오 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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