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낸 한철] 먼 곳으로부터 먼 곳까지

어느 날 '먼 곳'이란 말이 나를 찾아왔다. 맨발 혹은 어린왕자의 이미지로 발끝을 들고, 불현듯 찾아왔다. 먼 곳의 풍경은 수고하고 슬퍼한 것뿐이어서 목 메인다. 먼 곳에게서는 연민, 혹은 가난이 오손도손 겨울밤을 지새우는 호롱불 냄새가 난다. 『인간과 공간』의 저자는 "먼 곳에 대한 동경은 삶이 진정 삶다웠던 잃어버린 시원에 대한 갈망이다." 라고 말한다. 분주한 일상에서 참된 자아를 상실했을 때, 제 집이 더 이상 제 집이 아님을 느낄 때, 고향이 낯설어질 때, 밤 깊어 더 낯선 객지의 삶속에 찬바람 불 때 잃어버린 고향이 먼 곳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현실의 결여가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을 추동하고, 먼 곳을 호명한다. 그러니까 먼 곳에 대한 동경은 사실상 삶이 진정 삶다웠던, 지금은 잃어버린 시원을 향한 갈망인 것이다. 남 보기에 비록 남루했다 하더라도, 먼 곳으로부터 먼 곳까지 바람이 불고, 먼 곳으로부터 먼 곳까지 온몸이 아프다.
먼 곳은 본질상 신발을 신고는 갈 수 없는 먼 곳이다.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의식과정이며 심리현상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먼 곳은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먼 곳은 유전(流轉) 이후이고, 유전(遺傳) 이전이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먼 곳에 이를 수 있는가? 먼 곳 '살기'와 먼 곳 '되기'를 통해 그럴 수 있겠다. 도마뱀 부부의 경우를 보라. 1964년 도쿄 올림픽 경기장 건설 때 있었던 일이다. 지은 지 삼년 된 건물의 지붕을 헐었다. 꼬리에 못 박힌 도마뱀 한 마리가 죽지 않고 두 눈 멀뚱멀뚱 살아있다. 지붕 헐기를 멈추고 인부들은 도마뱀 가족의 궁금한 사연을 지켜본다.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어와 건네준다. 못 박힌 도마뱀과 먹이를 건네는 도마뱀 부부의 일상! 그것이 먼 곳 살기의 관계이고 먼 곳 되기의 토대이다. 건물은 마저 헐리고 도마뱀 부부는 그 집을 떠났다. 삶이 그렇듯, 가치 있는 시도 먼 곳 살기이고, 시의 가치도 먼 곳 되기 아닐까.
먼 곳을 느끼려면, 먼 곳이 찾아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면 특별한 사건이나 그럴만한 계기가 필요하다. 쿤츠는 그것을 '먼 곳의 잠입'이라 했다. 아래 시의 경우 그것은 가을에 왠 새벽 비! 소리이다. 장마와 역병이 쥐떼처럼 창궐하던 고단한 한평생의 서사를 두 주먹 속에 꼭 쥐고 계시는, 모자와 구두 사이 얼비치는 먼 곳 풍경.
가을에 왠 새벽 비! 소리에 잠깨어/ 액자 속에 오래 앉아계신 아버지, 어머니 영정사진 보네.// 꽃 진 가지 그늘처럼 스산하게/ 한날한시에 두 주먹 꼭 쥐고 앉아계시네.// 그해 여름 거기 먼 곳엔 큰 장마 지고/ 역병이 쥐떼처럼 창궐했었지// 시를 쓴다는 건/ 가을에 왠 새벽 비! 소리에 몸을 부비는 것.// 한날한시에 꼭 쥔 두 주먹 속/ 모자와 구두 사이 먼 곳을 읽는 것.(「모자와 구두」)
새는 우주의 리듬에 몸을 맡긴 채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는다. 남쪽나라를 찾아 구만리장천을 나는 철새들의 정비(靜飛), 바로 그 순간 그 상태가 먼 곳에 이르러 먼 곳이 된 삶의 표상이다. 먼 곳으로부터 먼 곳까지 정비를 끝낸 철새[시인]는 낯선 땅을 기웃거려야 하고 다시 사막의 민낯을 만나야 한다. 바오밥나무 밑 어린왕자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환해지는 먼 곳의 잠입에 속수무책인 시인의 고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운명이거나 금단의 열매를 탐한 아담의 후과(後果)이겠다.