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에 새겨진 분단과 전쟁의 인천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또 6·25전쟁이 발발한 지 75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으로부터 벗어난 지 8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 땅 한반도에서 통일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고 정전된 지도 72년이나 됐다. 이처럼 오랜 세월의 흐름은 우리가 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잊어서는 안 될 기억조차도 망각 속에 묻어 버리기 쉽게 하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당시 창작된 시들을 통해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시적 기록의 고찰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머무르는 곳을 배경으로 쓰인 작품들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세월이 가면'과 '목마와 숙녀' 등의 시로 널리 알려진 박인환(朴寅煥, 1926~1956)의 시 가운데 '인천항'이 있다. 「신조선」 1947년 4월 호에 수록된 이 시에는 광복 이후 분단이 가시화되기 직전 우리나라의 암울한 분위기가 상징적이면서도 꾸밈없이 표현돼 주목된다. 이는 특히 "밤이 가까울수록/ 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와/ 주둔소의 네온싸인은 붉고/ 짠그의 불빛은 푸르며/ 마치 유니온 작크가 날리든/ 식민지 향항의 야경을 닮어간다// 조선의 해항 인천의 부두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 상해의 밤을 소리없이 닮어간다"라는 구절에 단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인천항에 진주한 미군의 성조기를 보고 시인은 식민지 향항(香港, 홍콩)의 서글픈 운명을 떠올려 보면서 앞으로 우리 조국에 닥쳐올 분단 체제의 불행을 이미 짐작했던 것이다.
"서울 인천을 두고 마지막 피난지/ 부산으로/ 부산으로 도망가지 아니할 수 없었던 때/ 처량한 일이었읍니다/ 마지막 같았던 일들// 당신은 바람 찬 인천 부두/ 아우성 속에서/ 저희들 먼저 떠내보내시며/ 괜찮다, 괜찮다/ 먼저 어서/ 어서/ 눈물 글썽/ 까만 조바위 흰 두루마기로/ 그 모습/ 그 말씀// 어서, 손 흔드시며 어서,/ 늙은 것은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십이 월 마지막 불어 닥치던/ 찬바람/ 바닷바람// 이거 사람의 자식으로/ 차마/ 아, 세월아/ 소월미도 돌아, 돌아다 보아도/ 까만 조바위 하얀 두루마기/ 외로운 갈매기/ 어머니 홀로// 군산 앞 바다를 지나도/ 밤을 새워도/ 목포를 멀리 돌아도/ 다도해를 지나도// 외로운 갈매기/ 어머니 홀로/ 하얀 두루마기 까만 조바위/ 아, 당신을 홀로 적진에 두고/ 이 불효/ 슬픈 일이었습니다."
편운(片雲) 조병화(趙炳華, 1921∼2003)의 제21시집 「어머니」(1973)에는 시 '서울 인천을 두고'가 수록돼 있는데 여기서는 6·25의 상황에서 시인이 어머니를 남겨 두고 떠난 곳으로 인천부두가 표현돼 있어 주목된다. 제목에도 암시된 바와 같이 6·25 때 인천부두는 마지막 피난지 부산으로 배가 출발하던 장소다. 물론 원하는 사람들이 모두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의 어머니가 아들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심은 이러한 당시 상황을 반영해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이 시에서 이곳은 이별의 장소로서 의미도 지니게 됨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떠난다고 잊히겠는가? 특히 어머니가 종교적 의미까지 지니게 되는 시인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는 잊히지 않는 홀로 계실 어머니의 모습이, 인천을 떠나 군산과 목포를 돌아 다도해를 지날 때까지도 따라오는 외로운 갈매기에 빗대어 표현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같이 광복 직후와 6·25 때를 시대적 배경으로 쓰인 두 편의 시에는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지만 다시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당시의 비극적 현실 상황이 잘 반영돼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때로부터 8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의 시대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그 이후 이곳을 시의 소재나 배경으로 취하는 작품들에서 진정한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평안한 우리의 미래 모습까지도 떠올려 볼 수 있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러한 작품을 볼 수 있을 때는 언제일지, 다시금 그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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