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힐링속으로-경북을 걷다] 71. 예천 호명읍 선몽대

강이라기보다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처럼 부드럽고 너른 포근한 물길이다. 그 강의 남쪽, 호명면 백송리 암산 자락에 선몽대(仙夢臺)라는 고요한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이름부터 시심을 자아내는 이곳은, 자연과 역사와 문학이 겹겹이 배어 있는 예천의 숨은 보석 같은 힐링로드 명소다.

선몽대 어귀에 접어들자, 성인 둘이 팔을 벌려도 감당이 안 되는 노송들이 의젓한 의장대처럼 길을 안내한다.
곧게 솟은 소나무들은 단순한 숲이 아니다. 16세기 중엽, 퇴계 이황의 종손 이열도가 '신선이 노니는 꿈'을 꾸고 정자를 지으면서, 수해와 강풍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직접 조성한 풍수림, 이른바 비보림(裨補林)이다.
노송은 그저 뿌리만 내리고 있는 게 아니다. 고요한 듯하나 속 깊은 이야기들이 줄기마다 켜켜이 얹혀 있다.


길은 백사장을 따라 이어진다. 내성천이 동서로 감돌며 만들어낸 이 모래사장은 '명사십리(名砂十里)'로 불릴 만큼 부드럽고 넓다. 체로 곱게 친 듯한 모래는 발길에 사르르 꺼지고, 강물은 소리 없이 유유히 흐른다. 물새 몇 마리가 강변을 걷고, 멀리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퍼진다. 이곳에서 시간은 분명히 천천히 흐른다.
송림의 끝자락에 이르면 두 개의 석비가 방문객을 맞는다.
하나는 '선대동천(仙臺洞天)'. 선몽대가 산천 속의 별천지라는 의미다. 다른 하나는 '산하호대(山河好大)'. 산이 크고 강이 좋아 기운이 넉넉하다는 뜻. 조선 선비들이 왜 이곳을 자주 찾았는지, 그 문구만으로도 짐작이 된다.

역사도 있다. 선몽대는 단지 풍경 좋은 정자가 아니다. 조선의 대표적 유학자 퇴계 이황이 이곳을 방문해 정자의 이름을 짓고, "내 이제 밤마다 선몽대에 기대니 / 전날에 가서 기리지 못하였음을 한탄하지 않노라"는 칠언절구를 남겼다. 그의 뒤를 이어 류성룡, 김성일, 김상헌 같은 이름난 문인들이 이곳을 찾았고, 한 편의 시는 또 한 편의 시를 불러냈다. 그렇게 수많은 차운(次韻)이 숲에 스며들었다.
정자에서 멀어질수록 나는 다시 걷는다. 소나무 향은 여전히 맑고, 숲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어쩐지 조용하다. 마을 어르신이 말한다. "여기선 바람도 조용하게 운다카이." 정말이다. 이 숲에서는 바람도 발끝으로 걷는 듯하다. 나뭇가지 하나, 풀잎 하나가 작은 소리로 서로를 위로하는 것만 같다.
선몽대는 그저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무언가를 잊고, 비우고, 다시 채우게 되는 곳이다. 시인이 아니어도 시를 쓰고 싶고, 철학자가 아니어도 생각이 깊어진다. 문득 걸음을 멈추면 내가 걷는 이 숲길이 몇 백 년 전 선비가 걷던 길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은 흘렀지만, 바람은 여전히 그 길을 기억한다.
예천에 가면 반드시 한 번은 걸어 봐 야 할 길. 선몽대와 그 송림, 그리고 내성천이 품은 이 고요한 하루는, 바쁜 삶 속에서 우리가 미처 듣지 못했던 '느린 시간의 속삭임'이다.
김학동 예천군수는 "인간의 편의를 위한 인위적인 발전보다 중요한 것은 군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건강과 삶의 행복이다. 그 시작을 자연과 인간의 공존과 만남으로 예천은 숨 쉬는 힐 로드니스 명소를 늘려 치유와 사색 덤으로 쉼이 어우러진 곳으로 평가받고 싶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