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65> 거북손과 배말
- TV 예능서 소개돼 전국적 명성
- 갯바위에 따닥따닥 붙어 살아
- 부드럽고 달달한 문어 맛 거북손
- 쫄깃한 오분자기 식감 나는 배말
- 칼국수·수제비에 같이 넣어 먹고
- 야채 함께 비빔밥 고명으로 올려
- 곱게 다져 죽 끓이면 최고 영양식
아마도 30년 전 이쪽저쪽의 시절일 것이다. 통영 대매물도에서 주민들과 술상을 나눈 적이 있었다. 이때 손바닥보다 큰 자연산 굴과 무심히 쓱쓱 썰어낸 자리돔회, 그리고 여러 가지 고둥을 삶아낸 큰 양재기 등이 술상에 올랐다. 물론 술은 소주 됫병 서너 병과 스테인리스 국그릇을 술잔 삼아, 밤이 이울도록 통음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이날 큰 양재기 안에는 처음 보는 식재료가 있었으니 ‘거북손’과 ‘배말’이다. 보말고둥과 함께 삶아낸 이들의 생소한 모양새와 새로운 음식의 맛이, 여간 신기하지 않아 한 양재기 다 비울 정도로 기껍게 먹었던 것이다.
한때 절해고도나 심심산골의 참살이 체험을 하면서, 그 지역의 독특한 식재료를 직접 채취하고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었다. 그때 해안가 사람들이 먹던 바다 식재료 또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 또한 ‘거북손’과 ‘배말’이다.
지금은 해안 지역의 관광 음식,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았지만, 오래전 해당 지역 사람들에게는 온전한 음식이기보다는 끼니를 늘려서 온 가족이 함께 먹기 위해 소용되던 대체 식재료이거나 칼국수 등 계절 별식에 넣어 먹던 해산물이었다.
▮생소한 모양, �S득 쫄깃한 식감

거북손과 배말은 단순하게 삶아서도 먹지만 조리거나 무쳐서도 먹고, 밥 지을 때나 국 끓일 때, 칼국수나 수제비 등에 넣어 먹기도 한다. 이들을 곱게 다져서 죽으로 끓여놓으면 영양식으로도 출중하다. 집안에서 만들어 먹는 끼니에는 어디든 활용이 가능하다는 말이겠다. 요즘은 외식 음식으로 비빔밥이나 덮밥으로도 그 인기가 꽤 많다.
‘거북손’은 물이 들고나는 조간대 바위틈에 붙어 따개비처럼 무리 지어 서식한다. 몸길이는 3~4㎝, 너비 5㎝ 내외이다. 머리 부분이 거북의 다리처럼 생겼다. 5개의 산봉우리처럼도 생겼는데,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는 이를 두고 ‘다섯 봉우리를 가진 굴’이라 뜻으로 ‘오봉호(五峯蠔)’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그 생김새를 두고 ‘부처손’ ‘바위손’ ‘대감 감투’ ‘보찰’ ‘검정 발’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머리 부분은 딱딱한 석회질이고 바위에 붙어 있는 자루 부분은 가죽 같은 껍질에 쌓여있다. 바위틈에 조밀하게 끼리끼리 붙어 있어 채취하기가 몹시 어렵기에 날카로운 칼끝을 자루 부분 깊숙이 넣어 잘라내야 한다.
속의 내용물을 보면 머리 부분에는 먹이를 포집하는 더듬이 같은 검은 발이 있고, 아래에는 연한 분홍빛 살이 오동통하다. 맛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달면서 두족류의 풍미를 지녔는데, 그중 문어의 맛과 비슷하다. 발은 거친 식감의 가죽 실을 씹는 느낌이라 주로 떼 내고 먹는데, 지역 사람들은 잘근잘근하는 그 식감을 선호해 함께 먹기도 한다.
주로 남해안 섬마을 어촌 민박집 밥상에 오르는데, 반찬으로 무쳐내기도 하고 밥 지을 때 함께 넣어 양념장에 비벼 먹거나 조림으로 술안주를 하기도 한다. 유럽 지중해 국가에서는 이 거북손을 아주 귀한 수산자원으로 엄격히 보호하면서 소금물에 데쳐 먹거나 감자 크림에 곁들여 먹는, 고급 음식의 반열에 든다.
‘배말’은 삿갓조개류로 전복처럼 딱딱한 삿갓 모양의 껍질로 몸을 감싸고, 복족(腹足, 배를 발처럼 이용해 이동하는 동물의 총칭)을 가진 어족으로 조간대에 분포하고 있다. 크기는 높이 1~1.5㎝, 폭 2~4㎝ 내외이다. 밀물 때는 갯바위에 꼭 달라붙어 있다가 썰물 때 복족을 이용해 바위 위를 옮겨 다니며 바닷말, 이끼 등을 먹고 산다. ‘두드럭배말’ ‘진주배말’ ‘흑색배말’ ‘애기삿갓조개’ 등이 대표적이다.
채취할 때는 배말 껍질 속으로 끝이 편편한 칼이나 드라이버 등을 재빨리 밀어 넣어 단번에 떼 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바위에 찰싹 달라붙어 채취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채취해서 삶아놓으면 살이 껍데기에서 자연스레 분리되기에 음식 장만하기에는 더없이 간단하고 쉽다. 맛을 보면 바다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면서 쫄깃쫄깃하다. 살짝 전복이나 오분자기(떡조개) 맛이 난다.
이를 갖은 채소와 초고추장으로 무쳐서 먹기도 하고 여러 해산물과 함께 찜으로도 먹는다. 된장국에 넣고 끓이면 시원하고 들큰한 감칠맛이 좋다.
울릉도에서는 이 배말을 따개비라 통칭하는데, 이를 이용해서 ‘따개비밥’, ‘따개비 칼국수’를 해 먹는다. 거제 통영권에서도 ‘배말칼국수’로 널리 사랑받고 있기도 하다.
▮짭짤한 술안주, 비빔밥 재료로 인기
이들 거북손, 배말 등은 분포하고 있는 지역이 동일 조간대 바위 지대이기에 함께 채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맛 또한 달고 바다향이 풍부한 데다가 식감 또한 쫄깃하고 쫀득해서, 서로의 맛깔을 해치지 않기에 한 음식으로 조리해 먹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낚시를 가거나 섬에 며칠 기거할 때는 해안에서 보말 같은 고둥과 배말 등의 삿갓조개와 부처손 등을 채취해 낚시로 잡은 생선회와 함께 곁들여 먹곤 한다. 은근하게 짭조름하면서도 달곰한 감칠맛이 계속 손이 갈 정도로 중독성이 있는 해산물들이다.
얼마 전, 전남 여수 금오도에 며칠 머물렀다. 간 김에 깎아지른 해안절벽으로 아슬아슬하게 길을 낸 ‘비렁길’도 걷고, 금오도와 이웃한 안도의 동쪽 끝 서쪽 끝의 곶, ‘동 고지’ ‘서 고지’의 풍광도 가슴으로 담았다.
저물녘, 민박집 식당에서 해산물 밥상으로 술 한 잔 기울이는데, 옆자리에서 민박집 바깥양반이 거북손과 배말을 짭짤하게 조려 안주 삼아 연신 술잔을 비우는 것이다. 그 음식의 정체를 대뜸 알아보니 적이 놀라며 내일 비빔밥으로 먹어 보겠냔다. 식당 메뉴에는 없지만 한 번 드셔보라는 것이다.
다음날 밥상으로 받은 음식이 바로 ‘따개비 거북손 비빔밥’이다. 큰 사발에 다양한 색감의 채소를 풍성하게 채 썰어 깔고, 그 위에 거북손과 배말을 넉넉하게 장만해서 올려놓았다. 여기에 밥 한 공기 넣고 기호에 따라 초고추장이나 양념간장으로 비벼 먹으면 되는 것이다.
우선 거북손과 배말을 한 점씩 맛본다. 거북손은 부드러우면서 쫀득하니 달고 해물 향이 난다. 배말은 쫄깃하고 식감이 탄탄하면서 씹을수록 고소하고 들큰하다. 이 둘을 채소와 초고추장으로 비빈다. 한 젓가락 입에 넣으니 거북손 배말의 식감과 바다 내음, 채소의 아삭거림과 푸들푸들한 신선함, 초고추장의 달콤 매콤 새콤함이 제각각 자신을 내세우며 어우러진다. 여름철 바다 계절 음식으로 안성맞춤이겠다.
여기에 밥 두어 덩이 넣고 쓱쓱 비빈다. 흰 밥이 붉게 물들며 제대로 된 ‘바다 비빔밥’이 된다. 그 맛 또한 바다 놀처럼 온 입안으로 붉게 퍼져난다. 걸쭉하고 시원한 ‘가사리 국’과 반주 한 잔의 ‘방풍 막걸리’가, 더더욱 기꺼운 시간의 밤으로 흘러 흘러만 가는 것이다.

한때 해안 바위틈마다 지천으로 붙어 있던 거북손과 배말. 이제는 해안 지역의 소중한 식재료이자 향토 음식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무분별한 남획으로 사람이 드나드는 곳에는 만나기 쉽지 않은 귀한 몸이기도 하다. 여하튼 이 두 해산물이 음식 자원으로서의 보존과 함께 지역의 특징을 지닌 향토 음식으로도 오래도록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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