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렬 6·25 참전용사 "신혼 보름차에 참전... 청춘 바쳤지만 후회 없어"

"1953년 7월 27일 밤 9시 50분에 정확히 총소리가 뚝 끊겼죠. '이제는 살았다'며 참호에서 얼싸안고 환호하던 기억은 평생 못 잊습니다."
수원시 영통구의 단독주택에서 만난 6·25 참전용사 심상렬(94) 씨는 노래교실, 정기 건강검진, 노인회 활동 등의 일정을 마치고 자택으로 돌아와 취재진을 맞았다. 바쁜 일정을 가뿐히 소화해 내는 모습에 연로함이 무색했다.
지금의 수원시 땅에서 태어난 심 씨는 신혼 15일 차였던 1952년 11월의 어느 날, 영장을 받아 즉시 국가의 부름에 응했다. 당시 20세였던 심 씨는 3개월의 훈련 끝에 고성 21사단 수색 중대에 배치돼 최전방에서 휴전 직전까지 국경선 다툼이 치열했던, 이른바 '고지전'에 참전했다.
심 씨가 속했던 중대의 주 임무는 8부 능선에 진지를 구축하고 진격하는 인민군을 저지하는 역할이었다.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른 심 씨는 "수없이 총질을 했죠. 내가 쏜 총알에 사람이 죽었다는 죄책감이나 무섭다는 생각은 나중 일이었습니다. '일단 살아남자'는 생각뿐이었죠"라고 당시의 치열했던 총격전·백병전 상황을 회상했다.
전역 후 고향인 수원으로 돌아온 심 씨는 한약협회에서 사무를 보다가 1961년도부터 당시 수원군 망포리 이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박정희 정부의 경재개발 5개년계획 하에 전국의 젊은 이장들이 주축이 돼 전반적인 개발공사를 지휘하고 각종 조사를 통해 국가사업에 필요한 통계를 만들었다. 심 씨는 "숟가락 몇 개인지까지 다 적어 갔다는 말 있죠? 그거 하나도 틀린 말 아닙니다. 내가 직접 했어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하셨던 심 씨는 노년에 못다 한 꿈을 이루며 활동 중이다. 2015년도에는 '실버국악경연'에 사물놀이단장을 맡아 출전해 장려상을 타기도 했다. 주 6회 노래교실에 참여하고 계시는 심상렬 씨는 요즘 즐겨 부르는 곡 '브라보 아줌마'를 취재진에게 선보였다. 박자와 음정, 가사가 정확했고, 늠름한 음성은 고령의 나이를 무색케했다.
심 씨는 국가의 참전용사 지원금에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전쟁에 불구된 사람들이 너무 많지요. 일을 못 하게 된 사람들에게 좀 더 챙겨줘야죠, 과부 된 가족들도 챙겨주고···"라며 당시 어려웠던 전후 상황에 도움이 절실했던 전우들과 그 가족들을 회상했다.
그는 "그때는 나라도 어려웠지만, 이제는 모든 게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닌가 합니다"라며 씁쓸한 표정으로 새하얀 참전용사 제복을 어루만졌다. 그 제복마저 2년 전인 2023년이 돼서야 보급받은 '행사 참여용' 제복이다.
심 씨는 참전 경험에 대해 "자랑스럽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면서 "예전에는 군인 나가면 탄약 짊어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때였지. 요즘 평시에는 군대 재미있어요, 젊어서 사회생활 경험하는 못 가보면 손해인 경험이다"며 국방의 의무를 기피하는 청년들을 독려했다.
최진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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