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예술로 역사 속 영웅 알리기… 인천 출신 ‘그래피티 1세대 작가’ 레오다브
2013년 포털서 독립운동가 비하 발견 계기로 시작
유관순 순국일 첫 작품, 이후 매달 1명씩 그려나가
지역 숨은 영웅 11명 주목… 인천Utd 선수 재해석
세리머니·광복 기쁨 교차… 친근한 문화 자리잡길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다양한 전시·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인천도시역사관은 지난 17일부터 광복 80주년 작가전 ‘되찾은 조국에서 Smile again’이 진행 중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천 출신 독립운동가 11명이 광복을 맞이한 순간에 느꼈을 환희와 기쁨을 그래피티(graffiti) 장르와 결합한 전시다.
인천 출신 그래피티 1세대 작가인 레오다브(LEODAV·본명 최성욱)는 2013년부터 독립운동가를 그래피티 작품으로 소개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1960년대 미국 청소년 사이에서 일종의 ‘낙서’로 출발한 그래피티 장르와 독립운동이 언뜻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작품 속 독립운동가의 얼굴에는 이들이 실제 광복을 맞았다면 느꼈을 법한 감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 백범 김구, 윤봉길 의사가 테러리스트?
그래피티는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벽면에 문자나 그림을 표현하는 그림이다. 1970년대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잡기 시작한 그래피티는 당시 미국 내에서 ‘저항 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분야였다. 일제강점기 조국 해방을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의 행보와 닮은 점이 있다.
레오다브가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작품 활동에 나선 건 2013년부터다. 그 전까지는 개인 작품을 만들거나 상업 활동에 집중했지만, 결혼 이후 첫째 아이 출산이 다가올 무렵 사회와 역사에 관심을 많이 두게 됐다.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포털 사이트를 자주 검색했는데, 연관 검색어로 독립운동가를 비하하는 표현이 떠 있는 것을 접했다. 김구 선생이나 윤봉길 의사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테러리스트’가 안내되는 식이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래피티와 독립운동이라는, 국내에서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독립운동가를 비하하는 내용이 많았고 포털 연관 검색어에도 잘못된 표현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며 “나중에 아이들하고 우리 역사나 독립운동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빠, 김구는 테러리스트야’라는 말을 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고 했다.
2013년 9월28일 유관순 열사 순국일에 맞춰 첫 작품을 완성한 레오다브는 이후 매달 독립운동가 한 명을 선정해 그래피티 작품으로 제작했다. 마치 독립기념관이 매달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해 소개하는 방식과 같았다. 12월에는 산타 복장을 입은 김구 선생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사진인 김구 선생의 웃는 모습이 산타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에서 그린 작품이다.
레오다브는 “독립운동가 작업을 시작했을 당시 ‘어벤져스’ 열풍이 불었는데, 젊은 친구들이 가상의 영웅을 보고 흥미를 느끼지만 정작 우리 역사 속 영웅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나라에도 이런 영웅들이 있으니 흥미를 갖고 찾아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활동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 인천유나이티드 유니폼 입은 11명의 독립운동가
그는 12년째 독립운동가 작품을 만들어왔지만, 인천 출신 독립운동가 11명을 알리는 이번 전시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역사책이나 교과서에 나오는 독립운동가가 아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어떤 방식으로 소개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독립운동 기록과 사진은 작품 제작에 영감을 얻는 재료로 활용된다. 하지만 인천 출신 독립운동가 11명은 일제가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신상명세서(인물 카드)로만 남아 있다. 레오다브는 ‘11명’에 주목했다. 인천 프로축구팀 인천유나이티드FC 팬이기도 한 그는 인천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축구선수로 재해석했다. 골을 넣은 축구선수가 환호하며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과 광복을 맞은 독립운동가들의 기쁨을 교차한 작품이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만큼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면서 작품을 준비했다”며 “인천유나이티드가 올해 2부리그로 강등됐는데, 11명의 독립운동가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인천에서 오래 살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이렇게 희생하신 분들이 있다는 걸 잘 몰랐는데, 이제부터라도 더 많이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했다.
■ 일상에서 독립운동가를 기억하는 문화
레오다브라는 활동명은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름을 줄인 표현이다. 화가로 유명하지만 발명, 건축, 기계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보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지었다.
그는 “다재다능한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한 가지 일만 하는 것보다 다양한 일을 하고 싶었다”며 “그래피티 장르가 여전히 생소한 분야인데, 다빈치가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던 것처럼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10년 넘게 독립운동가를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그의 목표는 대중의 일상에 독립운동가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의 유명한 사진, 그들이 남긴 말이 새겨진 티셔츠나 기획 상품(굿즈)을 누구나 평소에 착용하고 다니면서 역사 속 영웅을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레오다브는 “예전에는 독립운동, 일제강점기를 다룰 때 진지함과 무거움이 주를 이뤘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일상에서도 착용할 수 있는 재미있고 센스 있는 아이템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며 “일상 속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자연스럽게 기억하는 문화가 자리잡으면 좋겠다”고 했다.
■레오다브 작가는?
▲1979년 인천 논현동 출생
▲대건고·상지대 산업디자인과 졸업
■주요 수상
▲힙합 문화대상 그래피티 부문 대상(2014/2018/2021)
■주요 개인전
▲GD X 태양 ‘GOODBOY’ 앨범 아트웍(2014년)
▲tvn ‘유퀴즈온더블럭’ 로고 및 그래피티 아트웍(2018년)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회 아트웍(2019년)
▲브라질 한국문화원 초청 G20 기념 ‘생존의 숲’ 전시(2024년)
▲부평 ‘두 개의 방’ 기획전 전시(2025년)
/한달수 기자 dal@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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