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업형 브로커 조달시장 교란…제조사는 경영난 허덕

전상우 기자 2025. 6. 24. 20:0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정가 이하 최저가로 입찰자 순 결정
브로커 기업, 회원사 동원 낙찰가 써내
낙찰자 주소가 아파트…납품 능력 의심
물품 제조사는 탈락 속출…매출 감소
▲지난 18일 취재진이 A사 홈페이지에 명시된 본점 주소인 안양시 동안구의 한 사무실을 방문했으나, 실내 인테리어 공사로 인해 A사 관계자들을 만날 수 없었다. 한 공사 관계자는 "A사 직원들은 2~3달 전에 다른 데로 모두 옮겼다. 여긴 이미 다른 업체 소유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전상우 기자 awardwoo@incheonilbo.com

한 해 60조원대 물품 조달시장에서 기업형 브로커의 교란 행위가 성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제조업체들은 연매출이 30∼40%씩 줄었다며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도 행정당국은 단속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24일 인천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등기사항전부증명서에 2015년 등기된 A사는 정보처리 소프트웨어 및 관련 시스템 개발 판매업 등 48개 업종을 취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기업은 2015∼2022년까지 의료기, 상품 도소매업, 전자상거래업 등 취급 업종을 문어발식으로 늘려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A사 연 매출은 약 491억원이었다.

코스닥 상장사인 A사는 대형 유튜버들과 촬영한 홍보 영상을 자사 블로그에 '하루 10분만 투자하면 월 80만원', '하루 10분 따라만 해도 돈 벌리는 습관'이라는 제목으로 업로드하며 회원을 모집해왔다.

이 회사는 업종 상관없이 사업자등록증만 있으면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A사가 모집한 회원만 3000∼4000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회원은 물품 제조사를 운영하는 것이 아닌 일반 사업자로, 주소지가 일반주택 또는 아파트로 등록돼 있었다. 말 그대로 물품 납품 능력 없이 사업자등록증만 소유한 사업자로 추정된다.

A사는 회원들에게 나라장터 물품구매 입찰 정보 등을 제공하고 입찰에 참여시키고 있다. 낙찰될 경우 물품 납품은 A사가 미리 섭외해 둔 제조업체가 대신 수행한다. 낙찰된 회원에게는 낙찰 대금의 5% 정도를 수수료로 지급하고 있다.

이러한 교란 행위가 가능한 이유는 관련 규정에 '예정가격 이하로서 최저가격으로 입찰한 순으로 낙찰자를 결정'하도록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입찰자는 예정가격 ±2에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낙찰 가격을 제시하도록 돼 있다. 입찰자를 상대로 추첨으로 낙찰자를 정한다. 결국 확률게임으로 낙찰자가 정해지는 구조다.

A사는 이 점을 노리고 나라장터 등 각종 공공기관 사이트에 입찰 공고가 올라오면 확보한 수천명의 회원을 동원해 입찰에 참여시킨 후 각자 낙찰가를 써내게 한다. 이 중 단 한 명만 낙찰돼도 A사 입장에서는 일명 '작업'이 성공하게 되는 셈이다. 이 같은 방식 때문에 물품 제조사들은 입찰에 참여하고도 낙찰받지 못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3일 나라장터에 공고된 국토교통부의 한 물품구매(2억2000만원) 입찰에는 5806명이 참여했다. 낙찰된 업체 주소지를 확인한 결과, 청주시 한 아파트로 등록돼 있었다. 통상적으로 해당 물품을 제조하는곳은 공장인 만큼 실제 공급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조달데이터허브에 따르면 지난해 물품 공공조달 규모는 60조7000억원에 달했다.

조달청은 물품구매(제조)계약 특수조건 제7조의3에 '직접이행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조달청과 소수의 공공기관을 제외한 나머지 기관에는 해당 지침이 없는 실정이다. A사는 이 점을 악용해 관련 규정이 부재한 기관들의 입찰에 집중적으로 참여 중이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한 입찰에 무자격자인 수천개 사업자가 입찰에 참여하면서 정작 제조사는 입찰에서 떨어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매출 감소로 이어져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천일보는 제보자로부터 받은 번호로 A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이어 해당 직원에게 "A사가 조달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아 여쭤볼 게 있어 연락드렸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인천일보는 A사 사무실로 두 차례 더 통화를 시도했음에도 연결되지 않았다.

▶관련기사 : 60조 물품 조달시장, 꼼수 입찰 활개…'브로커 의심' 기업 취재
▲ A사 담당자와 취재진과의 메신저 대화 내용 캡처본

/김기원·전상우 기자 awardwoo@incheonilbo.com

Copyright © 인천일보 All rights reserved - 무단 전재, 복사,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