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어려운 기후예산 재원 마련… 대안으로 떠오르는 ‘녹색국채’
배출권 가격 하락에… 환경·에너지 세수도 감소세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기후 위기 대응에 적극 나서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국내 기후 대응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 수입원인 탄소 배출권 가격이 하락하고, 교통에너지환경세 세수도 감소하면서 소요 예산을 마련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녹색국채 발행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정부도 이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 정확한 기후 예산 파악도 안돼… 예산 마련도 쉽지 않아
23일 국내 연구원에 대한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가 2023년 선언한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예산은 2000조원을 웃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097조원, 한국금융연구원은 2620조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각각 추정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전체 투자의 70%이상은 민간금융을 통해 조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 점을 고려하면, 600조원 이상은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는 기후 예산을 명확히 구분하는 체계가 없어 예산 규모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부처별로 기후 관련 사업이 흩어져 있어 실제 집행 규모나 성과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는 2023~2027년 기후변화 완화·적응·전환, 인력양성 등에 89조9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 20% 이상 예산이 삭감됐다. 사업 범위, 예산 편성·집행 결과도 공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기후 예산을 제대로 파악·분석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기후 예산 규모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는 ‘온실가스 감축인지 예산서’가 있다. 이 예산서에는 탄녹위 계획과 달리, 온실가스 감축에 직접·간접 영향을 미치는 사업만 포함된다.
감축인지 예산과 기금 규모는 2023년 11조9000억원, 2024년 10조9000억원, 2025년 12조1000억원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전체 예산 대비 비중은 2023년 1.86%에서 2025년 1.78%로 오히려 줄고 있다.
정부는 현재 구조로는 온실가스 감축 예산을 유지하기조차 어렵다고 보고 있다. 전체 온실가스 감축인지 예산에서 가장 큰 재원인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31.8%)’는 2022년 이후 적자 전환됐다. 천연가스(LNG) 수입 부담금 축소로 세입이 줄었고, 친환경차 보급 지원 등으로 세출이 늘어난 탓이다.

두 번째로 큰 재원인 기후대응기금(18.9%)도 상황이 좋지 않다. 배출권 가격은 도입 당시 3만원을 넘기도 했지만 현재는 8000원대로 떨어져, 배출권 매각 수입이 감소했다. 또 다른 수입원인 교통에너지환경세도 유류세 인하와 전기차 보급 확대로 감소세인 상황이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중동 정세 불안과 물가 자극 우려를 이유로 오는 8월 말까지 연장하기로 한 상황이다. 이란과 미국의 갈등이 지속될 경우, 이후에도 유류세 인하 조치를 중단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대안으로 떠오르는 ‘녹색국채’… 정부 하반기 법 개정 추진할 듯
이처럼 기후 예산이 줄어드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중앙정부가 발행하는 녹색채권인 ‘녹색국채’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녹색채권은 조달한 자금을 신재생에너지·친환경차 등 녹색산업 분야 사업 지원에 사용하도록 한정한 채권이다. 자금 사용처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평가 및 선정과정, 조달자금 관리, 사후보고 등을 충족해야 한다.

국제자본시장협회(ICMA)에 따르면, 2025년 5월 기준 38개 국가가 녹색국채를 통해 탄소중립 정책 재원을 조달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도 최근 발행국에 합류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녹색국채를 도입한 적이 없는 상황으로, 2019년과 2021년 외평채를 녹색채권 형태로 발행한 것이 전부다. 현재 국내에서 발행 중인 녹색채권 대부분도 민간 주도로, 정부 발행 비중은 1%에 불과하다.
허경선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탄소중립 정책이 본격화되면 화석 연료 기반 세수가 줄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도 녹색국채를 본격적인 재원 마련 수단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녹색채권에 대한 높은 수요로, 일반 채권보다 낮은 금리로 조달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도 녹색 국채 도입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추진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녹색국채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내달 연구 용역이 마무리되면 그 결과에 따라 녹색국채 발행 여부를 확정할 계획이다. 만약 발행 결정을 내릴 경우, 탄소중립기본법 등 관련 법 개정과 함께 국가재정정보시스템 등 인프라 개선도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녹색국채 발행에 성공할 경우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과 더욱 시너지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추가적인 국고채 수요에 대응할 수도 있는 데다, 녹색전환 투자 비용을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녹색국채가 ‘그린워싱’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철저한 사용처 검증과 성과 관리, 상환 계획 수립 등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녹색국채가 친환경 정책과 관련이 없거나, 환경을 해치는 분야에 자금이 투입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그린워싱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허경선 연구원은 “녹색국채로 조달한 자금에 대해서는 사용처와 집행, 성과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며 “녹색국채는 즉각적인 자금조달 수단이기 때문에, 어떻게 상환할지에 대한 계획도 미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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