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인민유격대, 그들은 왜 총칼 앞에 가슴을 내밀었나

누군가에게는 금기, 혹은 비판·혐오의 대상으로 취급받는 존재. 바로 제주도인민유격대(이하 인민유격대)다.
4.3 당시 제주에서 활동한 인민유격대의 활동을 재조명하는 책이 나왔다. 놀이패 한라산부터 제주4.3평화재단까지 일생을 4.3에 투신한 장윤식의 저서 '탄압이면 항쟁이다-제주도인민유격대 이야기'(한그루)다.
책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인민유격대의 태동부터 소멸을 살폈다.
제1장 '제주도인민유격대의 태동'에서는 해방 이후 제주도의 정치 상황을 시작으로 4.3의 시발점이 된 3.1발포사건과 총파업, 그리고 이어지는 남로당 제주도위원회의 무장봉기 결정 과정을 다룬다.
제2장 '제주도인민유격대의 조직과 운영'에서는 인민유격대의 조직체계와 조직개편 과정, 계보 등을 살피고, 이어서 교육 및 훈련, 규율, 환경과 근거지 등을 통해 그 운영 상황을 기술한다.
제3장 '제주도인민유격대의 활동'에서는 시기별 지역별 활동일지를 통해 세부적인 활동 상황과 주요 전투를 담고 있는데, 실제 활동으로 인한 피해 또한 함께 다루고 있다.
잡히면 죽음이었다. 섬은 긴장이고 갈등이고 폭발 직전의 아우성이었다. 제주도민은 무자비한 탄압정책과 폭력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 필요했다. '앉아서 죽느냐, 일어서 싸우느냐.'는 양자택일의 절박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은신처가 필요했고 입산자가 늘었다. 이렇듯 극심한 폭력과 탄압은 4.3봉기의 강력한 배경이 되었고 '제주도인민유격대'가 예비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 '탄압이면 항쟁이다' 65쪽 가운데
살상행위는 결국 일반 대중에게 '폭동'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했고 유격대를 '폭도'라 통칭하는 데 작용했다. 도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잃게 했으며, 도민 간의 갈등이 심화되며 결국 지역공동체의 균열을 가져오게 하는 데 일조했다. '산사람'(유격대, 인민군)과 '폭도'(공비)의 경계가 되고 말았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동원된 수단이 잘못되었다. 잘못은 비판받아야 한다.
- '탄압이면 항쟁이다' 328쪽 가운데
출판사는 "저자는 1948년 4월 3일 봉기 직후 호소문의 한 구절인 '탄압이면 항쟁이다'라는 표제 아래, 조국통일을 꿈꾸던 제주도인민유격대의 의미를 다양한 사료를 통해 짚어나간다. 그 속에서 그들의 신념뿐만 아니라 과오 또한 함께 살피고자 했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책 머리에서 "제주도인민유격대는 역사 속에 실재했으나 섣불리 다가서지 않으려는 대상이 되었고,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수없이 비틀어지고 비하되고 업신여김당해 왔다. 그렇게 우리 앞에서 사라져간 제주도인민유격대는 여전히 '역적의 무리', '폭도', '죽어 마땅한 빨갱이'로 방치되고 있다. 4.3 전 기간을 통해 드러났던 그들의 행위들, 특히 저항의 언어들은 금기의 영역이었으며 거기에 가담하거나 관여했다고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됐다. 누명을 쓴 채 죽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4.3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증언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탄식 같은 말이 있다. '나 고치 몰맹헌 것들만 살아남고 쓸 만하고 요망지고 똑똑한 사람들 다 죽었어.' 이렇듯 당시 제주도 인재라는 인재 대부분이 죽었다. 왜 그들은 총칼 앞에 가슴을 내밀었는가? 그들은 당연히 죽어야 했던 사람들인가? 그들의 함성은, 깃발은, 봉화는 무의미한 것인가? 그들은 무엇 때문에 한라산으로 올랐을까? 무엇을 위하여 총과 죽창을 들고 거대한 세력에 맞섰고, 무엇 때문에 목숨까지 내걸었을까? 또 그들은 왜 지탄의 대상이 되었는가? 제주도인민유격대의 태동과 활동, 그리고 과오 등 전모를 살펴보고자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청년 시절 극단 놀이패 한라산 단원으로 활동하며 주로 극작을 담당했다. ▲목마른 신들 ▲4.3의 기초 ▲서청별곡 ▲현해탄의 새 등을 썼다. 이후 놀이패 한라산 대표도 맡았다. 4.3평화재단 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4.3연구소 이사를 맡고 있다.
▲제주4.3유적Ⅰ·Ⅱ ▲한라산총서 3: 한라산의 역사·유적 ▲그늘 속의 4.3 ▲4.3 70년 어둠에서 빛으로 ▲제주4.3사건 추가진상조사보고서 Ⅰ ▲4.3희곡선집 '당신의 눈물을 보여주세요'를 공동 집필했다.
398쪽, 한그루, 2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